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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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규정해본 적이 없는 삭막한 사물事物을 성인에게 쥐어준다면 어떤 것이 머리속에 반짝하고 스위치를 전위前爲하게 될까? 짭짤한지 아닌지의 간을 본 뒤 일반적으로 쓰레기통이겠지만 시야에서 최대한 멀어진 곳으로 이동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딱히 감흥도 있을 것 같지 않은 공항을 소재로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섬세하고도 간결한 감상과 남다른 시각을 선사한다. 사색의 깊이를 가진 우물에 밀어넣는다든지 감정의 폭풍우에서 피난처를 뺏어버린다든지 하는 고전적인 방법은 아예 글쓰기사전에서 지워버린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공항으로 들어선 독자는 입장료가 아까울 듯한 불안감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기우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항에서 7성급 호텔 느낌의 서비스를 받는 것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그는 절제있고 세련된 사색으로 현대와 자본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생각들을 어느 한쪽 구석으로 몰아 넣지 않고 교묘하고 절묘한 중간, 이른바 쿨한 느낌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것은 그가 관조자 역할에만 충실함으로써 그것을 보는 것으로 즐기되, 개입하였을 때의 참여와 선택, 책임 등에 따르는 피로를 염두해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항의 구조물에 대한 찬사, 동떨어진 발터 벤야민의 정서에 대한 언급, 콩코드룸에 대한 부러움, 영국항공대표 월시의 만남에서의 호의와 또다른 소재에 대한 욕구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과거 신사의 신중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진정할 수도 없고, 진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포스트 진정성 시대의 아포리아를 넘어선 고급 속물※에 닿지 않을까 측심연測深鉛을 조심스레 던져보게 된다.
※ 김홍중, 2009, 마음의사회학, P.45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살던 인간이 이륙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분리불안을 겪으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그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만, 결국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생각이라는 것도 일상으로 돌아가버린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다시 여행을 결심하게 되지만, 본질은 여행의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찌보면 몽타주라기 보다는 콜라주에 가까운 책의 산만은 아담한 사이즈와 일상적인 사진의 입체화, 단순히 공간을 같이하는 인간들의 얕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수준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출근시간 또는 퇴근시간에도 카이로스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음을 환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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