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트 키친 - 식재료 낭비 없이 오래 먹는 친환경 식생활
류지현 지음 / 테이스트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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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무엇이든 냉장고에 넣었다애매하게 밥솥에 남은 식은   덩이끼니때 먹고 남은 반찬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야채와 같은 것들을 분명 ‘잠깐’ 맡기는 마음으로 넣었다그러면 냉장고는 그것들을 마치  밥처럼 떠끔떠끔 받아먹었고 엄마는 며칠  퇴근길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왔다.

 

엄마는 냉장고에  음식물을 먹어서 없앨 생각보다 냉장고를  놓자는 발상의 전환을 선보였고 덕분에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는 냉장고가  대나 있었다 키보다  양문형 냉장고 하나그것과 높이는 같고 살짝 폭이 좁은 김치 냉장고 하나그것들의 절반 크기인 김치 냉장고 하나.

 

덕분에 냉장고를  때면 익숙한 풍경이 나를 반겼다유통기한이 반년은 지난 요거트와 두어  전에 잔뜩 만들어 놓은 맥반석 계란 같은 것이 냉장실 구석에 처박혀 덜덜 떨고 있는 풍경언제 시켜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피자와 치킨이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는 풍경매번 환대(?) 받은 것도 아니었다까맣고 버석하니 미라가 되어버린 바나나가 냉동고 틈바구니에서 도로록 떨어지며  발등을 위협하는 일도 종종 있었으니까.

 

당시 집안일의 책임이 (다고 여겼) 나는 그런 엄마를 도무지 이해할  없었다그래서 종종 아빠와 편을 먹고 ‘엄마는 냉장고를 맹신한다 놀렸다 냉장고에 음식을 쌓아두는 걸까아니 애초에 냉장고에 음식이 있는데  자꾸 장을 보는 걸까먹는 사람도 없는 반찬을  자꾸만 만드는 걸까나중에  집이 생기면 절대로 냉장고에 음식을 썩히지 말아야지하고 자신만만하게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 살기 3 차인   냉장고 안은 과연 안녕한가놀랍게도 그렇지 않다부모님 집에 있는 그것들보다 보유 품목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에서 차이가 있을  습성은 비슷하다손도   없게 시어 빠진 김치  전쯤 먹고 남긴 스팸비닐봉지 속에서 진흙물을 삐질삐질 만들어내며 곯아가는 당근 등등이제는 냉장고를 여닫을 때마다 ‘엄마가 이래서 그랬구나…’ 하며 탄식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 말을 연애할 때보다 살림하면서 사무치게 경험한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얼마 전에 읽은 , <제로 웨이스트 키친> 따르면 “한국에서는 음식물의 1/7 쓰레기로 버려지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매년 20  정도가 사용되고 있다라고 한다냉장고가 음식 쓰레기의 요람이 되어가는 집이 우리 집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식재료는 무조건 냉장고에 보관하는 습관이 “1주일  저렴하게 사둔 애호박이 냉장고에서 물러가고 있는데 오늘 저녁 장바구니에  애호박을 넣는” 무의식적인 소비로 이어지고거기서 발생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느라 “나의 월급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까지” 낭비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저자는  늦기 전에 “냉장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식생활 되돌아보고 대안으로 “스스로 부엌의 주인이 되어 인간의 기술과 자연의 힘을 적절하게 현명하게 쓰는 방식 소개한다관심을 조금  기울여 “냉장고에 보관할 수밖에 없는 것들은 냉장고 안에냉장고에 넣지 않아도 되거나 냉장고에 넣으면 오히려 상하는 식재료들은 냉장고 밖에 보관해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탄생된  <제로 웨이스트 키친>에는 냉장고 어느 칸엔 어떤 식재료를 얼마 동안 보관하는 좋은지싱싱함이 가셨거나 자투리만 남은 식재료는 어떻게 조리하면 좋을지와 같은 저자의 노하우가 아낌없이 담겨있다채소나 과일 꼭지에 밀랍을 발라 수분 증발을 막는 법이나 톱밥이나 쌀겨모래를 채운 용기 안에 당근과 같은 뿌리채소를 저장하는  낯설고 신박한 식재료 보관법은  책에서 난생 처음 접했다. (다들 알고 있는 방법인가요?)

 

아무튼 살림도 제로 웨이스트도 아직 뉴비인 나에겐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이 유익해서 차근차근 따라 해보고 싶었다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고 곧장 따라   있을 만한 것은 채소와 과일도  하나의 생명임을 기억하는 태도였다저자는 낯선 식재료를  때면보다 싱싱함과 건강함을 유지하며 보관하기 위해서 식재료들의 고향을 찾아본다고 한다 발상이  다정하고 귀여워 마음에  들었다어쩌면 앞으로 마트에서 야채와 과일을 만나면  마음도 이전과 같지 않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보통의 라이프 스타일 제안서나 요리책이었다면 책을 끝까지 읽자마자 ‘책에서 소개된 내용을 당장 따라  봐야지!’하고 장을 보러 나갔을 텐데 <제로 웨이스트 키친> 읽은 뒤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다만 냉장고를 열어 얼마 전에 사둔 식재료로 며칠 동안 먹을  있을지 가늠하고가장 오래 까지 남아있을 재료로 만들 메뉴로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았다버리려고 했던 마른 당근의 활용할 방법을 궁리해보기도 했다.

 

조만간 장을  시기가 다가오면 오늘의 마음을 잊지 않도록 다시 한번  책을 펼쳐볼 예정이다마치 ‘마르쉐 장터에서 우연히 만난 마음 넉넉한 상점 언니로부터 살림 팁을 잔뜩 얻어가는 듯한 기분으로    귀와 마음을 활짝 열고 이야기를 들어야지 책을 부엌 가까이에 두고 틈틈이 열어본다면 분명 나의 부엌도 차근차근 따뜻하고 낭비 없는 공간으로 바뀔 것만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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