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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박영숙 > 신앙 전기 읽기에 대해 불을 지펴준 도서
신앙전기를 읽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인다
백금산 지음 / 부흥과개혁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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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직장을 잠시 쉬면서 한 달 동안 어떤 책을 읽을까 고심하던 나에게 길잡이가 되어 준 도서 한 권을 소개하고 싶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분량(123페이지로 되어 있음)이어서 잠자기 전에 뒤적뒤적 읽다가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알고 있어야 하는 중요인물에 대해 이야기 하는 저자의 말에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되었다. 마치 기독교 신앙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저자는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읽는 전공서적과 같이 무거운 책이 아니라도 10년 이상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나로서는 좀 더 깊게 기독교에 대해 알고 싶었고, 신앙을 가지고 살았던 인물들의 삶을 좀 더 실질적이며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금산씨는 기독교인이라면 읽어봐야 할 훌륭한 도서를 소개하고 신앙 전기를 읽다가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대해서 친절한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전기를 읽을 때는 인물의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은 공감을 한다. 성경뿐만 아니라 위대한 신앙 전기를 읽다보면 가끔씩 나는 왜 이 사람처럼 되지 못하는 것일까 고민하게 되고 어떤 때는 나는 이런 일은 절대 못하겠지 하면서 위인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좌절감마저 느낄 수 있다. 위대한 인물들이 남긴 삶을 부러워하다가 그를 영웅시하고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되는 것도 모든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를 읽을 때는 인물의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위인의 삶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무엇 하나라도 나의 삶과 신앙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 신앙 위인들의 장점과 단점 모두를 삶의 적용을 위한 거울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책을 선택해야 하는데 무턱대고 아무나 읽을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누구의 전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단계별로 체계적으로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어 내게 꼭 필요한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객관적으로 전기를 읽도록 전기 입문서로 존 우드브리지의 <인물로 본 기독교회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 도서는 단행본으로 된 인물 개관으로서 가장 우수한 도서에 속한다고 한다. – 그래서 나는 쪼르르 서점으로 달려가 이 책을 샀다. 교회사 전체에서 중요한 인물과 각 사람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교회사를 파악하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조금 더 골치 아픈 이론이 들어간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 10인>은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다. 신학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야말로 성경 이해와 신앙성숙에 필수적이라는 저자의 말에 따라 이 책도 사서 읽었다. 철학 시간에 나오는 이론과 논쟁들을 보는 기분이었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나의 고민을 과거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인물들이 평생을 걸 정도로 진지하게 철학적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이 두 권의 책 외에도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도서는 필독서로 생각하고 다 읽어볼 예정이다. 물론 중요인물에 대해 비교하며 깊이 있게 객관적으로 볼 것이다. 신앙전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어떤 도서를 읽어야 할까 고민하는 나와 같은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독서가 독서를 낳고 나의 세계는 예전보다 더 풍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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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박영숙 > 거룩한 삶을 향한 분투
영적전쟁 베이직 시리즈 8
존 화이트 / IVP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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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화이트의 영적전쟁, 거룩한 삶을 향한 분투편에 저자가 25년 동안이나 복음을 비그리스도인에게 전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무거운 죄짐 아래서 두 발을 질질 끌고 가는 생활을 계속했으며 영혼 깊은 곳에서 그리스도가 주신 그 은혜를 충분히 맛보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듣고 아주 많이 놀랐다. 그와 같이 훌륭한 분은 삶 속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시험을 아주 간단하게 헤쳐나갈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과 우리의 죄된 본성을 따라 사는 삶이 어떤 큰 차이점이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 할 수 있는 질문들이 많다. 마음과 생각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달라진다. 습관적인 죄, 반복되는 실패로 인해 '주 예수의 이름으로'도 도저히 바뀌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불가능한 영역은 무엇인가? 대조적인 두가지 삶의 방식, 즉 옛사람과 새 사람의 특성이 무엇이며, 우리가 새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옛사람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수련회나 주변의 조언을 구하기, 도움이 되는 책을 읽기 등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마침내 확실하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답게 거룩하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망일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치워 달라고 간구하고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하기 보다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그 분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고 맡길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에 감사하며 옛 사람을 벗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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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박영숙 >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표방해야할 성품
산상수훈 말씀과 삶 성경공부 시리즈
존 스토트 / IVP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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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의 핵심은 마태복음 6: 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이며 기독교적 반문화이다. 세상 사람들이 귀중하게 여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성품을 제자들은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복있는 자는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며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적 빈곤을 인정하고 혼자서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사람이다. 구약에서 '가난한 자'란 가난에 찌들린 자라기 보다는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있는 경건한 자를 말한다.

