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 후유코 사계 시리즈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지식여행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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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후유코는 고미네 집안 네 자매 중 막내다. 후유코는 성격이 특히 예민하고, 한동안 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 후유코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약간 창백한 빛을 띤 하얀 피부, 살갗 밑으로 정맥이 파랗게 비칠 정도로 안쓰러운 느낌을 자아낸다고. 또... 뭐랄까. 마야콥스키나 자살한 러시아 시인 예세닌의 시집을 읽고 있기도 하고, 에세닌이 사랑했던 보스호라스 바다를 보는 걸 꿈꾸기도 하는 여성이랄까. 그렇지만 이런 것으로 다 설명되지는 무언가가 후유코에게는 있다.

 

후유코는 나카가키 노보루라는 카메라맨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 게 계기가 되어 도쿄에서 라디오 어시스턴트를 맡게 된다. 후유코는 라디오 방송일을 하면서 도쿄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광고 모델로 발탁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화려하고 번잡한 도쿄의 분위기에 휩쓸리지는 않는다. 후유코에게는 확실히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다음은 후유코의 말이다.

 

“... 모든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받고 싶기는 하죠. 그렇지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 원래 크기의 나를 여러분이 좋아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나를 크게 보이려고 노력하거나 작위적인 내 모습에 호감을 가져주기를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어요. 그런 건 뭔가 답답하잖아요.”

 

이런 후유코에게 나는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마음을 주게 된다. 이를 테면 후유코의 다음과 같은 생각이 좋다. “사진을 찍어버리면 왠지 방심하게 되거든요. ... 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내 마음속 필름에 평생 단 한 번뿐인 이 거리를 낙인으로 찍어두고 싶어요.” 그런 후유코는 첫 잠자리를 갖은 뒤 남자로서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가와모토를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은 모두 스스로 싸우고 스스로 구원을 얻어야 해.”라는 후유코 자신의 말대로, 그녀는 한 인격체로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은 내가 온전히 읽어낸 이츠키 히로유키의 첫 소설이다. 도서관에서 <청춘의 문>을 뒤적여본 적은 있지만, 무려 7권에 이르는 그 대작을 다 볼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히로유키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그가 쓰는 소설은 특히나 남성적이고 굵직굵직한 서사가 주를 이룰 거라는 선입견을 나는 지니고 있었다. 그런 인상 때문인지 그가 네 자매 각각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다는 소식에 갸우뚱했던 것도 사실이다. 남성 작가가 과연 네 자매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지 좀 의아스러웠다. 그러나 페이지 몇 장을 읽어나가면서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남성 작가와 여성 작가를 벌써부터 구분지어 문체나 캐릭터 묘사를 떠올렸던 내 촌스러운 지레짐작이 겸연쩍어졌다.

 

소설의 말미에 후유코는 셋째 언니 아키코가 하려는 환경운동이 자신이 느껴왔던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울증은 어쩌면 그런 지구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 원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제 아픔을 이겨내면서 세상을 향해 내딛는 후유코를 응원하고 싶다. 비록 그 길에서  상처 받고 쓰러지게 될지라도, 계속 전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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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 학교에서 배운 101가지
존 쿠프레나스 & 매튜 프레더릭 지음, 김소진 옮김 / 글램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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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공학에 대한 흥미도를 측정하여 차례로 줄 세운다면, 나는 아마도 하위 1%에 어디쯤엔가 있을 것 같은 사람이다. 공학은커녕 나는 수학이나 과학에도 흥미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수능을 마지막으로 수학과 작별했고, 대학 교양필수라 자연과학 강의 하나를 듣긴 했지만, 내가 자발적으로 관련 강의를 찾아 들은 적은 없다. 수강했던 경영학 몇몇 과목에 수학이 쓰이기는 하지만, 수학이라기보다는 산수에 가까웠다.

