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8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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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때. 엄마가 500엔을 주면서 뭐든지 좋은 것을 사라고 했다. 하지만 난 혼자 가는 걸 망설였고, 옆에 있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단다, 돈만 있으면 어른이든 어린이든 마찬가지니까." 용기를 얻은 나는 가게에 가서 어떤 물건을 골라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점원아저씨는 미소를 띠며 고개까지 숙여 인사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엄청 좋아진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말했다. "정말 엄마가 말한 그대로네."  


이것은 카미야마켄지 감독의 애니메이션『동쪽의 에덴』에서 주인공 타키자와가 여자친구 사키가 건네 준 500엔을 보고 자신의 옛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자본주의는 돈 앞에 평등하다는 것으로 일단 민주적 기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돈의 많고 적음에 따르는 약육강식의 구속적인 질서와 규율을 사회전체에 강요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회, 문화, 환경, 민족, 국가, 정치 이 모든 것들을 시장이라는 곳에 일렬로 불러 세우고, 팔고 사는 것에서 성공과 행복을 성취하라고 부추긴다. 그래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시장은 정부나 법의 통제가 없어도 되는 정글이나 콜로세움의 원형경기장 같다. 호프만 방식에 의한 인간 값어치 결정이 통용되듯 우리는 죽어도 마땅히 돈으로 화할 수 있는 화신貨神의 경지에 오른다. 


이 책의 저자 칼 폴라니는 시장과 자유주의를 찾아 이의 발원과 확산지인 영국에 이른다. 엔클로저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양모산업의 성장은 1733년 존케이의 플라잉 셔틀(flying shuttle) 개발을 시작으로 해서 1785년 카트라이트의 증기기관 역직기의 발명으로 이어지며 면직물 생산량의 급증으로 대표되는 산업혁명을 불러온다. 대량생산을 가져온 기계제 산업은 생산품이 소비될 판매처를 필요로 했으며, 재료, 토지, 자본, 노동 같은 요소를 적시에 공급받을 수 있어야 했다. 더불어 판매와 구매 사이에 화폐 같은 매개자의 존재까지 요구했다. 그래서 이들 요소의 자유로운 수급은 기계제 산업의 요건이었고, 사회라는 전체에서 분리하여 요소화 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를테면 영국에 있어 1795년의 농민의 이동을 허락하는 정주법 완화는 그것의 시초였다. 교구의 농민들은 경기활황으로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는 경우 높은 임금을 찾아 도시로 떠났고, 경기가 위축되면 실업자가 되어 생계를 유지할 목적으로 다시 고향을 찾았다. 버크셔 주, 한 지방의 교구에서는 지역사회의 급격한 인구감소 및 재정기반 붕괴를 눈 뜨고 볼 수 없자, 임금부조수당을 지급하자는 스피넘랜드법(1795년)이 제정된다. 이것은 지역 지배층의 온정주의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실업자와 빈민의 증가는 지주와 지배층의 기반을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구빈법(빈민구제)과 스피넘랜드법의 적용은 실업자와 빈민의 구분을 혼탁하게 했다. 고용주들이 스피넘랜드법 하의 보전수당을 악용해 최저임금을 지급하면서, 노동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실업자가 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도록 부추겼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태, 부랑, 실업의 문제는 영국의 사회정치적 문제로까지 불거졌고, 이의 해결책으로 제시된 논리들 중 디포나 타운센드의 주장은 고전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미스에게까지 전염된다. 


