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차일드 - 제1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아동문고 104
이재문 지음, 김지인 그림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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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TV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VFX 디렉터 인터뷰를 본 적 있다.
아리랑 TV니만큼 한국어 인터뷰에 영어 자막이 달려 있는데
눈에 띄는 점은 [Extraordinary Attorney Woo],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영어 제목이었다.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상한’을 막연히 ‘strange’ 또는 ‘weird’ 따위로 여기던 차에
‘extraordinary’는 정말 뜻밖이었다.

네이버 영어사전에는 extraordinary 를 이렇게 설명한다.
1. 형용사 기이한, 놀라운 (=incredible)
2. 형용사 보기 드문, 비범한; 대단한 (→ordinary)
3. 형용사 격식 임시의
평범함을 넘어서는 ‘대단한’ 뭔가라는 뜻이다.

하긴, ‘우영우’를 생각하면 대단하긴 하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잘은 모르지만, 스펙트럼이라는 말처럼 여러 층위의 장애인이 존재하는데, 우영우는 특출한 재능으로 비장애인과 큰 무리 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다, 맡은 사건마다 족족 남들이 생각 못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으니 말이다. 물론 우영우도 갖가지 시련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극심한 왕따에다 친구도 없고, 사랑을 하려니 당사자보다 가족들이 더 걱정이다. 로펌에 취직한 것도 출생의 비밀과 대표님의 음모가 아니었다면 언감생심이었으니.

기막히게도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우영우가 맡은 케이스도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다. 레즈비언, 강도상해죄로 기소된 탈북인여성, 비장애인 나쁜 남자와 얽힌 장애인여성, 우선 해고된 여성 직원, 어린이해방군이라는 정신이상자 같은 사상가, ... 흔히 소수자, 소외된 사람들이라고 하는 이상하고 이상한 이들이다.


[몬스터 차일드]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영우와 그들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쏙 빠져들 만큼 재미있는 동화를 본다는 기쁨은, 그것이 간결한 문장에다 사건 전개가 빠르고, 어린이 주인공이 주변의 차별과 혐오를 부수고 성큼성큼 성장하는 데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무겁지도 않게, 경박하지도 않게 풀며 ‘다름’을 여전히 ‘차별’과 ‘혐오’, ‘편견’으로 보는 우리의 인식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털북숭이 괴수로 만드는 MCS는 가상의 병이다. 그래서 MCS에 걸린 사람은 책 속 인물인 하늬나 연우가 아니라, 우영우가 그렇고, 방구뽕이 그렇기도 하다. 정말로는 우리반 자폐학생이었던 김OO이기도, 우리학교 탈북 학생 원O, 벤 선생님의 게이 처남이기도, 귀신을 본다는 우리 교회 청년이기도, 남편의 지인인 제주 구럼비 평화활동가 송강호 박사님이기도 하다. 꼽아 보니 내 주변에도 적지 않구나 싶다.

그렇게 ‘이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책에서처럼 치료받아야 할 환자가 아니라는(155쪽) 걸 안다. 알면서도 때때로 나랑 달라서 오는 이상함 때문에 불편과 불안을 느끼고, 과도하게 괴상하게 여기며 나도 모르게 혐오와 차별을 저지르게 된다. 가만 보면 그들은 'strange'가 아니라 'extraordinary'일지도 모르는데. 아니, 'strange'면 어떻고, 'extraordinary'면 어떤가, 이상하든 비범하든 '다름'을 이상하게 여기는 내가 문제인걸.

그래서 우영우가 최수연에게 ‘봄날의 햇살’이라고 한 말이 특별하다. 최수연의 자기 평가나 주변 인물이 최수연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햇살을 느낀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말이기에 그 감동은 더욱 크다. [몬스터 차일드]에서는 하늬에게 연우가, 연우에게는 강규철 소장님이 그랬다. 하니와 연우는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며 변화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도 되잖을까? 너와 내가 ‘이상한’ 삶을 살 때 봄날의 햇살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자리잡고 있을까? 답을 못하겠다면 그건 답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리라. 식상한 수사이지만, 다시 나는 누군가에게 ‘봄날의 햇살’이어야만 한다는 걸 기억할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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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자 와니니 4 - 작은 코뿔소 파투 창비아동문고 325
이현 지음, 오윤화 그림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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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자 와니니] 4권 작은 코뿔소 파투에는 유독 ‘하나뿐’이라는 말이 도드라진다.
‘초원에서 가장 귀한 동물’, ‘유일한 아이’ ‘단 하나’.
“온 초원에 나 같은 코뿔소는 하나도 없는 거예요?” (23쪽)

