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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ㅣ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3월
평점 :
흥미로운 부분도 있고, 실망스런 부분도 있어서 50:50 입니다.
실망스런 부분 먼저.
1. 발번역이 너무 심하다 못해, 책을 덮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놓고서는 책말미에 역자후기를 멋지게 써놓으신 걸 보면, 참...
음식이 트렌드인 시대라서, 음식에 대해 문외한이면서 음식(을 다룬 언어학)책 번역하는 것도 트렌드인가 봅니다.
음식 자체에 대한 내용을, 여러 번을 읽어야 이해가 되는 건, 음식 문외한이라서 그럴 수 있다고 백번 양보해서 생각한다 하더라도.
다음 두 가지는 음식 자체와는 별 상관없는 번역자의 기본능력인 '언어'에 관한 것입니다.
두 가지 항목이 있는데
*영어 이외의 언어에 대한 오역. 이것도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칠께요. 세상 모든 언어를 다 알 수는 없으니까.
*주어-목적어-서술어-부사구 등 복잡한 문장 때문에 전체 의미가 한눈에 파악이 안 되는 것. 이건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해당 외국어를 아는가 모르는가 문제가 아니라, 모국어 전달에 대한 문제니까요. (모국어 전달=번역)
첫 번째 항목. 예를 들어,
라 오악사케냐La Oaxaquena → 라 오아하께냐 로 써야 합니다. 스페인어에서 x는 h발음/묵음이고 거센소리(격음) 보다는 된소리(경음) 표기가 맞습니다.
갈로파보 Gallopavo → 가이요빠보 로 써야 합니다. L이 2개 겹쳐진 철자 LL이 존재하고 철자명은 '에이예' 입니다. 발음기호로는 y로 표기하고 장음입니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번역자일 때는 이런 오역이 용납될 수도 있습니다. 말했다시피 번역자라고 모든 언어를 다 알 수는 없으니까요.
프랑스어와 포르투갈어 오역도 꽤 많은데, 스페인어와 달리 이 두 언어는 비음이 있어서 일정 정도 오역은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뜻밖에 영어가 오역이 많은 건... 함정... -.-a 음식에 쓰이는 영어단어들이 프랑스어, 독일어, 포르투갈어에서 비롯된 것이 많아서, 이것도 백번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칠께요.)
두 번째 항목. 칠면조 챕터에 나오는 첫 문단.
"터키라는 칠면조 이름이 전하는 진짜 메시지는 (16세기 유럽인들이 포르투갈의 무역상 비밀주의 때문에 두 종류의 새를 혼동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추수감사절 음식에 담긴 진짜 의미는, 참혹한 노예제의 실상과 이민의 지독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인과 영국인들이 자기들 고향땅의 음식을 가져와서 새로운 나라의 요리를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이 문단 한번에 이해되세요?
제가 괄호 해놓은 부분 빼고 읽어보세요. 괄호 안의 길고 긴 평서문과 부사구가 짬뽕된 것이 전체 문장 해석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괄호 안 내용이 빠져도 충분히 이해가 되시죠?
괄호 속 장황한 정보들을 이해하려면, 이 챕터 전체를 숙독해야 합니다.
즉 괄호 안의 내용은 새로운 문단으로 분리하는 것이 언어학적인 관점에서는 더 좋을 것 같거든요.
챕터의 첫 문단, 가장 간결하게 챕터를 정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첫 문단 번역이 이런데...
원서에서도 이렇게 되어 있는건지, 번역자의 능력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문장이 책 전체에 널려있습니다.
이게 발번역이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책의 장르가 "언어학"이 아니었으면, 이런 건 넘어갈 수도 있겠는데, 이 책은 언어학 책이라는 거.)
2. 역사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단어의 변화와 전달 과정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너무 자의적입니다. 왜냐하면,
언어의 변화라는 것은 2016년 1월 1일부터 이런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라고 기록되는 성질의 것이 아닌데,
이걸 보충설명 없이 "그 단어는 어제까지는 프랑스에서 이 형태였다가 오늘부터는 영국에서 이 형태로 바뀌어 쓰이기 시작했다. 끝."
전체 설명이 다 이런 건 아니지만, 많은 비율이 이런 식입니다.
책에 써있는 건 모두 진실!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아니겠지만, 제 눈에는 이건 좀 아닙니다. 언어학 교수라는 분이 왜 이러실까...
(역시, 책 장르가 "언어학"이 아니었으면, 저자의 이런 자의적 서술은 넘어갈 수도 있겠는데, 이 책은 언어학 책이라는 거.)
3. 저자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와 개인의 식생활에서 비롯된 주관적 경험이 서술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언어학 책이라기 보다는, 읽을거리가 꽤 들어있는 언어학자의 에세이랄까요.
4. 개별 음식의 역사에 관해서 "OOO 지구사"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들이 몇 권 있습니다.
한 분야에 대해 깊숙하게 파고드는 걸 좋아하는 분들은, 개론적 성격인 이 책 보다는 OOO 지구사 책들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위스키의 지구사, 초콜렛의 지구사, 커리의 지구사, 향신료의 지구사, 빵의 지구사, 쌀과 문명, 대구, 차의 세계사 등.
흥미로운 부분은,
케첩 챕터에서 의외로,
(유럽중심의 세계사관을 비판하고 18세기 이전의 중국을 새롭게 조명하는)캘리포니아 학파의 의견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 시기 가장 발달한 중국의 교역품을 구입하기 위해 유럽은 신대륙의 금과 은이 필요했고~ 블라블라~
원래 책이 씌여진 언어학 관점에서는 실망을 했는데 뜻밖에 이런 관점이 나와있어서 저는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이 학파의 견해가 역사학에서는 나름 중요한데, 저자가 이를 인용하면서 출처 언급을 안 해 놓아서 실망도 좀 했습니다.
관련 책들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거든요.
이 책에서도 수두룩하게 인용되듯이, 음식의 역사를 이야기하다 보면 동양-서양-신대륙의 문명교환이 빠질 수 없고,
그걸 이야기하다보면 이런 정치적인? 이슈들을 건너뛸 수 없게 됩니다.
더 풍족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것도 생겨났고, 그게 발전되어 정치가 된 것이기도 하니까요.

이 책도 읽어보시면 재미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