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레이디
커티스 시튼펠드 지음, 이진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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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목전에 두고 설레는 마음을 틔워가는 시기에 아주 흥미로운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사립학교 아이들>로 이미 유명세를 탄 커티스 시튼펠드의 신간 장편소설 <퍼스트 레이디>가 바로 그 작품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되던 그 당시 영부인인 로라 부시를 모델로 하여 실제 그녀의 과거나 배경을 어느정도 차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원인모를 이유로 나른하고 권태롭기까지 한 요즘같은 날씨에 내 감성과 흥미를 일깨우기에 딱 좋은 책이었다.

표지부터가 내 마음을 꼭 사로잡은 이 책. 작가의 전작은 이미 현지에서 영화로 제작중에 있다고 들었는데, 책을 완독하고 나서 전작들에 관심이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번 작품 또한 꼭 극의 형식으로 제작되길 바라는 기대가 생겨났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던 중 문득 은나라 주왕의 달기 이야기가 떠올랐다.


달기는 은(殷) 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의  비로, 유소씨의 딸이다.

달기는 천하의 미인이라 일컬어지는 포사(褒似)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가장 음란하고 잔인한 대표적인 독부로 알려져 있다. 주왕은 왕비 달기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 까지 할 정였다고 하는데, 그의 학정을 간하는 현신들의 말은 귀 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으나 달기의 말만은 잘 들었다고 한다.

주왕의 충신 비간(比干) 이란 신하를 눈에 가시 처럼 여기던 달기는 비간을 모함하고 이를 주왕에게 간하여 죽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잘 웃지 않는 그녀가 죄인이 잔혹한 형벌에 의해 사형을 당하는 모습에 유독 즐거워함을 알게 된 주왕은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발라 숯불위에 걸쳐 놓고 죄인으로 하여금 그 위를 걷게하다가 끝내 미끄러져 숯불 위에 떨어져 불에 타 죽는모습을 함께 구경 하면서 웃고 즐겼다고 한다. 주왕은 끝내 이런 포악한 정치로 말미암아 주나라 무왕(武王)에 의해 토벌되었고 달기와 함께 처형당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팜므파탈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다. 미실이나 달기, 클레오파트라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거나 하는 마녀스러운 면모가 아니라 한 남자를 사로잡고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묘한 환상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 또한 그렇고 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이제까지 내가 본 가장 완벽한 팜므파탈이었다.

그런데 한 때 이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나쁜남자(Bad Boy) 열풍은 초식남이나 토이남에게 그 지위를 빼앗긴지 오래다. 반면, 나쁜남자마저 자기 수하에 두고 꼼짝 못하게 만드는 팜므파탈(femme fatale)의 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적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팜프파탈에 대해 남녀노소를 불문한 모든 이들이 돌을 던지며 가학적인 질타를 일삼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그 매력에 빠져드는 순간 한마리의 순한 양이 되어 옴짝달싹을 못 한 다는 것이다. 실제로 팜므파탈이 지니는 사전적인 의미는 우리가 일상에서 농담삼아 던지는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매우 잔인한 표현이지만 한 남자가 목숨이라도 내어줄 기세로 사랑하게 만드는 내재된 매력 역시 어떤 방향과 성향에서든 팜므파탈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여 주인공 앨리스는 미국에 사는 아주 전형적인 소녀 타입의 여성이다. 그런 그녀가 첫사랑 앤드류와의 비극을 겪으며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인생을 맞이하게 된다. 이 책은 특히 남자주인공을 선정하는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나는 지극히 상투적이고 고루한 성격 탓에 주인공은 둘일 수 없다(남/여로 각 1명씩)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데, 소설이 전개되고 결말을 맞이하는 시점까지 이야기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앤드류의 비중이 너무도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그리고 앨리스가 느끼는 앤드류에 대한 비애감이 크게 와닿지도 않았다. 지극히 소설적이고 허구적인 상황이기에 가능한-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뉴스로나마 접해본 바 없는- 설정이라 그랬던 것 같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앨리스는 실제 미국의 영부인이었던 로라 부시와 매우 많은 점이 닮아있다. 그런데 나는 앨리스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찰리가 그녀의 대통령이었던 부시와 닮은점이 더 많다고 느꼈고 무척 재미있었다. 그 외에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치 행정제도나 정당간의 성향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점 또한 이 책을 읽는 동안 얻을 수 있었던 즐거움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특별히 분에 넘치는 욕심 한 번 부려본적 없는 앨리스가 본의아니게 너무 자신을 죽여야만 했던 삶을 살게 된 것이 참 안타까웠다. 더불어 꽃다운 나이에 그저 안타깝게 사그라 든 앤드류의 꿈도 그저 서글펐다. 만약 이 작품이 영화로 제작된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적어도 여 주인공은 영원한 여신 줄리아로버츠가 맡는다면 더 없이 제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라면 앨리스도 분명 기쁜 마음으로 지켜봐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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