처음에는 외롭고 쓸쓸한 멸종위기종의 운명 같은 슬픔이 보였다.
그런데 유일함이 곧 초원의 다른 존재로 점점 확대되어 가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군데군데 작가의 유머감각이 넘치는 가운데 세심한 관찰력마저 돋보이는 얼룩말을 보자.
'가장자리부터넙적하게시작해서둥글게등을가로지르는무늬, 가는줄이나란하게등을타고올라이마에서둥글게휘어지며뺨을타고가는무늬, 가늘고촘촘하게등을지나얼굴을둥글게감싸며턱을지나가는무늬, 가지런히이어지다갑자기둥글납작해졌다다시가지런해지는무늬' (49-50쪽)에 파투만 아니라 독자들의 눈마저 돌 지경이다.
파투가 얼룩말은 다 똑같이 생겼다니까 '가아_누!' 소리높여 울며 경고하는 얼룩말들이라니. 가장 웃긴 장면으로 꼽겠다만, 각양각색의 얼룩말은 이야기의 큰 주제로 나아가는 길목이 된다. 이 다음에 코끼리와 코뿔소를 비슷해 하는 얼룩말에게 그건 아니라고 외치는 코끼리도 마찬기지 역할이다.

코뿔소 파투가 단 하나뿐이듯, 초원의 다른 모든 동물도 그렇다.
온 초원에 얼룩말이 그렇게 많지만 가늘다가불룩하게등을지나둥글게휘어지며얼굴을비스듬히가로질러콧구멍을스쳐가는무늬 같은 얼룩말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즉 유일하다는 특수성은 초원의 모든 동물에게 해당하는 보편성으로 확장되었다.

이야기의 끝에서 파투는 놀라운 깨달음에 닿는다.
" 초원은 대단한 동물들이 사는 곳이야." 마침내 파투가 답을 찾았다. (161쪽)
파투가 보고 겪은 대로 자연스레 흘러나온 이 답은 그래서 생생하고 뭉클하다.

그런데 어느 누구 하나 똑같은 건 없기에, 다 다르고 하나뿐이기에 대단하다는 건 사람에게 쓰던 메시지 아니었던가!
여기서 나는 작가의 생태적 상상력이 어떤 경계를 넘어섰다고 본다. 유일함을 멸종위기종의 외로움, 쓸쓸함이 아니라
모든 동물의 위대함과 생명력으로 완전히 판을 바꿔 버린 상상력 말이다.

아직 기본적인 자유와 사회인으로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있는 가운데, 인권의 개념은 선언적인 일반 권리에서 특정 집단의 특수한 권리로 점점 구체화하고 그 범주가 넓어지고 있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한 '인권'을 강조하는 일은 그 끝이 없다.
허나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인권의 기본 테제, '너, 유일한 존재’라는 메시지가
의도하진 않았어도, 무의식적으로 인간에게만 적용되어 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서늘하다. 인간만이 고유 인격을 가진 유일한 종이라는 그 오만함 때문에 역사 속에서 의도적으로 다른 생명을 살육하고 지구의 삶에서 배제해 왔는지 그 증거는 차고도 넘치니까.
아뭏든 우리는 “동물이 살아 있고 지각하는 존재로서 법인격을 갖는다는 사실, 그들이 각자의 종에 적합한 환경에서 나서 살고 자라고 죽을 기본적인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종종 자주 까맣게 잊어버린다. (아르헨티나 멘도사 동물원의 침팬지 세실리아를 브라질로 돌려보내는 법원의 판결문 중.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193쪽)
그래서 '동물' 하나가 위대한 존재라는 데까지 생각이 닿지 않는 거다. 아직 인권 신장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동물권까지 생각해야 하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는 인권과 생태-사회권을 방대하게 아우르는 대단한 저작이다. 내용 중에는 기후위기에 비해 현재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다뤄지는 생물다양성 붕괴 문제도 있다. 책은 생물문화다양성이 사라진 자리에 인권조차 지켜질 수 없단 걸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우리의 인권은 생태권과 함께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제 파투가 내린 답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건가? 거창한 영웅적 행동은 못할지언정 평범한 침묵에 묻히고 싶진 않다.(인권사회학자 스탠리 코언의 말을 달리하여, 앞의 책 317)
초원의 파투가, 가둥가가, 와니니가, 사람을 넘어 모든 동물이 ‘단 하나’임을, 그래서 위대할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 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이것이 바로 네 번째 [푸른 사자 와니니]의 환상적인 성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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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111
단요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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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묵은 기억을 마주하는 용기에 관하여 