 

이런 내가 공학이나 과학적 사고를 동경할 때가 가끔 있는데, 직장에서 업무를 하면서 뭔가를 빼먹어서 투덜거리며 뒤처리를 해야 할 때다. 좀더 체계적인 사람이 돼야지, 라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쉽지가 않다. <공학 학교에서 배운 101가지>의 책소개를 읽으며 마음이 혹하며 반가웠던 것은 그런 사정 때문이었다. 다행히 이 책에는 공학적 사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도처에 드러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공학적 사고라는 게 인간이나 자연이 어느 정도 배제된 채 이뤄지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 책의 저자들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공학적 사고는 오히려 인간과 자연을 먼저 생각할 때 촉진된다. 회전교차로가 그 좋은 예다. 일반교차로가 회전교차로로 교체되면서 교통 정체, 사고 발생, 상해, 사망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인간의 삶을 보존하고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일궈낼 수 없던 성과다. 공학적 사고의 위대한 결과물들에는 복잡한 수식 이전에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 있다. 우리가 흘려보내는 폐수의 처리는 자연의 정화 방법을 모방해 이루어진다. 이를 테면 폐수처리장 침전지는 호수 역할을 하며, 자외선처리 과정은 햇빛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또한 우리가 언뜻 떠올리는 ‘공학적 사고 = 완벽에 대한 추구’는 때때로 맞지 않다. 공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완벽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다. 물론 다리, 우주선, 인공심박조율기처럼 오류가 인명에 치명적 손실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장치에 관해서는 완벽한 신뢰도를 설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장난감, DVD 플레이어 같은 제품들까지 완벽한 신뢰도를 추구하면 비용이 필요 이상으로 증가하게 된다. “고장 나게 설치하라”는 지침도 이와 관련된다. 이상한 말 같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가 있다. 바로 전기 시스템. 전류 급증현상 발생시 퓨즈를 나가게 하도록 설계돼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체계적으로 사고한다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현상 이면을 꿰뚫는 눈을 갖는 것이다. 흔히 모든 완충재가 제품을 운반 중에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잘못된 유형의 완충재를 사용하면 운송수단에 따라 진동이 더욱 증폭돼 제품이 손상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외부에서 물체에 힘이 가해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라는 질문에 대해 사람들 대부분은 막연하게 생각한다. 공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외부에서 힘이 가해진 물체는 정지한 상태를 유지하거나, 움직이거나, 형태가 바뀌거나, 혹은 이 세 가지 현상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고 떠올린다.

 

이 책은 공학을 공부하고 싶게끔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는 공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가 단 한 톨도 없었다. 하지만 공학이 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내가 어떻게 공학의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는지를 나는 이 책을 통해 배웠고, 공학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물론 공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 그러니까 체계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두 번 정도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아니,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게 몸에 밸 때까지 몇 번이고 더 읽어야 할지도. 그래도, 나는 그 과정을 즐길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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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의 영적전쟁
메어리 캐더린 백스터, T. L. 로웨리 지음, 홍성철 옮김 / 은혜출판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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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1976년부터 그녀에게 꿈과 환상으로 계시해주었다.”는 저자소개의 문장 때문이었다. 혹시 신비주의 서적은 아닐까? 안 그래도 얕디얕은 내 믿음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지는 않을까? 다행히 저자 메어리 K. 벡스터와 T. L. 로웨리는 자신의 주장을 펴면서 성경에서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 곳곳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본질은 아니다.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책을 읽어갈 수 있었다.

 

저자는 사람들이 영적 존재에 대해 취하고 있는 오류들을 교정해 준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는 말씀처럼 사탄은 존재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사탄의 영향력에 대해 우리는 더 민감해져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부정적인 일을 사탄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질병이 항상 마귀로부터 오는 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지만 사탄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이 구속 계획이 완성되는 날 악한 영들은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악한 영들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저자는 에베소서 6장 나온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생활 방식을 바꾸어야하는지 알려준다. 저자가 보기에 영적 전쟁에서 중요한 무기는 기도와 금식이다. 기도는 하나님 말씀을 듣게 하고, 금식은 하나님 능력의 근원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금식에 관해선 잘 아는 바가 없었다. 성경 속 인물들이 금식한 예가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이 책을 통해 실감했다. 모세, 다윗, 에스더, 에스라, 느혜미야, 여호사밧, 안나, 바울, 바나바,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금식하셨다. 우리는 규칙적으로 금식해야 하며, 1년에 특정기간을 잡아 놓고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금식을 하면서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가난한 자를 돕는 훈련을 해야 하며, 결국에는 자신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과 보혈의 능력에 관해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는 예수님 이름으로 마귀들이 떠나도록 명령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 지은 죄가 자신을 내리누르는 상황에서 예수님 보혈에 호소해야 한다. 그리고 저자는 실제로 이 무기를 사용해 승리했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저자가 외친 승리의 말은 다음과 같다. “예수의 이름으로 그리고 어린 양의 보혈의 능력으로 마귀와 귀신들을 대적한다!”

