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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교사들
송인수 지음 / 좋은교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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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89년의 일이다. 아침에 학교에 가는 나의 심장은 띠고 있었다. 전날 밤 부모님의 문방구에서 리본을 가져다가 한뼘 크기로 수십장을 잘라 매직펜으로 ‘참교육 실천’이라고 썼다. 국어시간 전에 친구들에게 리본과 핀을 나누어 주었다. 교실에 들어와 우리 가슴을 본 국어선생님은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눈시울을 붉혔을 뿐이다.
그날 일로 나는 학생지도실에 불려갔다. 지도 선생님은 왜 그런 리본을 만들었는지, 누가 시켰는지 물으셨다. 나는 그냥 혼자서 하고 싶어서 했다고 대답했다. 정말 그랬다. 국어 선생님이 좋았다. 수업 시간에 시험 공부하라며 ‘자율학습’ 시간을 주지 않으셨다. 대신 아름다운 시와 소설의 한 구절을 읽어주셨다. 성적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잠을 충분히 자고 끼니 거르지 말라고 하셨다.
학교의 공기는 늘 무거웠다. 수업 시간과 자율학습은 지루했다. 저녁이 되면 친구들은 학원으로 독서실로, 그도 포기한 아이들은 당구장으로 흩어져 우리는 모두 외로웠다. 하지만 국어 시간은 달랐다. 우리는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쫑긋 세웠고 그분이 하시는 말씀에 빨려 들어갔다.
9시 뉴스를 보니까 전국의 선생님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불법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곧 해고될 거라고 했다. 국어선생님은 별 말씀이 없었지만, 우리는 선생님도 거기에 참여한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 뭔가 하고 싶었다. 지금의 ‘입시지옥’을 바꾸기 위해 삶을 내던진 선생들을 응원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 뒤로 몇 주가 지나서 우리는 국어선생님을 영영 볼 수 없게 됐다. 정부가 정말 1,800명이 되는 선생님들을 해고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분이 국어시간을 맡았지만 선생님은 묵묵히 수업 진도만 나갈 뿐이었다.
그뒤로 나는 답답한 고등학교 3년 생활을 꾸역꾸역 마치고 대학에 들어갔고, 군대를 갔다 와서 졸업을 한 뒤에는 일을 몇 년 하다가 영국에 정착했다. 1999년에 전교조가 합법화 되고 선생님들이 교실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참 반가웠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국어선생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2006년에 첫 아이가 태어난 이후 세 명의 아이가 더 태어나니 교육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그러다가 2014년에는 교육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한국 교육의 현재 상활을 이해하기 위해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이라는 단체의 송인수 선생님이 쓴 《무모한 교사들》을 구해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왠지 이 무모한 교사가 나의 선생님이었으면 어떨가 하는 묘한 생각이 들어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책은 한 청년이 어지러운 시대에 한 신앙인으로 깨어나며 타인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껴 교실을 시작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또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기독 교사 운동의 탄생 과정의 산기록이기도 한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영어교사가 된 저자는 학생들이 재미있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사랑을 되돌려주는 아이들을 보고 행복했다. 하지만 입시지옥에서 허덕이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고, 학부모들에게 찬조금을 걷으라고 강요하는 학교 때문에 숨이 막혔다. 그러던 중 1992년 선교한국 대회에 참여하던 중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세 배나 되갚겠다고 말한 삭개오’의 삶에 마음이 찔려 찬조금 모금을 강요했던 부장 교사에게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드리기로 결심한다.(74) 그때 많은 이들이 해외 선교를 결심했지만, 교사인 그에게 선교지는 아이들이 있는 학교였다.
학교에서 기독교사로 외롭게 살아가던 선생님은 이제 뜻이 맞는 동료들을 만나 아이들을 입시 지옥에서 구해내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분이 동료들과 찾아간 운동의 방식은 남달랐다. 세상에 바꿔야할 무엇을 말하기 전에 사람을 깨우고 살리는 준비를 먼저 했다. 10만 기독교사를 깨우기 위해 기독교사대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다른 기독 교사 단체들과 손을 잡았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8시에 기도를 시작해서 새벽 1-2시까지 했고 그런 다음에는 라면을 끓여먹고 국회의사당에 가서 다시 기도를 했다. 철야기도가 끝나면 탁구를 치거나 축구를 하고 헤어졌다. 몸은 고됐지만, 학교에서 외롭게 싸웠던 때와 달리 뜻을 같이 하는 공동체가 있어서 오히려 힘이 났다. 1998년 1,000여명의 교사가 모인 대회는 훗날 전교조합법화 이후 기독 교사들이 느꼈던 혼란, 교권이 도전받는 교실붕괴, 교원 평가, 사교육 기승이라는 도전에 교사들을 준비 시킨 시간이 되었다.(136)
이렇게 시작된 좋은교사운동은 ‘가정방문’이나 ‘일대일결연’ 같이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활동을 벌였다. 학부모에게 촌지와 불법찬조금을 받지 않게다는 편지를 써서 안심시키고 아이들의 신뢰를 얻었다. 정부와 다른 운동단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성명서나 보도 자료에 공손한 경어체를 써서 증오감을 다스리고 상대방의 양심에 호소해서 그들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너와 나’를 구별하는 대신 ‘회복과 평화’로 아우르려 했다. 올해 좋은교사운동이 학교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벌이는 말걸기 캠페인 역시 그와 같은 맥락일 거다.
지은이는 2003년 교사직을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학생들과 만나고 있고 그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책에서 교육을 이렇게 정의한다.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교사가 깊게 만남으로써, 그 속에서 전인적 성장의 욕구나 결핍을 보고, 성장과 회복을 위한 접점을 찾아 아이들을 성숙한 인격으로 끌어올리는 활동입니다. 지식은 만난의 수단이고, ‘만남’ 그 자체가 중요하지요. 교사는, 아이들이 새 가치에 대해 눈을 뜨게 하려면, 아이들 내면으로 파고들어 가야합니다.”
'아, 이런 선생님이 내게도 있었더라면.’ 책을 읽어내려가며 이런 아쉬움이 들었다. 국어 선생님이 해고된 후 무미건조한 학교 생활을 하며 참 외로웠다. 따뜻하게 말 걸어주거나 관심을 보이는 선생님이 없었다. 그나마 음악 시간에는 ‘오 솔레 미오’를 목놓아 부를 수 있어서 속이 시원했다. 문득 이 책에 등장하는 선생님들과 축구를 하고, 춘천닭갈비를 같이 먹으면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상상을 하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 옛날의 국어선생님이 소식이 궁금해 전교조 게시판에 들어가봤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이름을 검색하니까 놀라운 소식이 보였다. 선생님은 전교조 사무실에서 홍보국 일을 하셨고 그곳에서 만난 분과 결혼해 아들까지 나셨단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아내분과 함께 우리 고전과 세계 문학에 관한 흥미로운 책들을 펴내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갖도록 도우셨었는데 그런 가족과 학생들을 남겨두고…
아, 어떻게 해야 하나. 내게는 마음 속에서 뿐이었지만 ‘나의 선생님’이라고 부를 분이 있었는데 이제는 안 계신다. 하지만 상실감에 잠길 수만은 없다. 돌봐야할 세 아이가 있고, 가끔 내가 학교 야외 학습 때 운전을 해주거나 보조 교사로 만나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을 만나고, 그 아이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나의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을 나눠야겠다. 축구를 잘 하기는 애시당초 글렀으니 아이들 곁이나 지켜야겠다. 가끔 맛있는 것도 사 주면서.
-원마루(번역가,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아이들의 정원》등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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