1719년 대니얼디포는『The Englishman(1713년)』에 나오는 스코틀랜드 선원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소설『로빈슨크루소』를 출간한다. 로빈슨크루소섬은 주변 두 곳의 섬과 더불어 1574년 11월 22일 스페인사람 후안페르난데스가 발견했는데, 그의 이름을 따 후안페르난데스제도라 불렀다. 그러다가 1704년 10월에 알렉산더셀커크라는 선원이 영국무역선박에서의 의견 마찰로 무인도인 로빈슨크루소섬에 유기되었다. 해안에서 거북이를 잡아먹고 염소가죽으로 옷을 해 입으며 연명했는데, 1709년 2월 2일 영국사략단의 선장 우즈로저스와 항해장 윌리엄댐피어에 의해 구해지면서 이 이야기가『The Englishman』으로 출간된다. 4년 후 디포에 의해 소설화되면서 무인도였던 섬은 로빈슨크루소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디포의 소설과 윌리엄댐피어의『세계항해이야기(1709년)』에 나오는 무인도라는 소재는 다시 요셉타운센드라는 고교회 목사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것은 구빈법에 관한 논문으로 발표되기에 이른다. 그는 제8장에서 로빈슨크루소섬의 염소와 그레이하운드에 관한 이야기─영국 선원 존페르난도는 항해 중 식량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무인도인 이 섬에 염소 한 쌍을 풀어놓았다. 염소는 먹이의 제한이 오기까지 풀을 뜯으며 번식했다. 그러나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가장 나약한 염소들이 먼저 도태하고, 개체수가 먹이의 과소여부에 따라 자연스럽게 증감을 번갈아가면서 균형을 이루었다. 어느 날 영국의 사략선이 이 섬에 들러 염소를 취하는 것을 알고, 화가 난 스페인 무역선은 불어난 염소를 박멸하기 위해 그레이하운드 한 쌍을 풀어놓는다. 그러자 이번에는 개가 먹이(염소)의 한계가 올 때까지 번식했다. 그래서 염소는 개를 피해 해안의 절벽이나 산악으로 숨어들었고, 개들의 개체수는 자연스럽게 감소하였다. 하지만 개들 중 강하고 주의 깊은 것들은 늘 충분한 먹이를 얻을 수 있었다. 풀을 뜯기 위해 내려온 염소들 중 부주의하고 경솔한 것들이 개들의 먹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양자 중 나약한 것이 가장 먼저 자연의 채무를 지불해야 했다. 가장 활동적이고 정력적인 것들이 그들의 삶을 보존했다. 인간이란 종의 수효도 마찬가지로 식량에 달려있다. 불행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라도 위안의 근원이 된다. 그들에게는 적어도 부분적 악이 보편적 선인 것이다.─를 하면서 자연 상태의 동물의 개체수가 식량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절되는 것처럼, 구빈법 하의 나태, 방탕, 처참한 극빈자들이 넘쳐나는 상황을 구제하고 개선하는 길은 구제법의 시행을 오히려 중단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굶주림은 제 아무리 흉맹한 동물이라도 순하게 길들이는 법이므로, 무릇 빈민들에게 일하고 싶은 맘이 들도록 자극하고 추동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굶주림뿐이며(p.341), 더 나아가서 굶주림을 해결하도록 자비가 베풀어진다면 선의나 감사의 감정을 자아내는 가장 확실한 기초가 된다고 말한다.  


물론 사회의 원형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가정했던 로크처럼 타운센드의 논문 중 염소와 개의 公理가 사실인지의 여부를 판단할 길은 없다. 당시로는 구호 극빈자 문제가 이전의 도덕적인 기초로는 해결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맬서스나 리카도 같은 학자들이 더욱 더 자연주의에 빠져들었는지 모른다. 한편 공리주의자 제레미벤담은 과학적 최저비용이라 할 수 있는 굶주림을 이용해 빈민구호를 자연스럽게 치유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산업의 육성과 노동자의 근면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기근이 상존하도록 흡족한 임금을 주지 말아야 하며, 결핍의 상태로 지속시키는 것만이 정부의 할 일이라며 한걸음 더 나아가 목청을 높였다. 타운센드의 논고는 고전경제학자뿐만 아니라 찰스다윈 같은 진화론자에게도 영향을 끼쳤는데, 경제적 자유를 부르짖는 공장주들을 비롯한 신흥 산업자본가를 위한 논리로 역할 했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변되는 시장의 자동조정기능을 지지하며 전 지구적인 자유시장경제의 확산을 조장하는데 일조를 했던 것이다.


시장자유주의자들은 불가피한 계획과 통제가 자유의 부정이라고 공격하는 대신에 영리 기업의 자유와 사적 소유는 자유의 핵심 사항이라고 치켜세운다. 또한 이것들을 기초로 삼지 않으면, 어떤 사회라도 감히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규정한다. 규제를 통해 창출되는 자유란 자유가 아니므로, 그것이 제공하는 정치, 자유, 복지란 단지 노예제를 은폐하기 위한 위장술에 불과하다고 비방한다(p.598). 또한 자유주의 철학은 권력과 강제란 사악한 것이며, 또 인간 공동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러한 것들이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복합사회에서는 이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환상에 불과한 자유의 이상에 충실하여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사회라는 실재를 부정하든가, 아니면 사회 실재의 현실을 받아들여 자유라는 이상을 부정하든 가이다. 전자가 자유주의자들의 결론이라면 후자는 파시스트들의 결론이다(p.599). 권력과 강제가 없는 사회란 가능하지 않으며, 강압이 기능하지 않는 세상도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인간의 의지와 소망으로만 모양이 형성되는 사회란 망상의 가정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망상은 경제를 각종 계약관계와 동일시하며 또 그러한 계약 관계를 자유와 동일시하는, 사회에 대한 시장 관점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이러한 망상은 또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개인들이 마음먹은 바에서 도출된 것이므로 개인들이 마음만 바꾸어 먹는다면 얼마든지 다시 제거할 수 있다는 한층 더 근본적인 망상을 키워낸다(p.600)


시장경제에 대량실업이나 빈곤이 발생하면 경험하지 못한 자유의 제한이 나타나지만, 투표자, 생산자, 소비자 그 누구에게도 사태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국가가 아무리 강압적인 행동을 벌인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그 국가를 거부해버리면서 자신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상상할 수 있다.


"인간은 지금 여러 새로운 종류의 권능을 얻으려는 찰나에 서 있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권력으로도 근원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사회악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그것이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악이라는 것을 인식할 것이며, 현실에 도움도 되지 않는 어린애 같은 불평불만을 그만둘 것이다." 


