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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 유시민은 도입부에서 이 책을 딸에게 주기 위해서 저술했다고 밝혔다. 세상에, 유시민이 아버지라니! 물론 나는 이 세상 그 어떤 대단한 인물을 내세운다고 해도 내 아버지를 바꾸고픈 맘은 없으며,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단지 ‘유시민이라는 아버지’ 이것만 두고 봤을 때의 감탄이 참 묘하게 일렁이는 순간이었다.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업무 담당 팀장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우리 팀장님은 이 책을 읽으며 솟구치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고 말씀하시며,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해 주셨다. 부푼 기대감으로 첫 장부터 차근히 살펴본 나는 저자가 20여 년 전이 책에서 다뤄진 고전들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숨죽여 읽었던 것처럼 그가 저술한 이 책 <청춘의 독서>를 독서에 걸신들린 사람처럼 읽어치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도대체 어디서 눈시울을 붉혀야 하는 거지?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오히려 입가에서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감당하지 못해 줄곧 머금고 있었다. 과도한 앞서나감일지는 모르나 지금 언론 매체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누군가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하는 문단들이 너무나 신랄하게 와 닿았고, 전 장관이나 유명한 토론 프로그램의 중재자가 아닌 평범한 인간 유시민이 그려지는 모습에서 애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안타깝고 맘이 쎄~ 하다고 느꼈던 것은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갈 길이 아직도 참 멀구나.. 라는 한탄은 멈출 줄 몰랐다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유신 이래 피 흘리고 신음하던 때, 미국 정부에서는 민간언론을 통해 보도된 국방부의 기밀문서 보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대법원에 의해 기각됐었다. 비록 정부의 이해타산에 의해 국가안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포장된 얼토당토않은 사안이기는 했으나, 국가의 위신을 좌우할 수 있는 문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그 행보에 대해 대법원이 정부가 아닌 보도매체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 실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대한민국의 대법원이 “법통과 과정은 불법인데 법안은 유효하다.”라는 구차하고 속보이는 판결이 내린 시점에서 정확히 38년 전의 일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2003년, 그는 의회에 캐주얼과 개량한복을 입은 채 등장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대단한 질타를 받기도 했었다.
이 책의 유형에 대해 굳이 분류하자면, 지식인이 펼쳐낸 고전 도서 서평 모음집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당장 사고 싶은 책이라도, 아직 읽지 않은 것의 서평은 보지 않는다. 스포일러도 문제만 그 글을 쓴 이의 가치관이 내 머릿속에 주입되어 선입관으로 변하는 과정이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열 네 편이나, 그것도 모음집으로 읽어버렸다. 그나마 책을 덮은 후에는 그 잔상이 오래 가지 않는 나쁜 기억력을 다행으로 삼아야 할 지경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저술활동을 한 유시민이라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첫 걸음이 <청춘의 독서>이었다는 것에 대해서 어떤 가치평가를 내려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보다 먼저 구매해놓고 나중을 기약한 것들 중 하나인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본인이 직접 짝퉁 역사서다! 라고 평가한 것은 나를 매우 슬프게 했다. 아직 표지만 살펴본 게 전부인데, 이미 구매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로 하여금 남은 책들에 강한 애정을 품게 만든다. 정말 실로 오랜만에 강력한 마성의 작가를 만난 것 같아 무척 두렵다. 아마도 2010년의 10번째쯤으로 예상중인 다음 책은 <후불제 민주주의>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