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읽을 책으로는 역시 문학 장르가 최고인 듯싶다. 여행에세이는 너무 구속받기 쉬우며, 그 외의 장르는 몰입이 힘들다. 그래서 나는 지난 부산여행의 동반자로 최근 품절남이 된 타블로의 <당신의 조각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일말의 아쉬움도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떠났던 여행, 그에 딱 어울리는 느낌.
바로 그 정도. 이 책은 저자 이야기에서 그가 밝혔던 내용처럼 한글 문장력이 조금 아쉽기는 했다. 전체적으로 문장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형성하기보다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랄까.. 아는 지인 말로는 전형적인 영미소설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표현했다. 하지만 한권의 책이 저자이자 동시에 그 사람이 역자인 문학 장르를 만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너그러이 넘어가려고 한다. 게다가 이 사람은 전문 작가도 아니니까... 단편소설 모음집인 책의 내용 중 두 세편 정도를 읽다보니, 최근에 즐겨듣고 있는 에픽하이의 <1분 1초>라는 곡과 책 전체의 분위기가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타블로가 속한 그룹 에픽하이. 그들의 노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그리고 p.44쪽에 이르러 ‘1분 1초’라는 표현구가 삽입된 것에 새삼 전율을 느꼈다. 어린 시절 나의 적성검사 결과지에는 늘 예술계열 직업군이 최고의 적성으로 제시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거나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하나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도 없는 나는 매번 그것이 참 의아하고 우스웠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생활 속에서 너무나 익숙하게 젖어 살아가고 있는 내가 그려졌다.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홀로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를 위해 음악을 고르는... 문득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공감각적인 표현이 참 좋다. 이 책은 그것이 너무 식상하리만치 난무하지도 무미건조하게 결핍되지도 않는 딱 적당한 수위를 지켜주었다. 반면 책 속 이야기 중 하나인 <쉿> 이후로 매 단편의 대화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각종 욕설과 비속어는 그 잔잔하고 그러다 침잠하는 분위기의 이 책을 너무 흩트리는건 아닌가.. 하는 불만도 있었다. 다소 완곡한 표현으로 대체되었다면 더 좋을텐데.. 라고 느끼는건 나만의 욕심일까? 괜히 편집자까지 미워졌다. 2005년 그의 미니홈피에서 발견한 작사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첫눈에 반했다. 자기일을 열심히 하는 그 모습에 2008년에 발매된 에픽하이 정규 5집 <Pieces, Part One>에는 동명의 곡 <당신의 조각들>이라는 노래가 수록되어있다. 각 단편 하나하나를 마칠 때마다 1분 1초와 당신의 조각들을 천천히 음미하듯 들었다. 가수가 쓴 소설이라서 일까 여러 가지 스치는 음악들과 함께 여러 가지 감각들이 공존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기분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나는 이 책을 필력에 대한 평가나 어떤 하나의 가치기준으로 왈가왈부하기 보다는, 그저 여행지에서 품었던 하나의 낭만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이미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는 분야에서 성공한 그 멋진 남자가 한때는 내가 간절히 꿈꿨던 직업까지도 획득한 것에 무한한 동경을 보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