하나님 편에서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늘 채워짐을 갈망하며 애통해 할 것이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며 그가 공급하시는 영적인 양식을 갈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영적 빈곤 상태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가? 영적으로 가난했을 때 받게 되는 축복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통하는 자는 왜 위로를 받는가? 죄에 대해 아파하는 사람은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 위로함을 받는다. 회개의 슬픔, 자신의 의와 결백함, 자존심을 잃었기 때문에 자신의 슬픔을 덜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 즉 하나님의 값없는 용서의 위로를 받는다. 구약의 '메시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실 위로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상처난 양심에 평화를 주신다. 회개의 슬픔으로 애통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죄 때문에 울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며 상처를 싸매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에 복있는 사람이다. 죄에 대해 아파할 수 없다면, 그 죄가 확산되어 더 큰 죄를 가져올 것이다.

온유한 자란 다른 이에게 겸손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사람이다. 나 자신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나를 온유하게 만드는가? 나의 부족함을 알고 이를 인정할 때 다른 사람에게 겸손한 태도를 지닐 수 있다. 마치 신분이 낮은 사람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친절하고 겸손하게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성경의 온유한 자란 '나약하고 남자답지 못한 자'가 아니라 친절하고 겸손하고 이해심 있고 예의바른 태도를 지닌 사람을 말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서 의란 율법적인 의(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도덕적인 의(성품과 행동), 사회적인 의(인간관계의 올바른 행동)를 말한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추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과 성품을 가지려 노력하며 세상에서도 사회적으로 재판의 공정, 상거래의 정직, 민권, 가정의 영예, 압제 받는 자의 고통을 해결해주려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그에게 행복을 주실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다. 의에 주릴 만큼 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배부를 것이다.

긍휼이란 죄로 인한 고통과 비참함과 고난 가운데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이며 치료하고 고치고 도움을 주는 '위안'이다. 다른 이에 대한 태도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도와주는 사람을 또한 긍휼히 여기신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도록 하나님은 기회를 주신다. 결국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나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생각해보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단순히 내면의 깨끗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공적, 사적인 삶 전반에 걸쳐 하나님과 사람 앞에 완전히 '투명한, 정직한 자'를 말한다. 이러한 삶이 내게 벅찬 이유는 나의 잘못된 부분을 감추고 싶고 나의 잘 된 부분만 보여 주고 싶은 본성 때문이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있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매우 정직한 사람은 외식, 기만을 싫어하며 교활하지 않다. 진실한 자만이 믿음의 눈으로 주를 보며 빛으로 거짓의 어두움과 속임수를 쫓아버리는 놀라운 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팔복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표방해야할 성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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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박영숙 > 진정한 성공의 의미
성공과 신앙
존캔달 / 예영커뮤니케이션 / 199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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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란 무엇일까. 부와 권력, 아름다운 용모, 명예 등을 소유하는 것일까?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 중 하나도 바로 성공에 관한 것이고,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많은 텔레비전 프로나 광고에서 표출되는 이미지도 바로 성공에 관한 것이다.

