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나 그렇지만 목요일에는 아들을 위한 이마트 문화센터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내와 아들을 문화센터 복도로 떠나보내고 남은 시간은 살리기 위해 있는지 죽이기 위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트 내의 어딘가에서 포지션을 잡아야 한다. 물건을 사러 간 것도, 구경을 하러 간 것도 아니어서 몰입된 시선을 기다리는 진열대의 물품과의 교감도 마뜩하지 않다. 부메랑처럼 다시 나타날 그들은 타원을 그리며 공중을 선회하지 않으므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코너와 코너 사이 충돌의 부재를 목적하며 운전당하는 카트에게도, 소비를 가장한 배회자에게도 가장 소일하기 좋은 장소는 마트 내의 간이서점이다. 단순히 표시를 넘어서는 종이의 집합체는 마트 내의 어떤 코너보다 카트의 긴 휴게시간을, 배회자에게는 시선처리의 정당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일반서적 코너와 육아서적, 교육서적 코너 중앙에 위치한 나무의자는 등받이를 소유하지 않고서도 오직 소비만을 위해 마련된 장소에 화장실, 수유실, 놀이방과 더불어 그 밖의 어떤 것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기에 충분하다.

정의에 관해서라면 『존롤스의 정의론』은 언제나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1971년에 출간된 이 책은 정의 문제의 종결을 짓지 못했고, 여전히 정의의 문제는 사회, 정치, 철학, 경제학자들을 괴롭히는 난제로서 책으로 포장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델 또한 사례 등를 통해 정의의 기준을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논리는 책의 마지막 몇 페이지에만 할애하고 있다는 점은 섭섭하기 이를데 없다. 이성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던 고대나 중세에는 신의 말씀 하나로 정보와 문자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지만, 현대의 문제들은 그림액자 속의 주인공이 그 액자를 들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합리적 해결도 원만한 해결도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란 인간이라는 종족의 집단방어체제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을 반추해보면 일부 또는 개인 희생의 의미는 끝없이 퇴색해버린다. 개개의 인간이 모여 이룬 집단이 사회와 국가이지만, 그것은 개인의 목적과는 배치되게도 별개의 목적으로 활동한다. 실체가 없는 유령처럼 (법인격을 부여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 대상물로서 신뢰하고 감각할 수 없는 대상은 어떤 식의 권력과 강제로서 어떤 식의 희생을 정당화한다.

정의가 때에 따라서 국민과 역사를 업고 텔레비젼에 출연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국민이 심판해야 합니다.", "역사가 심판할 것입니다." 는 서로가 여론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상대방도 똑같은 말들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와 같이 도덕, 신앙, 공동선과 같은 추상에 매달린다는 것은 그것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에는 복잡다단한 기준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이론화하는 것은 생각만을 어지럽힐 뿐이다. 또 다른 사례에 대해서 또다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동안 그 사건은 어떤식의 비정의나 정의로 마무리 될 것이고, 그것을 회상하는 것은 죽은 자들에게 명복을 비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이 될 것이다.

이성과 지식의 한계에 부딪히는 이론가들의 정의는 없다. 정의가 없다는 표현보다는 그들이 말하는 정의가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그것은 합리적 기준의 문제라기 보다는 위정자의 도덕적 윤리적 소치에 더 비중이 있다고 보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자유와 평등, 여당과 야당, 자본가와 노동자, 교수(교사)와 학생, 좌익과 우익 정통와 이단 등등 이 모든 대립되는 것에 형평과 정의, 분배를 문제 삼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만큼 온건할 수는 없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던가, 이긴 자가 강한 것이던가" 의 질문을 바꿔서 해보자. "열심히 공부한 자가 합격한 것인가. 합격한 자가 열심히 공부한 것인가?"  정작 이런 표현들이 중요한가? 말이다. 타이레놀만 필요할 뿐이다.

정의는 이제 뚜렷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정의를 기준하는 것 보다 정의의 이름을 오용하는 자들을 탐색할 촉수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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