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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달과 6펜스는 책 말미의 작품해설에서 자세히 나와 있듯이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삶을 추억하며 그의 삶을 환골탈태시킨 소설이다. 다행히 표지그림『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은 고갱의 실제모습과도 유사해 찰스 스트릭랜드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목의 낭만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왜라는 질문을 왜를 찾아나섰던 자신에게 던지게 만든다.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마흔이 넘어 미 창조에 대한 열정을 쫓아 가족과 직장을 버린다는 설정 때문인듯한데, 당연히 비현실성의 억지춘향 따귀 때리고도 남을 전설의 고향이다. 그래서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인간형이 고래불해수욕장 명사20리 간, 20년 전 동행했던 여친의 왼쪽귀걸이(보통 축과 크로스된 위치의 물건을 컨트롤할 때 손은 제어가 불량하다)를 되찾은 것처럼 초초극소수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씨가 되어 사소한 감정들에 이별의 의미들을 덧철하고 부풀려서 드디어 별리가 되어버렸다면, 그것이 사소해진 나이가 된다할지라도 살면서 한번쯤은 그곳을 꿈속에서 몽상속에서 가보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 인간이 가진 애틋한 마음, 자신에 이르는 측은한 마음이며 위로이다. 이 소설은 고전이어서 지금으로서는 구태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의 지점을 잘 포착하고 있어 앞으로도 고전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점이다. 회유에 의해 흔들리거나 방황하는 것이 아닌 목적의식이 뚜렷한 주인공이 타인 뿐 아니라 자신에게조차도 똑같이 냉정하게 대할 때 그의 현실외면에 대한 비난은 검은돈 받은 정치인의 손길처럼 우리의 의식속에서 사라진다. 더욱이 죽음을 대하는 고매한 태도는 감성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따끔한' 눈물샘을 선사할 수도 있다.
정작 기분 나쁜 것은 불혹을 넘어선 어떤 인간에게 그가 거울을 보며 부끄러워할만한 유사한 인간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더크 스트로브의 오브랩. 애잔하지만 전혀 불쌍한 인식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외형, 누군가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 앞에서 첫키스를 받은 소녀처럼 저멀리 있기나 한 건지, 들리기나 할 건지 의심스러운 교회 첨탑의 종소리가 울린다.
더크 스트로브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꼴은 우스꽝스러웠다. 좀 초췌하고 여위기라도 했더라면 동정을 살 수 있었으련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몸은 여전히 뚱뚱한 데다 불룩한 뺨은 잘 익은 사과처럼 불그스레했다. -중략- 슬픔의 흔적이라고는 도무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p.163~164)
더크 스트로브는 찰스 스트릭랜드가 몸져 눕자, 가지 않겠다고 역정을 내는 그를 굳이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아내와 함께 극진히 간호한다. 그런데 그만 그에게 부인을 빼앗기고 만다. 바람이 난 것이었다.
슬픔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고, 동정도 얻을 수 없는, 상실감이 증폭되는 우스꽝스러운 몸매의 소유자는 야망을 빼앗기고 용기를 빼앗기고 자유를 잃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것은 정의와 열정을 분실하였다. 벗겨지는 머리와 똥배가 흐르는 몸매 속에 언제 그런 것이 있기나 했는지 의심을 사고도 남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