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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제주일기
정우열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환상은 누구에게나 있다. 비교적 남들보다는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제주에 가본 나로서는 (다소 촌스럽지만) 제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굉장했었다. 한편으로 그건 여행의 묘미이기도 해서 나는 그 기분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미지의 세계일지언정, 그곳 역시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오랜 시간 머물며 적응하고 주변을 가꾸다 보면 모든 것은 어느 새 일상이 된다. <올드독의 제주일기>는 그렇게 제주에서의 삶이 일상이 되어가는 작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정우열 작가는 개 두 마리와 함께 제주도로 내려간 초창기부터 약 2년 간의 제주 이야기를 유머와 센스를 더해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은 말하자면 작가의 제주 정착기이다.

벌써 이 책이 출판된 지 6년이 다 되어가니 지금쯤 작가는 제주도에 완전히 적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드독의 제주일기>에서는 제주도에 막 정착하려는 특유의 설렘과 함께 약간은 데면데면한 외부인의 기류를 감지할 수 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매화가 매실이 달릴 때까지 벚꽃인 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 제주도 토종귤인 병귤의 정체를 모른채 얌체처럼 야금야금 따서 먹었던 일화는 작가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큰 웃음을 선사한다.
이런 소소하고도 재미있는 일화들은 작가의 귀여운 일러스트와 합쳐지면서 몇 배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글도 잘 쓰시는 양반이 그림까지 잘 그리다니,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 작가가 제주도에서 겪는 좌충우돌 스토리는 제주도와는 전혀 연고가 없는 나에게도 어쩐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나였어도 저랬을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작가가 언급한 음식이나 해녀학교 등 그가 경험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제주도의 이곳저곳을 탐방해보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작가는 유쾌한 가운데에서도 문득 조용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가치관과 생각들을 털어놓는다. 그런 순간에는 나도 함께 작가가 던진 주제를 곰곰이 고민해보게 된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지금은 비록 소원하거나 섭섭하더라도 한때 주었던 마음"을 생각하고 자주 꺼내보면서 인연을 기억하자고 말이다. "우정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쪽이 이 부박하고 부질없는 세상 속에서 그나마 우리를 지켜내는 길"이 아닐까라는 작가의 말에 조금은 반성했다. 내가 너무 과거의 인연들에게 무심했던 건 아닐까를 생각하면서.
나는 여행을 가기 전에 가이드보다는 에세이, 때에 따라서는 역사서를 더 챙겨보는 타입이다. 가이드는 정보를 위주로 알려주지만 에세이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일화 속에 작가의 가치관과 철학이 함께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올드독의 제주일기>가 좋은 이유는 단순히 제주 살림에 관한 이야기 때문만이 아닌 것이다.

<올드독의 제주일기>에는 반려견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온다. 재채기와 사랑은 감출 수가 없다고 하니, 아마도 무의식 중에 튀어나오는 애정인 듯 싶다. 그런 구절들을 읽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뭉클해진다. 두 마리의 개와 함께 제주에서 보내는 시간은 주인에게도, 개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제주도로 함께 들어간 폭스테리어 소리와 풋코 중 현재 작가의 곁을 지키고 있는 건 열 일곱 살 풋코 뿐이다. 이 책은 작가의 생활일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리에게 헌정하는 추억의 기록이기도 하다. 부디 소리가 그곳에서 평안하기를, 그리고 풋코도 오래오래 건강히 행복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소리와 풋코의 사진을 첨부한다. 책을 시작할 무렵엔 서툰 제주살이를 했던 작가는 후반으로 갈수록 어엿한 제주 시민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올드독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해봤는데 어느덧 관심이 생겨 그의 웹툰 <노견일기>를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웹툰의 첫 회를 보니 그는 제주도에 완전히 잘 정착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젠 작가의 삶이 된 아름다운 제주에서, 풋코와 오랫동안 즐거운 시간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여행박사X위즈덤하우스에서 받은 책으로 작성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솔직한 후기입니다.
원문주소 https://blog.naver.com/plumrabbit35/222010325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