18세기에 과학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이성을 중시했던 낙관적인 인본주의 시대였던 만큼, 그들의 관점에서 성공이란 자연질서를 이해하고 자연을 이용하기 위한 기술을 만들어냄으로 성취되었다. 이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영적 번영의 법칙을 주장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성공의 공식을 따르기만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성공신학은 자연세계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듯이 영적인 세계에도 성공을 위한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20세기는 성공은 건강, 부, 자유, 능력, 특권 등을 누리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성공이란 가치를 가장 많이 판매하는 시대이다. 심지어 기독교에서조차 하나님을 내걸고 성공하는 법칙에 관한 많은 책이 잘 팔리고 설교 또한 성공의 노하우를 가르쳐주기에 여념이 없다. 신앙을 이용한 극단적인 이기주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는 어떤 관점으로 성공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이러한 고민이 이 작은 소책자를 선택하게 했다. 솔직히 성경적 관점에서 성공에 대해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어서다. 한 번 뿐인 삶의 기회를 성공으로 이끌고 싶은 소망이 있기에….

잠언은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창조질서에 바르게 관계한다고 말한다. 창조질서가 죄로 인해 파괴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질서를 인식할 수 있고 매일 그 질서에 반응해야 한다. 잠언은 성공에 관한 법칙을 제공한다기 보다는 인간의 생각을 자극하고 생활에 통찰력을 준다. 매일 변화하는 삶의 상황을 어떻게 적절히 적응할 것인가에 관한 생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전도서는 성공에 대한 거짓 철학을 반박하며 인생을 실제적으로 보도록 요구한다.

전도서에서 헛되다는 것은 20세기 실존주의적 관점의 ‘무의미’와는 다르다. 전도서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 때문에 인생 전반에 파괴와 무질서가 만연한 타락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인생의 어려운 경험들, 일시적 사건이나 불의, 부조리들과 직면할 것을 요구한다. 성공에 대한 낙관주의적 철학은 우리의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비극적인 경험들, 한계, 악, 혼돈, 고통에 치우쳐서도 안되고 지나치게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에만 치우쳐서도 안 된다.

우리는 확실히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의 불확실함과 죽음의 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진취적인 정신과 모험적이고 즐거운 생활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롭다. 성공이란 타락한 세상에서 만나는 고난과 어려움, 혼돈된 상황들을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함으로 극복하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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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박영숙 > 죽음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
우리 읍내 오세곤 희곡번역 시리즈 1
손톤 와일더 지음, 오세곤 옮김 / 예니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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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고 나서야 살아있는 사람의 가치를 알 수 있다면 참 슬픈 일일 것이다. 나 자신에게 내 이웃에게 살아있는 동안 삶 자체를 기뻐하고 그 삶을 의미있고 풍요롭게 살아야 함을 깨우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읍내>의 주인공 에밀리는 내 질문에 대답한다. 인간의 삶 속에는 영원한 것이 존재하며, 죽음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사랑하는 아내, 에밀리가 죽은 후 그녀의 남편은 제대로 살 수 없었다. 술을 주체할 수 없이 마시고 에밀리의 무덤에 자주 찾아와 나뒹그러지며 우는 남편을 향해 죽은 에밀리는 안타까워 말한다. 자기는 하늘나라에 있으니까 죽음에 대해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죽음을 슬퍼하며 가슴을 치다가 삶의 소중한 순간을 놓치는 것은 결코 자기가 기뻐하는 일이 아니니 이제 당신의 삶을 다시 새로이 시작하라고. 삶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았으니 더 이상 죽은 자기에 대해 슬퍼하지 말고 남편이 열심히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에밀리의 마음이다.

난 가끔씩 손튼 와일더의 통찰력을 보며 감탄하고 생각에 젖는다. 에밀리의 말처럼, 살아있는 동안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며 삶을 채워야 한다고… 그런데, 쉽지 않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예고도 없이 찾아온 죽음의 문턱을 넘어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난 마치 영원의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마음대로다. 웃음보다 인상을 더 많이 쓰는 것은 도시의 삶이 고달프기 때문일까. 아님, 아직도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을 안타까워하는 에밀리의 대사가 떠오른다.
'오 지구야, 너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아무도 네 아름다움을 볼 수 없구나.'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며 오늘 하루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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