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풍경들 - 고종석의 우리말 강좌
고종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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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국어라는 말보다 한국어라는 말을 선호한다. 국어라는 말에 담긴 자기 중심주의‧주관주의가 사물에 대한 객관적 서술에 알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어‧한국어‧조선어」-16쪽

많은 사람들이 ‘한글’이라는 말을 ‘한국어’의 의미로 사용한다. … 이런 혼동이 생긴 것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서 한국어와 한글이 워낙 견고하게 맺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 한국어와 한글의 결합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한글 ‘험담’ 두 마디」-44~45쪽

한글이 로마 문자보다 훨씬 더 뛰어난 글자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한글이 로마 글자보다 2천 년 쯤 뒤에 나타난 글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그 2천 년 동안 인류가 쌓은 지식이 한글에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게다가 한글은 그 놀라운 제자 원리에도 불구하고 한자처럼 음절 단위로 네모지게 모아 쓰게 돼 있어서, 음소 문자 본연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 「한글 ‘험담’ 두 마디」-46~47쪽

고유어‧한자어‧외래어는 세 층을 이루며, 또는 동심원을 이루며 한국어를 만들고 있다. 한국어 어휘가 고유어로만 이뤄지지 않은 것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에 고유어로만 이뤄진 언어는 없다. 완전히 단힌 사회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자어와 유럽계 외래어 같은 차용어들 덕분에 한국어는 그 어휘를 크게 불렸고, 생각과 느낌의 결을 셈세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차용어들은 한국어가 받은 축복 가운데 하나다. 그것들은 외국어 단어가 아니라 한국어 단어다. -「한국어, 세 겹의 언어」-54쪽

이들(‘바른말’에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은 어떤 단어나 표현의 옳고 그름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그 언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무시하고 있다. 여기서 어원이나 본디의 뜻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관습이다. 그리고 그런 관습이 생긴 데에는 말하는 대중 나름의 심리적‧사회적 이유가 있다. -「역전 앞과 한옥집」-65쪽

말할 나위 없이 둘(‘하느님’과 ‘하나님’) 가운데 옳은 말은 하느님이다. … 마땅히 하느님이 되셔야 할 분이 하나님이 된 것은, 우리말 모음 체계에서 ‘아래아’, 즉 ‘ㆍ’가 불안정해지며 빚어진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 -「하느님과 하나님, 기독교와 개신교」-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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