#다이브 #소설다이브 #단요 #창비 #창비청소년문학 #서평





아동문학평론가 김이구 선생은 SF가 현대 사회의 특징을 “무한한 시공 속을 비약하여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강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과학소설의 새로운 가능성’, [창비어린이] 제3권 제2호, 2005, 169쪽. ) 2057년, 기후변화와 전쟁으로 순식간에 물에 잠긴 근미래의 서울을 그린 SF [다이브]는 오늘 우리의 어떤 모습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을까? 


투발루의 외교장관이 바닷물 속 연설로 해수면 상승 위기를 절박하게 호소했던 게 지난 해 11월이었다. 세계 패권을 다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면전을 시작하며 전 세계를 경악시킨 것도 불과 몇 달 전이다.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감안할 때 기후위기와 전쟁은 막연히 먼 미래도, 막연히 먼 나라의 얘기도 아닌 긴박한 현실이다. 2022년과 닮은 꼴을 한 [다이브]의 세상은 그래서 놀랍지만 그렇기에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보다 주목할 것은 이 서울엔말’이 없다는 점이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아 묵혀 둔 과거에 얽매여 있다. 소리조차 잠기는 물속을 반영하듯 수몰된 서울은 인물들의 말하지 못했던 과거, 즉 오늘의 서울을 스란히 품은 채 깊이 잠겨 있다. 울은 어떤 곳인가? ‘서울은 언제나 한국의 동의어였다. ’라는 첫문장에서처럼 대한민국의 대명사인 이곳 나라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살며 북적이고, 장 많은 말을 쏟아내는 곳이다. IT 강국답게 숱한 말과 의식, 기억과 경험 디지털화 되어 제한된 시공간을 넘어 누구와도 쉽게 공유되고 인간 수명보다 오래 보존될 수 있다. 반면 실제 삶의 공간은 높이 치솟은 아파트이든, 점점이 박힌 원룸과 고시원이든 벽 너머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타인과 살갑게 질척댈 없고, 심지어 살았다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기도 쉬운 곳이다.  


기계인간 수호와 노고산의 삼촌 경은 이러한 오늘의 서울이 미래에 투영된 징적인 인물이다.  

수호는 고인의 기억과 의식을 그대로 구현하는 시냅스 스캐닝 술로 만들어진 로봇이다. 잃어버린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에게 부모 노릇을 더 연장해 주는 놀라운 기적의 기계이다. 하지만 수호는 육신이 아닌 기억으로만 존재가 증명되며 언제든 삭제되고 제거될 수 있는 불안정한 존재이다. 수호의 불안정함은 일차적으로 기계의 몸에 인간의 기억을 심었다는 데서 비롯하지만, 그토록 자식을 붙들려 하면서도 막상 기계 자식과 소통하지 못하고 함부로 기억을 삭제, 몸을 바꿔 버리는 부모에게서 더 심화된다. 수호는 “역사와 함께 숨 쉬고 있지만 역사가 되기에는 부족(137), “없어진 것도, 아주 먼 곳에 있는 것도 눈앞에 다시 불러낼 수 있었던 세상이, 그게 너무 당연해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를 간직할 필요가 없던 세상”(131)의 씁쓸한 잔재이다.  

모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경은 모친과 같은 병실에 있던 수호의 과외를 맡으며 수호와 연을 맺는다. 경은 수호와 툴툴거리면서도 모친을 보러 오는 길에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수호를 만났다. 그러나 늘어나는 병원비에 허덕이는 그는 취업전선에 내쫓겨 통장 앞에 떳떳하지 못한 청년이고 만다. 일자리가 없어 대학원을 가고, 취직해도, 받는 월급 족족 대출금 상환에 쫓기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젊은이다. 결국 경은 푸념과 한탄 속에 수호와 단절하는데,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 살가운 말 한마디 못 건넸다는 죄책감으로 이후를 독하게 살아간다. 

