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복구 전문가로서 수많은 유가족들을 만나다 보면 아무리 마음을 잘 관리하더라도 소진될 텐데 어떻게 그 감정들을 다루면서 일을 지속해나가는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다소 착잡한 마음으로 읽었는데 지금은 루시 이스트호프의 강인함과 사려 깊음에 압도된 상태다.죽음과 폭력의 경계에 똑바로 서서 멀리까지 내다보면서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이해하고 전문가로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그저 감탄스러웠다. 이보다 단단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전체를 보고 일이 되게끔 하려면 몸을 혹사시킬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약한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화가 나고 속상했다. 루시 이스트호프가 편안하기를 바란다.━⠀어렸을 적, 나는 아빠가 툭 하고 내뱉은 “누구든 해결을 해야지” 한마디를 내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 지금 시간을 돌려 그 꼬마 아이를 만날 수 있다면, 네가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 여정 자체에 의미가 있을 거라고도 알려주고 싶다. 네가 누군가에게 준 자그마한 도움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고. 혹독한 시간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음려와 안심이 되는 미소를 건네는 일에는 가치가 있다고. 나는 그 꼬마 아이에게 망자를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고인에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죽음 자체는 무엇을 뜻히는지 이야기해줄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유해 조각뿐만 아니라 그들이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에도 가치가 있다고, 도기로 만든 코끼리 인형이 누군가에겐 신성하게 느껴질 만큼 중요할 수 있다고, 대응요원들에게 알맞은 돌봄과 지원을 제공한다면 깊은 상처를 입지 않고서 사망자를 돌볼 수 있다고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