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얼마되지 않아 재우는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축복이라고는 없었다. '아비를 잡아먹고 나온 자식'  그랬다. 어머니에게도 형에게도 재우는 아비를 잡아먹고 나온 자식이었고, 가족을 고생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 장본인이었다. 재우가 선택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것은 재우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젊은 나이에 어머니는 과부가 되었다. 혼자서 자식 셋을 키운다는 것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할 것이가. 어머니는 견뎌내야 했다. 세상의 혹독한 바람 앞에서 자식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어야 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이 장남에게 거는 기대는 태산보다도 높았다. 맏이에게 집안의 미래를 걸어온 어머니는 맏이의 뒷바라지를 위해, 시인이 되기를 소망했던 재우의 희망을 포기하도록 했다. 돈을 벌어 절반은 형의 학비를 위해 소비했는데 칭찬은 커녕 무시와 학대만이 재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우와 가족들의 사이는 그렇게 멀어져만 갔다. 자기 인생이 중요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재우에게도 자신의 인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존재이다. 더 이상 재우에게 형과 어머니는 없다.

애정없는 가족들을 패해 닻을 내린 곳이 구명도이다. 8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날, 잠잠했던 재우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사건이 생겼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나는 재우가 가여워 어쩔 줄을 몰랐다.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인정할 수 없는 어머니를  맡아야 한다는 사실이 소름끼친다. 나는 어머니의 편애를 무기삼아 폭력을 일삼던 이기적인 형을 용서하지 못하겠다. 양심과는 담을 쌓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그 이기심 앞에서 재우 또한 이를 악 물었으리라. 나라면 형의 멱살이라도 움켜쥐고 통곡을 하였을 것이다. 애지중지하며 키웠던 형에게서 버림받은 어머니, 결국 그렇게 무시하던 막내아들에게 올 수 밖에 없었으면서 왜 진작 마음을 열어주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다. 형에게 했던 애정 표현을 반만이라도 재우에게 나누어 주었더라면 재우의 억울함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은 누구 편일까?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이 책대로라면 아무래도 세상은 이기적이고 속물인 인간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우에게 마음 속으로   소리쳤다. 어머니를 맡지 마라고, 평생 족쇄가 될 것이라고.

한 달만 시간를 달라며 , 그러면 서류를 꾸며 어머니를 모시러 오겠다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형수의 행동이 연극이라는 것을 재우는 알아야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형수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 재우가 미련스럽기까지 한다.

추석을 앞두고 구명도에 어머니와 단둘이 남겨졌을 때, 비로소  재우는 어머니의 강한 사랑을 보았다. 강한 비바람 앞에서도 등불을 켜야 한다는 재우의 의지는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대지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등불을 밝혀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천했을 뿐인데! 하지만 그것이어찌 하나밖에 없는 목숨과 바꿀 수 있으랴. 재우는 몇 시간 뒤의 자기 모습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끝까지 지켜낸다는 것!  결국 그것이 재우의 인생을 하루 아침에 바꾸어 놓고 만다. 번개가 재우의 몸을 꿰뚫고 지나간 것이다.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다. 소설의 끝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재우가 살아남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속옷에 빗물을 적셔 자식에게 먹여주며, 자신에게는 끝까지 물 한 모금 가까이 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려 모성본능조차 잃어벼렸을 것 같은   어머니가 자신을 희생하며 아들을 살리는 모습 앞에서 나는 더이상 어머니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재우 또한 그러하였으리라.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재우는 살아남았다. 비록 하반신은 불구가 되었지만.자신의 몸 절반을 빼앗기고 재우는 비로소 어머니의 거대한 사랑을 느꼈다. 남들은 쉽게 느낄 수 있고 가질수 있는 어머니의 사랑을, 재우는 너무나 엄청난 댓가를 치르고야 얻을 수 있게 된다.

가슴을 찌릿하게 만들며, 죽음과 맞서 등대를 지켰던 아름다운 등대지기의 이야기는 이렇게 막을내린다. 아들은 등대를 지키고, 어머니는 아들을 지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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