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를 소설이 아닌 산문으로 먼저 만나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일까. 그렇지만 산문집을 통해 그분의 시선이나 마음의 결을 한번 따라가보았으니, 그분이 쓴 소설을 읽게 되는 날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마음이 더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 생각 역시 소설보다는 수필을 대하는 마음에 가까우려나.
아무튼 얼마 전 김금희 작가님의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읽었다. 읽고 나선 내 글에 대해 생각해봤다. 애초부터 내 안에 쌓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찾은 수단으로써의 글쓰기. 나의 최대 관심사이자, 그나마 가장 잘 알고 있다고 그래서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라고 믿는 글. (여러모로)나에게 비교적 안전한 글이었고 그래서 감당할 수 있는 불편함 정도만 발생시키는 글.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글쓰기라는 취미를 가진 이후 3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같은 글만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충분히 앞으로 걸어나와 고개를 내밀 수 있는데 적당히 안전하고 적당히 불편한 것 뒤로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발자국이 남지 않도록 뒷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일들에 대해서 생각을 밝히고 때로는 행동으로 이어가는 일이 내게는 아직 두려워서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것만 새삼 다시 기억한다. 어떤 글은 많은 고심 끝에 쓰여지고, 쓰고 난 뒤에도 마음이 쓰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아직은 알고만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가면서 때때로 존경심이 일었다.
책을 덮고나서 잠시 후엔 얼마 전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느 책에서 롤랑 바르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사랑하는 타인들에 관해 말하는 것을 구조 활동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궁극적으로 나의 글이 어디에 도달해야 하는지를 한참 생각했다. 당분간은 늘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