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추석을 제외한 며칠동안 나는 개가 되어 살았다.

김훈의 '개'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책속의 화자에 그대로 몰입해서 감정이입이 되버리는 나는, 그래서 가끔

몰두하고 있는 책속에서 눈을 떼면 잠시 내 앞의 풍경에 어리둥절해 있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나는 '보리'라는 이름을 가진 숫놈 진돗개였고, 보리가 보고, 느끼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에 흠뻑 빠져 있었다. 보리가 살고 있는 세상, 보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냄새와 풍경들, 보리가  보는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정말 개가 되어

보리옆을 어슬렁 거리며 보리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을 알것도 같았다.

나는 개띠다.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개를 좋아한다. 어린시절에 아꼈던 개들에 대한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마당있는 집에서 살때, 먼 곳부터 내 발걸음 소리를 알아듣고 반가움에

짖어대는 우리집 개 소리는 늘 내 맘을 설레고, 기쁘고, 먹먹하게 했었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흥분, 지루함과 서글픔.. 개에게선  인간의 모든 감정들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늘 궁굼했었다. 개들의 삶과, 그들이 보는 세상과, 인간들이..

이 책은 바로 그 애기들이 들어있다.

몸뚱이로 부딛치고 뒹굴며 세상을 알아가는 개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개의 날들이 참 아름답고, 슬프고, 애틋해서 맘을 울린다.

보리는 숫놈 진돗개다. 다섯마리의 새끼중에 세번째로 태어나 처음 몸으로 익힌

고향은 수몰지구가 되 버린다. 보리는 옛 주인을 떠나 그 주인의 아들을 새 주인으로 맞아

바닷가 마을로 온다. 보리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늘 생생한 현재만을 산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주인에게 정성을 다하고, 매일 매일 새로운 날들을 몸으로 느끼고

받아내며 산다. 이런 보리가 감각하는 자연과 계절과, 사람살이의 모습은 참으로 풍부하고

다양하다. 그리고 보리가 보여주는 정과, 성실과, 노력들은 깊고, 따듯하고, 애달프다.

그러나 세상 모든것이 신기하고 기뻐서 날뛰던 어린 강아지 보리가 자라면서 겪는 것들은

녹록치 않다.

믿고 자랑스러워 하던 주인은 바다에 나가 죽고, 처음으로 마음에 품은 암컷은 사나운

다른 수컷에게 빼앗겨 버리고, 보리 자신도 그 수컷과의 싸움에서 다치고 상처입고

그리고 그 마음 준 암컷이 제 주인의 손으로 비참하게 죽어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보리의 삶은 지독하게 쓰고 아프다. 주인의 가족은 대처로 떠나버리고

빈집에  옛 주인과 남은 보리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이 책은 전해주지 않지만

보리의 마지막 독백으로 나는 짐작할 수 있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진히 흰순이와 악돌이 들이 살아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여전히 냄새 맡고 핧아먹고 싸워야 할 것이었다. 어디로 가든, 내

발바닥의 굳은살이 그 땅을 밟을 것이고, 나는 굳은살의 탄력으로 땅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

개로서 최선을 다해 살다가, 개답게 죽을 것이다.  개답게 살지 못하는 개들이 더 많은

이 세상에서 보리는 끝까지 개답게 살다 죽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맘 아프고 그래서 다행이다.  

이 소설은 눈으로만 읽는 글이 아니다.

온갖 냄새와 소리와, 느낌과 감정들이 얽혀 정말 개처럼 온 감각으로 읽게 되는 책이다.

김훈이란 작가가 보여주는 힘이다. 간결한듯 풍부하고, 마음을 툭툭 치는 표현들이

화선지에 퍼져가는 먹물처럼 천천히 번져와서 어느새 나도 보리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에

젖어 버린다.

사람품에 안겨서 샴푸하고, 사료먹고, 미용실다니는 그런 개 말고, 사방 쑤시고 다니며

제 기쁨과 분노에 겨워 어쩔줄 모르는, 그저 흔하고, 또 건강한 그런 개들을 보고 싶다.

개가 개답게, 사람이 사람답게, 세상이 세상답게 돌아가는 모습이 그립다.

책장을 덮었는데 보리는 가슴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이 개를 마음속에서 오래 오래 키워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