 

이 책은 내게 특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몇 년 사이 ‘영적’ 세계에 관한 설교를 거의 들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적’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신비주의를 떠올리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단들이 자주 시비를 거는 주제이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중요한 건 ‘영적 전쟁’이 성경에 나와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외면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만 들으려하고 지키는 셈이 될 것이다. 혹시 영적 세계에 대해 아는 걸 거리꼈던 기독교인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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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위크 마케팅 - 일주일이면 결과를 만들어내는
마크 새터필드 지음, 안시열.박찬우 옮김 / 토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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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이 좋았던 책은 아니다. 표지는 약간 투박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원 위크 마케팅’이라는 제목이나 ‘일주일이면 결과를 만들어내는’이라는 부제도 조금은 식상했다. 그런데 이 책, 내용만큼은 충분히 알차다. 책을 읽어가며 ‘원 위크’라는 말이 그저 광고용 문구가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정말 한 주밖에 걸리지 않는 방법들 위주로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틈새시장을 노린 마케팅, 그러니까 틈새마케팅이다. 틈새마케팅을 통해 시장에 맞는 메시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불특정 다수와 구체적 대상, 어느 편에 더 메시지를 전달하기 쉬운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저자는 마케팅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도 따라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고 쉽게 설명한다. URL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나 웹페이지를 만드는 방법 같은 기초부터 마케팅에서의 스토리텔링이나 파트너십을 통해 조인트벤처를 구축하는 법까지, 이 책 한 권으로 틈새 마케팅 습득이 가능할 정도다.

 
특히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저자가 일러주는 세세하고 깨알 같은 팁들이다. 저자는 보도자료 배포하기에 관해 말하면서 매체와 접촉할 때의 비법을 이렇게 전수해 준다. “보도자료를 받아 보았는지 절대 묻지 말라. 그쪽 사람들은 그런 걸 너무 많이 받다보니 일일이 기억할 수가 없다. 이런 질문을 하면 당신이 아마추어라는 인상만 남길 것이다. 상대가 당신의 보도자료를 기억한다면 먼저 말을 꺼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 같은 햇병아리도 프로처럼 마케팅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솟는다.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광고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저자는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광고가 운영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데, 심지어 입찰할 때 구글이 정한 입찰가는 신뢰해도 되지만, 페이스북이 정한 입찰가는 그대로 믿지 말고 최초 입찰가보다 10~20센트 낮은 가격으로 시작하라는 팁도 제공한다.

 
이 책을 읽으며 몇몇 대목에서는 마케팅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으로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웹페이지 헤드라인에 따옴표를 사용하면 메일 구독 신청 비율이 높아진다는 정보 같은 게 그렇다. 비디오 마케팅에서 대본을 작성하는 법을 알려주면서 두꺼운 카펫이 깔린 방에서 녹음을 하면 좋은 사운드를 얻을 수 있다거나, 복장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뉴스나 아침 토크 쇼 앵커들 옷차림을 살펴보라는 조언은 유용하다. 영업서신에서 추신(P.S)이 첫 문장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부분이라는 사실은 얼마든지 다른 글쓰기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학부 시절 마케팅 강의를 몇 개 수강했고, 홍보와 관련된 부서에서 일하고 있지만, 마케팅에 관한 체계적 지식이 내 머릿속에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회사에서 가끔씩 받는 교육은 거의 수박 겉핥기 수준이어서 업무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물론 이 책이 대학에서 쓰이는 교재처럼 마케팅에 관한 모든 이론을 다루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딱딱한 마케팅 이론들 대신 실제적으로 유용한 알짜배기를 여러 사례를 통해 전해주기 때문에 이 책은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케팅을 잘 모르는 이들은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자신만의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실천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저비용 고효율의 마케팅 책을 만나 반갑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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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 예술가, 세상 밖으로 - 독거예술가의 꽁방탈출 프로젝트
샘 베넷 지음, 김은영 옮김 / 오후의책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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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 예술가, 세상 밖으로>라는 제목이 단번에 와 닿았던 건 아니다. ‘독거 예술가’라는 말에선 왠지 ‘독거’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주는 암울함이 느껴졌고, ‘세상 밖으로’라는 말을 보고는 무슨 사회운동을 하자는 건 줄 알았다. ‘독거예술가의 꽁방탈출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봐도 아리송했다. 알고 보니 창조적 예술 활동을 하고 있거나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었다. “방치된 당신의 잠재력, 하루 15분으로 창조적인 천재가 된다!”라는 카피에 귀가 솔깃해졌다.