급속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돈이 많은 수호의 부모는 기계에 기억을 저장하여 자식이 원치 않는 삶을 지독하게 연장한다. 반면 돈이 없는 경은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진작 치료를 중단하고 돈 들 일도 없었을 모친의 생명을 꾸역꾸역 연장하며 돈에 쫓긴다. 하루하루 고단하게 사는 경에게 수호는 고통스러울 것 없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신과 너무 다른 새로운 기회의 몸이었다. 둘 다 생명을 연장해 보겠다는 발버둥이건만 수호와 경은 서로 이해하기엔 너무나 양극단에 놓여 있었다.  


이렇듯 제대로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기억은 인물의 늘을 옭아맨다. 과거에 묶인 채 로운 기회로 시원하게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집합소가 노고산이다. 그들은 희망의 땅인 양 강원도를 언급하지만 그곳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경의 품에서 물꾼으로 정착한 아이들, 선율, 지오, 우찬 등은 다하지 못한 말을 오해 속에 품은 채 다만 하루를 보낼 뿐이다. 선율은 우찬의 죽어가는 이 유안을 죽게 놔둔 때문에, 지오는 노고산에서의 존재감이 조연을 넘어 엑스트라로까지 밀려 버려서, 우찬은 누이를 살리지 않은 경이 한스러워서, 지아는 강원도로 언니가 서럽고 노고산에도 끼지 못해서, 수호는 억지로 끌려와 삶에 내던져져서(153) 울분을 갖고 죄책감도 느끼고 한탄도 한다. 기억이 단절된 수호와 선율 등 사이에도 “예전을 기억하는 사람과 그 이후만을 살아온 사람의 차이”(58)만큼 큰 거리가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온통 번잡스럽다. ‘사고는 예전에 났어도 사람 마음 속에서 끝이 안 난다.’(121)고 했던가. 그렇기에 소리조차 잠기는 물 속에서 서울의 흔적을 더듬으며 아이들은 말할 수 없었던 과거를 맴돌고 있다. 


각과 감정이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밭아질 수 있을까? 못한다. “하지 못한 말들은 너무 가벼워서 그걸 담고 있는 몸이 그만 붕 떠 버리는 것만 같고,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것조차도 아주 먼 느낌이”(96) 드는데. 주절주절 지난 과거를 내려놓으라는 지오에게 “제대로 말하는 법을 모른”(116)다며 비꼬는 우찬이지만, 제대로 말 못하는 건 지오만이 아니었다. 

 노고산 인물들의 견고한 매듭은 수호로부터 풀리기 시작한다. 기억하는 것만으로 인격을 정의할 수 없기에 사람이기도 애매한 수호는 타인과 대화하기도, 타인을 이해하기도 가장 어려운 존재이다. 그러나 공기통이 없어도 물속을 오랜 시간 유영하는, 매한 조건 때문에 수호는 자신의 과거를 과감하게 탐색할 수 있었다. 사실 노고산 아이들은 튀어나올 듯 말 듯 불편한 감정에 균열을 일으켜 줄 무언가를 기다렸던지도 모른다. 겨 있던 과거를 직면하면서 비로소 안정감을 얻은 수호처럼 진심으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무튼 수호에게는 뼈아픈 고통을 되새기는 일이었지만 과거를 추적하는 그 의지와 용기가 결국 선율과 지오, 우찬, 그리고 에게 새로운 기회를 안겨 준다.  


최근 아동청소년문학에서도 SF 작품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첨단 기술을 반영하는 다양한 소재, 과학적 토대로 이루어지는 그럴 듯한 예견과 흥미진진한 상상 가운데 다수의 작품들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위기와 인간성에 관한 새로운 탐색을 시도한다. 그래서 작품이 그리는 시공간은 미래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앞서 김이구 선생의 말처럼 현재 사회를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서 더 기능한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수몰된 대한민국은 오늘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침묵 속에 가라앉는 인간 관계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소리마저 잠긴 서울, 저마다 음 깊숙히 털어내지 못한 외로움, 죄책감, 고통과 연민에 뒤죽박죽된 마음으로 속으로만 삭아가는 한국.   

오늘 우리는 기후변화와 전쟁을 걱정하고 있지만 정작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단절은 얼마나 염려하고 있을까?솔직해진다고 해서 꼭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어도 문제를 풀려면 솔직해져야 하는 것 같아”(101)고 한 것처럼 작품은 지금 내 곁에 선 그 사람에게 진심을 내라고 ‘다정한 감각’(104)을 건네고 있다. 작품을 읽는 누구나 수호처럼, 선율처럼 순순하게 묵은 과거와 마주하는 용기를 내기를,  오랜 자책과 미안함과 원망을 차례대로 내려놓고(161) 새로운 삶을 유영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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