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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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계입양프랑스인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인 나나, 입양 전  한국 이름 문주는 독립영화 제작자 서영으로부터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제작을 의뢰받는다. 서영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문주가 한국으로 건너와 서영의 집에 머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받아들이며 화해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서영의 집 건물 1층식당의 주인 복희(연희)의 이야기가 또 다른 줄기를 이룬다. 연희는 백복순의 아이 백복희를 돌보고 입양보낸 과거가 있었고 문주는 자신에게 정성스런 음식을 내어준 연희에게 마음이 쓰이게 된다. 생의 마지막 문턱에 다다른 연희를 대신해 연희를 찾아온 복희를 만나고 연희의 전 생애를 더듬어 가게 된다.
사실 과거 , 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왔던 문주는 결국 가족을 찾지 못했고 마음을 닫았었다. 일년 후 문주는 갑작스레 자신의 몸에 찾아온 우주를 품고 서영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하는데 특히 문주의 감정선을 다룬 문장들이 인상 깊었다. 아이를 가지게 되고 과거를 마주하게 되면서 타인을 끌어안으며 좀 더 단단한 삶을 꾸리게 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참으로 섬세했다. 깊이 감응되기에 충분했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

P15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았지만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 정처없이 표류하는 사람이 어느새 내 외로움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을 무대처럼 만들어 상상으로 빚어진 배우에게 내게 닥친 외로움을 전가하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전가된 외로움은 내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니었기에 깊이 빠지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나는 좋았다.

발 딯지 못하고 평생 부유하는 마음으로 외롭게 살아왔을 문주의 고통과 감정들을 헤아리기에 그것들이 너무 무겁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작가의 말에 보면 쓰기 전 입양인이 아닌 사람이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써도 될까 망설였다고 했는데 고심을 한 흔적이 문장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앞서 이름은 집이란 서영의 말에 문주는 강하게 이끌리게 되는데 자신의 이름은 물론 서영과 소율, 복주 등 모든 사람의 이름과 지명의 뜻에 관심을 보인다. 여기서 단 한사람 오랜 옛날 젊은 연희와 더불어 복순을 보살피던 이가 있었는데 평소 복희의 식당을 자주 드나들던 노파이다. 노파의 이름은 끝까지 알 수 없다. 많은 시간과 시대를 건너며 분명 이름이 있고 존재했지만 이름없이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지워져 간 이들, 그들이 있었음을 기억하는것 . 작가가 곧 이 소설을 쓴 의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밑줄긋기

P17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P23. 문주로 살면서 나는 비로소 감각과 기억을 소유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단맛과 쓴맛을 인지하고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할 줄 알게 되고 심심함과 억울함과 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온전한 존재. 모든 '처음'의 기억- (중략)문주의 의미를 알아야 나의 역사도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P134. 돌이켜보니, 복희는 내게 늘 음식을 해주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녀만큼 내입에 들어가는 것에 관심을 가져 준 사람은
없었다. (중략) 기적처럼 복희가 깨어나 내게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음식들을 나열할 생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을 지키게 된 충분한 이유가 되었노라고, 왜냐하면 너를 자라게 했으니까, 그 음식이 너의 피와 뼈를 구성하는 성분이 되었으니까.

P192.그러나 자기연민은 생이라는 표면에   군데군데 나있는 깊고 어두운 굴 같은 것이어서 발을 헛디뎌 그곳에 빠질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영원히, 그 굴 안에서만 머물지 못한다. 고립이 필연적인 자기 연민에 침잠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으나 그마음의 상태를 사랑한 적은 없었다, 단 한번도

P 240 .진실을 유예하면서 보호받는 시간 또한 삶의 일부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P 252. 내가 증거니까요.
태어나고 구조되고 보호받고 누군가의 딸이 되고 배우와 극작가로 일하고 있으며 이제는 우주와 가족이 된, 그야말로 살아있는 삶의 증거니까요. 태어나기 전에 포기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던 시절과 지금도 가끔씩 그런 마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재의 나 자신 마저 포함하는 내 삶이니까요.
엄마, 들리나요?

나는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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