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지음 / 알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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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이야기를 대할 때면 항상 무거움을 느낀다. 역사적 의미로서의 비중 때문이라기보다는 특정 국가와 인물에 대한 감정적 회오리를 일으키는 사건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간혹 가볍게 역사 이야기를 만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너무 피상적이라서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제목 중 ‘서울을 거닐며’ 라는 구절에서 가벼움에 대한 상상을 하였으나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산책하듯 찬찬히 머물며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엷어져가고 있는 묵직한 역사이야기다. 느린 속도로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찾아낸 안타깝고 놀라운 진실들이다.

 서울이라는 곳에 존재했거나 현재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거나 표지석으로만 남아 있는 건물을 중심으로 기술 돼 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문헌을 참고하고 직접 걸으며 확인한 진실을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신뢰감을 주고 있다. 작가가 찾아 주는 역사의 현존은 엷었지만 그것이 안고 있는 진실은 너무나 또렷했다. 언젠가 서울의 야경은 개성이 없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서울이라는 도시는 ‘뿌리’도 점점 사라지고 있구나 싶었다. 체면 때문에 밥그릇 때문에 차마 뱉지도 못하고 삼켜버리지도 못한 채 목에 가시처럼 박아 둔 신랄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시원하게 까발려주는 것에서 오는 유쾌함이 있다.

 현재 미약하게 존재하거나 지워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보니 근대사와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비단 이 책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대사는 열등감과 열패감을 주는 사건이 너무 많다. 권력을 쥔 가짜들이 진실을 호도하는 동안 아이러니한 사연을 안고 엉뚱하게 존재하거나 윤색된 역사물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 앞에서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서울은 발전하는 도시답게 너무 많이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제야의 종소리는 울려 퍼지고 있고 전태일은 갔어도 그가 ‘외치던 구호는 지금도 여전하고’  한강처럼 역사는 흘러간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도시엔 우뚝 솟은 빌딩들’이 있는 정말 멋진 도시, 서울. ‘은혜로운 이 땅’에 산다는 자부심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이 아름다운 도시를 구성하는 개체임에 뿌듯함마저 느낀다. 날씨가 좋은 날 차를 타고 한강 주변도로를 드라이브 해보면 이런 노랫말에 맞는 풍경을 보면서 감탄사 몇 개쯤은 쉽게 날릴 수 있는 도시, 서울. 그러나 이 도시의 참 모습은 그런데 있지 않았다. 진실은 쌩쌩 달리는 차를 타고서는 만날 수 없는 곳에 있었다.

 한강 주변의 풍경에 넋을 잃은 어느 날 청취 중이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눈 크게 뜨고 현실을 제대로 보라는 듯, ‘사계(노찾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이 곡에 담긴 의미를 모르는 여덟 살 아이는 리듬이 재미있었던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사계’를 들으며 웃었던 여덟 살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고 아무것에나 자부심을 남발한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복원된 청계천의 밤을 밝히는 현란한 조명 빛을 배경삼아 기념사진을 찍을 때 쓸쓸한 바람이 일었던 이유가 이 책 속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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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1 1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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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2 08: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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