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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전쟁 -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생명과 권력의 투쟁사
핼 헬먼 지음, 이충 옮김 / 바다출판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진실이 인정받기까지의 그 지난한 과정.
우리 속담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 낸다’라는 말이 있다. 굴러온 돌의 입장에서 자신의 위치를 새로운 세력에 빼앗긴 데에 대한 냉소적인 풍자가 드러나는 경구다. 이렇듯 한 사회가 축적한 지혜와 경험의 보고라는 속담에서도 드러나듯이, 기득권층의 자신을 자리를 지키려는 텃세는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인류의 기본적 속성인 듯하다. 이 책 ‘의사들의 전쟁’은 의학 분야에서의 그러한 텃세에 대해 저항했던 의사들의 치열했던 투쟁과정을 그린 책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표현이 제목에 포함되었을 만큼 그들의 투쟁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인물별로 나누어 서술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의사들은 정말이지 새로운 사실을 인정받기 위한 고단한 과정을 거친다. 나중에는 결국 사실임이 인정받지만 그러한 투쟁은 기득권층의 텃세가 새로운 진실을 알리려는 순교자적 자세로 임하는 의사들에게 너무나 소모적인 과정을 강요한다. 하지만 ‘의사들의 전쟁’은 그러한 투쟁을 그러한 험난한 고통을 겪고서라도 진실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투쟁에 앞장섰던 의사들의 에피소드 중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산욕열에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던 제멜바이스의 에피소드이다. 제멜바이스는 임산부들의 죽음의 원인이 청결하지 못했던 의사들이라고 주장한다. 시체를 해부하고 나서 소독하지도 않은 채 태아를 받았던 의사들의 청결관념은 무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그 결과가 처참했다. 하지만 제멜바이스는 무지로 인해 죽어가는 임산부를 위해 진실을 밝히지만 구닥다리 권위로 가득 차 있던 그 당시 의학계 고위층에 인정받지 못하고 남은 인생 모두를 그러한 진실을 밝히는 데 바친다.
진실은 진실이기에 밝혀지고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가득 차 있는 쓸데없는 귄위가 그러한 진실을 입증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소모적인 투쟁을 강요한다면 그러한 권위와 텃세는 없어져야 마땅한 것이다. ‘의사들의 전쟁’을 읽는 동안 수도 없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은 우리 사회 또한 이러한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암울한 현실 비판이었다. 의학계뿐만이 아닌 사회 전반의 자신의 밥통을 지키려는 보수적 성향에 대한 쓸쓸한 냉소가 자꾸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