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 잔 하실까요? - 여섯 가지 음료로 읽는 세계사 이야기
톰 스탠디지 지음, 차재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첫번째 문단과 두번째 문단은 자세한 설명을 조금 더 덧붙인듯 별 차이 없어보이는 내용이지만 사실은 크나큰 차이점이 있다. 어렴풋하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역사과목을 좋아했던 내 기억에 의하면 위의 문단은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시절까지 배우던 역사였지만 그 아래로 오는 두번째 문단은 고등학교 시절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것이야말로'진짜 역사'다 라고 생각하게 된 혁명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수업내용이었다. 그것은 과거 자연에서 제공하는 채집물만을 생명원으로써 이용하던 구석기인들이 작물의 재배 및 가축의 사육방법을 발견하게 되었던 신석기혁명 만큼이나 충격적인 진화의 과정이었다.

대학교 학부과정의 공부를 하고 있는 내가 지난 초중고 시절의 수업내용을 돌이켜보면 공부를 할 당시에는 늘 새롭고 처음 접하는 것들만 배우는 기분이었지만 사실은 아주 어려서 배운 덧셈 뺄셈 등등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고 변모되었을 뿐 그 근원이나 개념의 시작은 모두 같았다. 그리고 그 중 가장 그러한 기본 그릇에서 조금만 덧붙여 배움을 거듭하게 하는 것이 바로 역사과목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되었다.

초/중학교 시절까지의 역사는 그냥 사건의 단면만을 접하는 1차원적인 학습이라면, 고등학교 시절 이후의 역사는 미시사와 야사를 합쳐 복합적으로 접근하는 개념으로 유명한 역사학자 E. H. Carr가 이르듯 현재에 의한 역사가되어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역사라는 과목의 매력을 너무도 어린시절부터 느껴왔던 나는 그러한 과정속에서 더해지는 깊이와 새로이 알아갈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할 달라진 접근 방법에의 해석 결과물에 매번 탄식하고 감동했다. 그리고 현실적 장벽에 의해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역사를 전공으로 택하지 못한 이상 앞으로 그러한 기회는 더이상 내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은 틀렸다. 역사는 언제나 우리 주변에 숨쉬고 있었으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1분 1초 또한 모두 역사의 너머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그 체념이 있은 후 4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 바로 이번에 읽게 된 책 '역사 한 잔 하실까요?'를 통해서 말이다.

나는 역사를 좋아했기에 아주 어린시절부터 또래답지않게 사극에 무척이나 강한 흥미를 보였다. 아마도 상상 속의 역사가 눈앞에 가시화된다는 것이 사극의 가장 큰 매력으로 작용해 나를 늘 긴장하게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고 부모님께 배우는 역사가 아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던 또 다른 느낌의 역사가 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이와같은 의미에서 이번에 역사 한 잔 하실까요?를 읽는 것은 내게 너무도 큰 의미로 다가왔다. 사실 고대인들이 술을 만들어서 마셨을 것 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며 와인 이전에 맥주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이번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나는 아마 책 초반부에서 그 사실을 알고는 꽤나 충격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대학에 와서 술을 처음으로 접하고 술을 통한 인간관계를 점차 배워감에 따라 내가 느꼈던 것은 술은 인류에게 주어졌던(보통 신이 하사했다고 하는 것들 중) 최고의 선물인 불과도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었다. 적당히 즐기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지만, 과하면 그보다 나쁠 것이 없는 신비롭고도 그 출발을 궁금케 하는 매력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책을 통해 만물의 영장인 인류는 어쩌면 술이라는 동반자가 그 문명의 역사와 함께했기에 진정으로 영장이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직립보행으로 인한 두 손의 자유화로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 또한 매우 중요했던 포인트지만 앞의 문장은 어디까지나 이번 책을 읽음으로써 생각한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역사 한 잔 하실까요?는 맥주, 와인, 증류주, 커피, 홍차, 코카콜라의 6가지 음료를 소재로 하여 인류 문명의 변화와 위의 6가지 음료가 유행함에 따라 기존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크게 변모해가는 과정을 언급하며 새로운 해석으로의 역사를 도출한다. 커피와 홍차 코카콜라의 3가지 음료는 현재까지도 전 세계를 장악하는 매우 의미있는 음료이다. 하지만 내게는 사람을 사귀고 사람을 알게하는 의미로써 술이라는 존재(초반의 맥주, 와인, 증류주-브랜디, 럼 위스키-)의 의미를 더욱 크게 부각하고자 한다. 후자의 3가지 요인들은 적어도 인류 문명이 어느정도 완성됐다고 평가받는 시대 이후에 등장하여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촉진제역할을 해 주었지만, 앞서는 3가지의 음료(주류)는 이 땅에 맨몸으로 태어나 1차원적인 욕구였던 생존이 가장 중요하고 전부였던 인류에게 2차 3차 이상의 욕구를 갖게끔 도와주었던 그야말로 문명 태동의 시발점이라는 의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라는 학문을 매우 사랑하기에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강하게 이끌렸고 아무런 망설임없이 선택했다. 책을 보는 동안도 이미 역사를 마지막으로 학문으로써 공부한지 수년이 흘렀지만 그간의 애정으로 쌓아뒀던 지식 덕분에 아무런 문제없이 쉬이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입장이 아니거나, 이제 이 책을 통해 역사에 관심을 보이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조금 지루하거나 어려운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은 배제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역사에 대한 나의 예찬론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이 책에 대한 예찬론도 펼치다보면 아마 하나의 논문 분량을 초월하고도 부족할 듯 하여, 이 책의 최대 매력이었던 간결하고도 의미심장한 각 챕터의 소제목을 언급하며 이 서평을 정리하고자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류의 역사가 음료의 발전 및 변화 속에서 함께 움직여왔다고 믿게되었다. 사실 따지고보니 음료는 액체 즉 물에서 그 존재가 기원하며 인류 문명의 태동 또한 크나큰 강줄기 주변에서 이룩되었고 그러한 강과 물의 이용을 잘 다스리던자가 문명의 수장이 되었다는 지난 배움이 떠오른다. 나는 이전부터 알고있던 지식을 이번 책을 통해 새로이 각성하였고, 또 다른 지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우리의 인체는 식량이 없이는 조금 더 긴 시간을 버텨줄지 모르겠으나 물 즉 수분이 없이는 그에 반도 못미치는 짧은 시간조차 괴로움 속에서 허덕이게 한다. 어쩌면 인류가 음료와 함께 발전했던 것은 숙명이자 잔혹하고도 질기게 연결된 인연이었을지 모르겠다.

