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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 개정판 ㅣ 매스터마인즈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997년에 발표된 이 책은 2005년 국내에서 번역되어 초판 42쇄, 2013년 7월까지 개정판 30쇄의 저력을 보인 탓인지 두산백과에서도 줄거리가 실려있을 정도이다. 다음은 흡사한 반복과 재탕의 엔트로피적 결과물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책 몰입의 즐거움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시피 한줄요약하면 몰입이 즐거움을 가져온다는 내용이다. 보다 엄밀하게 즐거움이나 행복감은 몰입이 끝나고 그것을 회상할 때나 감상할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몰입의 깊이와 농도이며 행복감의 크기와 여운도 그것에 좌우되는 것으로 본다.
그러면 몰입은 무엇일까? 몰입은 물아일체, 즉 일, 여가, 인간관계 등 대상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상황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래서 몰입은 집중을 통해 능동적으로 그것과 함께 할 때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집중력과 능동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저자는 프로테스탄트사에서 나온 향수병을 책 위에 고의적으로 쏟아버린다. 향수의 이름은 짐작컨데 칼뱅이 심혈을 기울인 '소명' 같다. 머리말로 직업이나 일, 인간관계, 여가 같은 낱말을 붙여도 꽤 산뜻한 어감을 준다. 실제 소명은 신의 예정에서 비롯한다. 구원을 받을 자는 신이 이미 예정해놓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버림받았다고 마냥 손 놓고만 있기에는 인간은 지나치게 부지런하거나 욕심이 많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아무리 미워도 죽으라 열심히 하다보면 신도 이쁘게 보아 구원해주리라는 간절한 희망사항이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몰입은 이러한 배경을 발판 삼아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주 싫고 하찮은 것이라 생각되더라도 전 우주를 통틀어 자신만이 그것을 할 수 있고, 자신만이 그것을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것을 대할 때 집중력이 샘솟고 능동성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신을 바라보며 행하는 소명으로 생각할 때 그것은 나에게 가치를 얻고 몰입을 선사해주며, 행복감에 젖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경험들은 더 나은 몰입과 경험을 재축적하여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고 세상의 무질서를 줄이는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위는 종교와 마찬가지로 무엇에 심취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초능력 같은 능력을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시골에 계신 노모께서는 팔십 평생 농사일을 하셨다. 본격 농업을 접은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손발이 노는 것을 허용치 못하는 성격이시다. 보다 젊은 시절, 팔다리가 쑤시도록 일하시고 밤이 되면 끙끙 앓다가도 해가 밝으면 또 다시 일터에 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시던 모습이 역력하다. 논밭의 작물들은 자식만큼 소중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었을런지 추측만 가능할 뿐이지, 어머님의 몰입 이유는 당신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기에 그것이 그곳에 있었던 것인지 알아낼 길은 없다.
그렇다면 왜 몰입으로 인해 행복감이 오는 것일까? 아마 그것은 오랫동안 유전적으로 축적된 습성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열매를 채취하든, 동물을 사냥하든, 농사를 짓든, 공작물을 만들든 그 모든 것들이, 그 오랜 세월 동안 행위로서의 대가로서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행위의 대가는 대부분 산술적이고 경제적이어서 노동의 원인과 결과를 수이 연결시킬 수 없다. 우리의 행복 불감은 여기에 근원하며, 그것을 채우기 위해 단순히 재물을 획득하는 것, 여가를 즐기는 것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고 노는 것, 가진 것이 마냥 행복을 유지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문명사회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은 상당히 창의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