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카페
프란세스크 미랄례스.카레 산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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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육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해. 긍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하찮은 생각, 심오한 생각. 그걸 이렇다 저렇다 판단해선 안되지. 생각은 흘러가는 구름 같은 거야. 우린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생각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어떤 생각 때문에 괴로울 땐 그냥 ‘생각’일 뿐이라고 마음먹고 흘려버리는 거야.˝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말했던 것처럼 행복은 정말 그를 기다리는데 있는 걸까?

“과거랑 원래 그런거야. 과거는 어디에나 있지만 보이지는 않지. 그래서 우리가 과거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거고. 우리는 닻을 깊이 내린 배와 같아. 그렇다고 우리가 닻을 뽑아버리고 계속 나아가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난 나아갈 길이 없어. 내가 어디로 항해하는지, 어디에 묶여있는지도 모르겠는걸. 내가 어디서 왔는지조차 모르겠어. 그런데 어떻게 내 배의 닻을 올리겠어?˝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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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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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견딜 수 없다는 것만큼
견딜 수 없는 일이 있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전락했고
이 순간에도 한없이 전락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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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선 1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권희정.김은경 옮김, 이일선 그림 / 인디북(인디아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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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인간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의 내부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 사람의 내부에 있다는 것은 사랑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결정적 요소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왜 사랑이 사람다움 즉 사람이 그의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가능근거임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과 사람다움의 인간론적 관계를 밝히는것은 우리의 몫이다. ) 인간으로서의 사람의 본질은 관계성에 있으며 그 관계성의 본질은 살리는 관계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희생해서 타자를 살게 하다고 해도 타자의 삶의 주체는 결코 내가 아니라 타자이다. 타자를 타자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 그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타자의 절대 타자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적극적으로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보다 더 근원적인 사랑이다. 타자의 가치는 단지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그는 나와 다르게 존재한다. 사랑은 타자가 이렇게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견디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오래참는 것”이라고 말한다. 타자가 나와 다름을 견디는 것에서 믿음이 시작되며 믿음에 의해 타자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은 믿음의 시작이며 믿음은 사랑의 실천이다. 

둘,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수 있는 힘’이 허락되어 있지 않다. 인간에게는 미래에 대한 지식이 허락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또한 인간에게는 미래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삶의 긴장이 있다. 삶의 긴장은 소망의 이유이다. 

셋,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모는 인간은 자기만을 생각하고 걱정한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이고 더불어 사는 삶은 믿음을 전제로 한다. 이 믿음은 먼저 사람에 대한 믿으미고, 본심에 대한 믿음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믿음은 용서의 근거이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사람은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잇지 못하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타자로부터 공급받을 수밖에 없으며 또 타자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다움의 조건이다. 그리고 이런 조건은 다시 타자의 타자성을 견디는 타자에 대한 신뢰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사람다운 사람은 사랑에 의해 산다. 사람다운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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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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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정신적 자아가 진실된 자아라고 믿고 있었으나 지금은 건강하고 용기있는 동물적인 자아가 진실된 자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무서운 변화는 그가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남을 믿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믿지 않고 남을 신뢰하게 된 것은 자기를 믿고 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었다. 우선 자기를 믿는다면, 모든 문제는 언제나 안이한 쾌락만을 찾는 동물적인 자아가 아닌, 이와는 반대의 측면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그런데 타인을 믿는다면 그가 해결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게 다 해결되어 있었다. 대게 정신적 자아에 반하여 동물적 자아가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을 믿으면 항상 사람들의 비난이 따랐으나 일단 남을 믿자 주위 사람들오부터 지지를 얻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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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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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완벽한 인도인이나 미국인 또는 한국인이 이 세상에 존재할수 있을까??? 이름은 우리의 사람됨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것도 다른 사람에 의해 지어진다. 다만 우리가 이름에 부여하고 싶은 의미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을 따름이다. 옷이나 음식, 집 또한 별로 다르지 않다. 그것들은 우리가 가진 취향, 하는 일 정도를 드러낼뿐 정직 본질적인 것은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에게 끊임없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려한다. 어쩌면 이러한 의미 부여 자체가 인간이 지닌 또 하나의 본질적인 것, 곧 인간사의 희비극을 낳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나로서 어떤 부분은 너무도 공감이 가고 이런 부분들은 내가 한국인이라서 혹은 인도인이라서 느낄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고골리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그의 일대기같은 이야기는 곧 내게도 일어나고 있는 소소한 일상인지도 모른다. 40대의 나이에 어느날 죽어버릴수도 있고 서른 둘의 나이에 이미 이혼을 한두번씩 경험할수도 있다. 50대에 처음으로 혼자서 무슨 일을 해야만 할수도 새로 시작해야만 할수도 있다. 어찌보면 인생이 너무나 길다는게 너무나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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