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름은 이수미다. 올해 갓 서른이 되었다. 당연히 여자다. 오늘 나는 당신에게 내 소개를 하고있다. 당신도 오늘 처음이니 적어도 나에게 이름, 나이, 성별 정도는 나처럼 알려주는 센스를 발휘해줬으면 한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당신이 내게 당신의 신상 명세를 알려주려해도 내가 그쪽으로 달려가거나 당신이 이쪽으로 오지 않는한 당신의 소개를 받기가 어려우니 오늘은 그냥 너그럽게 넘어가겠다. 어쨌던, 난 여자고 올해 서른이 된 이름은 이수미라는 사람이다. 조금 더 자세히 내 소개를 하자면(알고싶지 않고, 듣고싶지 않아도 당신은 알아야하고 들어야한다, 적어도 지금 이렇게 이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일반 중소기업을 다니는 아버지와 전업주부이신 어머니, 아직 대학생인 남동생과 함께 살고있고, 나는 일반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성격은 그렇게 모나지도, 그렇다고 너무 둥글지도 않은 무난하고 평범한 성격이며, 외모 또한 키 162cm에 보통체형, 그리고 그리 못나지 않은 얼굴이다.(좀 더 자세히 묘사하자면, 어깨정도 내려오는 갈색 단발머리, 중간톤의 피부, 쌍커플진 중간 사이즈의 눈에 약간 낮고 동글동글한 코, 그리고 작고 도톰한 입술, 유난히 두드러지는 하이톤의 표준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다.) 

   30년이란 세월이 어찌보면 길고 어찌보면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제 막 꺾여가기 시작하는 내 외모와 신체기능들 앞에서 난 어쩔 수 없이 세월의 무서움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2*의 나이에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내 몸과 또 주변의 시선에 조금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 회사에 입사한지도 어느덧 5년이 다 됐는데도 월급은 여전히 바닥수준이고, 매일매일 똑같은 업무속에서 지루하고 피곤하며 전혀 의욕을 느낄 수 없는 내 모습이 정말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해도 나이가 딱 걸려서 좋은 조건의 좋은 직장을 다시 찾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요즘같은 세상에 그나마도 백수가 아닌거에 감사해야 되는게 또 현실인 것이다.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10년 뒤의 내 모습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나마 좀 잘 풀리면 같은 회사에서 나보다 직책이 한두개 쯤 위의 상사와 잘되서 결혼하는거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독신으로 있던가, 아니면 정말 눈을 낮추고 낮춰서 남자면 된다는 오픈마인드로 남자를 찾아다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찌저찌해서 결혼을 하면, 또 아이도 노산이니 많이 낳기도 힘들어서 고생끝에 하나 낳을 것이고, 그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육아비용 충당하느라 우리 부부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눈물나게 아껴가며 고생할 것이며, 아이 키우고 보니 요즘 아이들이 예전 같지 않아서 혼자 큰줄 알기에 뼈꼴빠져가며 뒷바라지 해줬던 부모는 나몰라라하고 자기 살길 찾아 떠날 것이고, 늙어버린 우리 노부부는 그동안 아이 뒷바라지하느라 돈도 거의 모아놓지를 못했으니, 노년에도 무슨 일이든 할려고 찾아다닐 것이고, 젊을땐 거들떠도 안보던 허드렛일들도 주면 감사하다고 받아서 하게 될 것이다. 아~~~ 정말 암울하다... 

  오늘도 난 회사일을 끝내고 직장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제각각 각자의 목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언제나처럼 난 혼자서 역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그 짧은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내 머리속은 이런 저런 생각들로 생각의 실타래를 엮어가고 있었다. '이제 저녁7시인데 이대로 집에 가긴 좀 아깝지 않나? 그렇다고 친구를 만나자니 다들 결혼하고 태어난지 몇달 안된 아이들이 있어서 움직이기가 어렵고, 가을이라 하늘도 맑고 공기도 상쾌하고 환경은 정말 최적이라 그냥 가긴 너무 아쉬운데... 어쩌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 발은 이미 전철안으로 나를 들여놓은 상태였다. 역시 습관이 무섭긴 무섭다. 내가 이리로 가자고 내 발한테 명령한 것도 아닌데 으례 그러려니 하며 내 발은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전철로 나를 이끌어 온 것이다. '된장... 이대로 그냥 집으로 가? 집에가면 또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겠지... 넌 30이나 먹도록 남자친구 하나없이 뭐했냐... 왜이렇게 일찍 들어왔냐... 넌 만날 사람도 없냐... 으휴... 맨날 고장난 축음기마냥 같은말을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뱉어내는 엄마가 대단한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집에 도착해서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내가 대단한 건지.... 전자던 후자던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이미 전철은 건대입구를 지나고 있었다. 또 난 집으로 향하고 만 것이다. 이휴... 이러니 맨날 구박받지... 

  "띵똥~ 띵똥~~"  

  "누구세요?  수미냐?" 

  "네..." 

  "밥은 먹었어?" 

  "아뇨..." 

  "아니 이시간까지 밥도 안먹고 뭐하고 다닌거니... 친구라도 만나서 밥이라도 사먹지.. 넌 집밥이 그렇게 좋니? 가끔은 친구들이랑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그럴 수 있잖아. " 

  "네..." 

  "맨날 대답은 잘하지.. 실천을 해봐 실천을... 이제 너 나이가 서른인데 이렇게 살거야? 다른 애들처럼 남자친구도 만들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래야지... 넌 무슨애가 그렇게 관심이 없니.. 그냥 그렇게 평생 혼자 살다가 죽을거야?" 

  "아니... 엄마는 회사갔다와서 피곤한 사람한테 들어오자마자 왜이래요?" 

  "아이구..  꼴랑 그 잘나빠진 회사좀 다닌다고 유세냐... 엄마가 지 어릴때부터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공부시킨건 생각도 안나나보지? 너 혼자 큰거 아니야... 다 엄마가 고생해서 키운거야.. 솔직히 네 아빠 그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너랑 너 동생 대학교 학비까지 대주면서 이렇게 키운게 어디 쉬웠는줄 아니? 이제 겨우 대학 졸업하고 학비랑 용돈 안받고 회사좀 다닌다고 유세냐? 너가 매달 갔다주는 돈도 그동안 내가 너한테 한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어디서 엄마한테 말대꾸야 말대꾸가!!" 

    "......... 죄송해요..... 방에 들어갈께요... 옷 갈아입고 좀 씻어야겠어요..." 

  이제 엄마의 저런 잔소리는 이골이 박혔다. 괜히 몇마디 더했다가는 긁어 부스럼 꼴이다. 재수없으면 하루종일 훈계나 듣고 있어야 하니 그냥 적당히 잘못했다 수긍하고 자리를 피하는게 상책이다. 빨리 독립을 해야하는데 한달 월급 150에 4대보험 때면 140정도... 거기서 엄마 드리는돈 50만원 제하고 나면 90만원이다. 여기서 적금 40만원 넣으면 남는 돈은 50만원이다. 사실 이 돈으로는 친구 만나기도 힘들다. 그냥 매일 차비하고 회사에서 점심먹으면 끝나는 돈이다. 이렇게 모은지 한 2년 됬으니 천만원 정도 모은 것 같다. 휴.... 근데 서울에선 이 돈으로 월세를 구해도 월세가 비싸서 계속 적금 넣으면서 집에 눌러있느니만 못하니... 이도저도 못하는 현실이 또 답답할 뿐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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