체념은 항상 인간에게 힘과 새로운 희망의 샘이었다(p.603~604)는 로버트오언의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은 당시로는 매우 새로운 것이었다. 빈민과 실업자에 대해 대부분의 주류학자는 문제의 근원을 사회에서 찾지 못했고 단지 인간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것의 핵심에 있었던 것은 기독교 사상이었다. 절대선인 신에 비해 인간은 늘 개선되어야 할 악으로 징표 되었기에, 종래에 절대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세상은 선과 악이 충돌하는 것이고, 선의 지배영토가 확장되어가는 것이 진보이자, 인간의 개선을 통하여 그 끝인 완전한 선에 도착하기까지를 목적하는 목적론적인 세계관이었다. 고교회파 신부였던 타운센드의 구민법에 대한 안목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나태와 가난의 모든 책임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이것에 대해 로버트 오언은 인간 성격 형성의 책임을 인간에게로 돌려 개인화시켜버린 기독교를 강하게 비난하며 거부했다. 인간 개선을 부르짖기 전에 사회의 해악을 제거하고 개선한 이후에나 인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시장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의 사회와 그 과정의 충격이 빈민과 실업자라는 사회문제로 나타났던 것이며, 산업화의 물결이 사회구조조차도 어떤 식으로 변형시켰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쟁적인 산업의 확장과 시장의 형성을 방치한다면 인간은 뿌리를 잃고 표류하는 존재들로 변할 것이며,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행복마저도 앗아가 사회악을 일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저질화와 사회악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따라서 시장경제들에 내재한  해로운 경향들에 대해 사회가 의식적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입법으로서 현실에 강제하여 견제해야만 한다(p.368)고 주장한다. 인간의 저질화는 공장에 그 자신의 아주 기초적인 것, 생계수단조차 의존하(p.369)도록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계처럼 철저하고 완벽한 일처리의 인간에게 주어지는 어떤 찬사는 인간의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산업과 자본이 원하는 요소화된 인간형에 대한 소망의 표출일 뿐, 그만큼 부품화되고 기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필요 없는 부품처럼 버려지더라도 당연시하는 세태는 경쟁력 상실이라는 말로 미화되는 시대인 것이다.


이것은 자본가에게도 마찬가지의 불안과 부담을 선사한다. 시장 수급 조절의 실패를 두려워해 보험을 들고 있는 것이 단순한 목적의 잉여 축적이라면, 자신보다 우월한 자본의 침탈을 우려하는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욕은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과는 무관하게도 그것의 덩치만 계속해서 키우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삶의 제1의 질서는 싫든 좋든 누구나 이익의 추구라는 목적에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시장화된 사회에서 돈의 상실은 생산자도 판매자도 소비자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존재의 부재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산업혁명에서 2차 세계대전까지의 유럽의 정치경제분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의 시각은 통념적인 이해를 벗어나 있다. 방직기계의 출현으로 시발된 산업혁명에서 제국주의 국가 간의 충돌로 빗어진 세계대전까지의 과정을 잇는, 이른바 자기조정시장이라는 개념을 뽑아 올리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기계제 산업의 출현은 산업생산요소의 원활한 조달과 생산물의 잉여를 소모하기 위한 시장과 무역, 평화가 인위적으로 필요했고, 그것의 폭력성과 불균형에서 초래된 긴장들이 전쟁으로 폭발했다고 말한다.


1944년 출간된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가 되어가던, 시장주의의 사멸을 외치기에 좋은 시기에 나타났다. 시장경제의 구속으로부터 새로운 자유는 새로운 희망으로 부풀어있으며, 소수만의 특권을 챙기는 것에서 딸려오는 부스러기의 오염된 자유가 아닐 것이라고 기대한다. 산업사회의 여력에 부합하는 정의로운 자유와 시민들의 권리가 있을 것이라고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시장자유주의는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그 위기를 맞았으나 더욱 더 견고해졌고, 다시금 새로운 이름을 걸고 나타났다. 시장자유주의의 확산은 십자군전쟁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확산에 비유되며, 그것의 종교성은 원리주의와 흡사하다. 경제적 자유라는 흉각을 앞세워 사회라는 울타리를 들이받는 광폭한 야생인 것이다. 


정치경제학이라기보다는 문화인류학에 가까운 이 책은 인류의 문화와 인간 영혼의 자유를 재건하기 위해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경제를 정치에 복속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가로부터 자유를 부르짖는 시장주의의 끝은 항상 국가재정작용을 간절히 요구하는 개입(보호)주의였다. 그러하기에 완전한 자유에 대한 허상을 체념하라고 말한다. 투표에 의해 통제받지 아니하는 부분을 포함하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한 간극의 존재는 에드워드버네이스가 주장하듯 프로파간다가 리드하는 대중민주주의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을 가진 20의 계층들이 내놓는 생각들은 언제나 파레토를 벗어나지 않도록 제도화되는 것이 현실력이고 보면, 인간을 구제해야한다는 난문제는 이미 다른 인간의 힘이 훨씬 더 우월하다는 것과 그의 마음이 선량함으로 넘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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