맥주는 농사를 통해 신석기혁명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그 속에서 생겨났기에 인류 문명의 여명기를 열였고 와인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며 끊임없는 욕구 추구를 거듭한다는 본성을 일깨워주며 문명의 전파를 이룩했다. 이러한 전파 속에서 강자와 약자가 생겨나게 되고 조금 슬프지만 그러한 발전의 과정 속에서 존재해야만 했던 제국주의 시대에 그 슬픔을 달래고 그러한 지배구조를 더욱 굳건하게 지켜준 증류주가 문명의 항해를 도왔으며, 커피는 근대 유럽 지식인들의 머리를 맑게 하고 1차원적인 욕구에서 벗어나 문명이라는 단어에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촉진했다. 이제 인류는 더이상 생존의 문제가 전부인 삶에서 벗어나 홍차를 통해 각자의 품위와 우월함을 존중받고자 하며, 이는 현대에 이르러 코카콜라의 소재로 비유되는 자본주의의 탄생과 이의 발달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거듭된 변화과정 속에서 이미 우리 주변에는 셀 수 없는 많은 음료들이 존재하게 된다.

오늘날의 인류의 생활은 음료를 떠나서는 더이상 설명될 수 없다. 우리는 친분을 표시할때나 혹은 그러한 친분을 새로이 개척할 때, 커피(차)나 한잔 하실래요? 라는 멘트를 통해 기회를 마련하고 술을 함께 마심으로써 그러한 계기를 더욱 돈독히 발전시켜간다. 음료가 없이 대화만 오가는 무미건조함이란 이제 더이상 상상할수도 없으며, 상대에게 음료를 권하는것은 아주 기본적인 예의이자 상대에 대한 존중 배려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습은 현대에 와서 탄생한것이 아닌, 아주 오래전 인류가 생존과 사투하던 고대로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올라간다.

평소에 아무렇지않게 여겼던 우리의 문화와 생활양식에 대해 새로이 재각성하며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은 너무도 흥미롭고 즐거웠다. 앞으로 이토록 새로운 관점에의 역사 해석서가 많이 쓰여지길 바란다. 우리가 흔히 강국이라 일컫는 나라에서는 언제나 역사와 철학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전폭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 속에서 진정한 타산지석과 문명의 의미를 되새겨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그러한 사회적 인프라가 조성되어 나처럼 현실의 장벽에 의해 하고싶은 공부를 포기하는 아쉬움을 겪는 학도들이 더이상 없었으면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인류의 문명, 패러다임의 형성과 변화, 패권의 이동과 혁명, 그리고 오늘날의 각성까지 너무도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짧고도 긴 시간이 내게는 참으로 많은 가르침을 준 또 하나의 선생님을 만난 듯 하여 너무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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