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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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이는 책을 만났다. 우리에게는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내 심장을 쏴라>로 잘 알려진 정유정 작가의 신작 <7년의 밤>. 세계문학상은 등단 작가들이 단숨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가장 효과 좋은 길 중 하나로, 1대 수상자 <미실>의 김별아 작가 이후로 내가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작품들이 늘 선정되어 왔었다.

그런데, 그 대단한 상을 받은 직후 그녀는 종적을 감춰 버렸다. 마치 세령호의 그 아이 서원처럼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이고 싶은 것 마냥 자신을 감춘채 이번 작품을 집필하는데만 몰두했다고 한다. 그렇게 2년여만에 이번 신작이 나왔다. 






사실, 작가의 전작 <내 심장을 쏴라>는 개인적으로 몹시 나쁜 소설이었다. 문학적 감수성이나 작품성 등등은 생각지도 못할만큼 사람을 감정의 늪에 빠뜨려서 어떤 식으로도 절대 동정할 수 없는 주인공 인물에 대한 무한 분노를 터트리게 만들었다. 그게 정유정 작가가 지닌 리얼리티의 수준이란걸 나는 잘 안다. 하지만 어쨌든 몹시도 기분 나빴다.

더불어, 이번 <7년의 밤> 속 최현수나 오영제 같은 인물들 역시 만만치 않게 힘든 존재였지만, 적어도 그 전에 비하면 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할 만큼 불쾌해지지는 않았다. 그것이 작가와 나 중 어느쪽의 변화 때문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만만치 않았던 이 책 덕분에 지난 주말을 온전히 내가 아닌채로 보내야만 했었다.  






<7년의 밤> 이야기 구조의 전반적인 느낌은 나의 첫 하루키였던 <해변의 카프카>와 흡사했고, 이번 한장만 더, 한장만 더, 를 읊조리며 시선을 끊지 못하게 만드는 흡입력은 재작년 여름 같은 상황에서 나를 충격의 도가니에 던져버렸던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과 닮아있었다. 써놓고보니, 두 작품 모두 일본에서 꽤 주목받는 소설가의 작품들이라는 점이 묘하게 재밌기도 했다.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건 픽션이야, 이건 소설이야'라는 암시를 계속 되뇌었지만, 여전히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의도적인 쓰임인지, 단순한 오탈자(혹은 내가 잘못 아는것일지도)인지 모를 띄어쓰기가 생략된 명사+명사 단어의 몇 개 사용들은 그야말로 숨을 쉬는 것 조차 버겁게 만드는 구속력으로 나를 장악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스스로를 보통 혹은 평범이라고 수식하는 이들에게 너무도 충격적이게 느껴질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도가 아주 조금 더 극적일 뿐, 알게모르게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유형의 우리 주변인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오싹했다. 남들이 '반전'이라고 부르는 말미의 스토리 전환에서도 그랬다. 이 이야기의 인물들이 지닌 얘기들은 정말 너무도 우리의 '주변'에 흔히 도사리고 있는 예제들이었다. 문득 나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너무도 세밀하게 이해하고 묘사할 수 있는 이 작가의 개인사가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알아볼 마음도 방법은 없기에, 그것에 대한 대체 방편으로 이후 그녀의 작품들을 눈여겨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신작 덕분에 나는 7년의 밤과 그 이후의 더 많은 시간동안 그녀를 주목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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