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 윤치호 일기로 보는 식민지 시기 역사
윤치호 지음, 김상태 엮음 / 산처럼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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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옹 윤치호(1865~1945)는 대표적인 친일파로 알려져있다. 그는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일본, 중국, 미국에서 11년간 공부를 하면서 영어를 완벽히 익혔으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았다. 이 책은 윤치호가 60년 동안 '영어'로 작성한 일기를 저자가 발췌·번역한 것이다.

 윤치호는 미국에서 생활한 덕분에 미국이나 영국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유학생활 중 겪은 인종차별 등으로 인해 그들의 문화를 혐오하는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인은 호전적인 민족인데 윤치호는 '호전적'인 성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호전적인 민족에서만 인물이 나온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일본인은 깔끔하고, 예의가 바르다. 하지만 조선인에 대해 차별 정책을 편다. 윤치호는 일본인의 조선 차별 정책에 대해 분개하면서도 조선인은 힘이 없기 때문에 현 시점(일제강점기)에서는 독립을 꿈꾸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일갈한다. 

 조선은 현재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개개인이 스스로 실력을 양성하여 일본과 같은 수준이 되면 그제서야 독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조선이 일본의 수준을 따라잡는 데 2세기가 걸릴 것으로 봤다.

 3.1만세항쟁 직후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에 "만세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인터뷰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의 행동은 민족주의자들을 분개하게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초엘리트였던 윤치호를, 민족주의 진영과 친일 진영 양쪽에서 끌어들이려고 했다. 윤치호는 기독교단체인 경성YMCA를 대표했고, 일제는 윤치호를 포섭함으로써 기독교계를 친일로 돌아서게 만들려고 했다. 윤치호는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까지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거부하고 야인으로 남길 원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이 발발(1941년)하자 그는 모든 것을 바쳐 친일행위에 매진한다. 이에 관련해 흥업구락부 사건과 전쟁 발발이 결정적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그는 태평양전쟁을 황인종 대 백인종의 인종 간 대결로 규정하고, 황인종의 대표(?)였던 일본이 앵글로섹슨 족을 무찔러주길 원했다.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일제의 프레임에 그대로 넘어간 것이다. 일제가 '내선일체'를 주장하자, 윤치호는 일본이 드디어 조선에 대한 차별정책을 철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두손을 들고 환영했다. 그는 볼셰비즘이 득세하던 러시아를 극도로 혐오했는데 조선이 러시아의 지배를 받을 바에야 차라리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낫다고 봤다.

 윤치호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파리강화회의(1919)에서 조선의 독립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는 당시의 독립운동가들과는 바람과는 다르게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한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은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조선의 독립도 논의될 것으로 봤지만 회의 결과는 윤치호의 예상대로 나타났다. 국제정세에 대한 윤치호의 시각은 태평양전쟁 전에는 냉철하고 정확했으나 막상 전쟁에 돌입하자 이성을 상실하고 민족반역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1943년도 일기를 끝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다만 해방정국에 윤치호가 쓴 글 두 편이 추가로 실려있다. 1945년 10월 15일에 쓴 글의 내용은 '조선인은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이며, 5일 뒤인 10월 20일에 쓴 글은 '막무가내 친일파 청산은 안 되며 사면을 통해 다독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해방 이후에도 이정도의 글을 쓸 정도면 뼛속까지 친일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소심하고 체념적인 식민지의 지식인이었다.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았다. 그는 독립운동가들을 '선동가들'이라고 비웃었으며 만세의거를 한심한 짓이라고 봤다. 임시정부에서 사람을 보내 독립운동자금을 보태달라고 하자 일제의 눈이 두려워 강력하게 거절했다. 아예 그쪽 사람들과는 만나고 싶지도 않다고 얘기까지 했다. 나라의 주권을 즉시 찾아오기 위한 무장투쟁 및 즉각독립론을 비웃은 그의 행보는 영원히 기억되고 비판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견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의 일기는 백범일지만큼이나 중요한 사료다. 당시 친일파들의 인식을 확인하고, 그들을 비판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윤치호 일기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안창호, 최남선, 최린, 이광수, 홍난파, 김활란 등 당대의 지식인들에 대한 평가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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