 

천재적 재능이 있는 사람만이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저자 샘 베넷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저자는 매일 15분씩 시간을 내어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라고 권한다. “하루 15분만이라도 자신이 정말 유명한 예술가인 것처럼 대접해주”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타이머다. 15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라게 될 거라고 저자는 우리를 끌어당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극본을 쓴다면 ‘유모 인물유형 잡아보기’ ‘발코니 장면 구상하기’ ‘제목 구상하기’ 등의 목록을 작성해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이 과제를 15분 동안에 해치워버리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문제는 예술 활동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우리들 자신이다. 저자는 우리의 예술 활동을 가로막는 완벽주의를 따끔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 정말로 먼저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세우는 법도 알려준다. 심지어 예술 활동에서 잘 거론되지 않는 문제, 그러니까 예산에 관한 사항까지도 일일이 짚어준다.

 

시간관리와 공간 정리에 관한 대목도 유익하다. 시간을 분 단위로 계산하라든가 마감시한을 설정하라는 지침은 이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일과표를 역설계하라는 대목은 신선하다. 어떤 중요한 행사나 계획이 잡힌 디데이에서 역순으로 날짜를 헤아리는 식이다. 그러니까 디데이에 계획한 일이 예정대로 실행되려면 그 전에 무엇이 이뤄져 있어야 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 정리에 관해 저자가 정리정돈 돼 있는 상태에서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찾지 못할 정도로 공간이 어지럽혀져 있다면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정리정돈의 여러 비결을 알려주면서, 쓸모없는 물건은 과감하게 내다 버릴 것을 주문한다.

 

우리는 예술 세계의 걸작들을 칭송하는데, 저자는 때로 저속한 것이 정답일 때도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무엇이 최선인지는 상대적일 뿐만 아니라 종종 맥락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조금 봐주도록 하자. 당신도 오로지 당신만을 항상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걸작을 만들어낼 만한 능력이 내게 없다고 자학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저자는 나 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명확한 언어로 교정해주면서도 예술 활동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질투하는 이들의 조바심이나 다른 이들의 뛰어난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열등감을 다스리는 법말이다. 이를 테면 예술 활동을 하다 자신에게 실망했을 때 저자는 이렇게 할 것을 주문한다.

 

1단계. 최악으로 과장해 보고 가능한 최소한으로 축소시켜 보기도 하자.
2단계. 큰 틀에 넣고 바라보자.
3단계. 털어버리자.

 

저자가 이런 말을 해줄 때 느껴지는 다감한 어조가 좋다. 덕분에 이 책을 통해 예술 활동을 하면서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배웠다. 심지어 예술 작품을 완성했을 때, 어떻게 출고해 판매하는지도.

 

이 책은 예술 활동에 대한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는데, 원래 자기계발서는 예술 활동을 하는 이들이 기피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읽었던 자기계발서들 가운데 상당수는 내게 힘을 주기보다는 나 자신을 제어해 또 다른 어떤 것의 노예가 되게끔 강요한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자기계발서라면 몇 권 쯤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 활동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나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하면서도 예술 활동을 하며 맞닥뜨리게 될 난관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배우는 것일 테니까. 저자가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를 적으며 글을 닫는다.

 

“비판적인 소리들은 항상 당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그 소리들에 끌려다닐지 말지는 당신이 하기 나름이다.
당신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만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신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면 실패했다는 느낌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것은 보장한다. 당신이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지 나에게도 알려주길 바란다.
기억하라. 세상은 당신의 예술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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