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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림과 문장과 단어를 음미하면서 읽고싶은 책들을 모아봤습니다.


3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태엽 감는 새 1- 도둑까치 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1994년 9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05년 01월 1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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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 2- 예언하는 새 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1994년 9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05년 01월 1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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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 3- 새잡이꾼 편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 1995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05년 01월 1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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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 4- 새잡이꾼 편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1994년 9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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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oonrise > 알랭 드 보통 총정리 & 신간 소식

    

 
(1993, 원제 : Esseys In Love)
 
그가 스물 세살 때 썼다는 사랑에 관한 철학적 에세이 소설. 알랭 드 보통의 책 중에는 유일하게 끝까지 보지 않은 책이지만, 가장 먼저 접하고 그를 알게 한 책. 한창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일독을 권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 팽겨쳐버렸던 경험때문에. ^^ (농담이야~)
 
   
   

(1994, 원제 : The Romentic Movement)

요즘이야 알랭 드 보통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이지만, 1997년엔가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한뜻)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었을 때만 해도 참 아니었나보다.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를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적이 있는 이 출판사는 시기를 잘못 타고난 것 같기도 하고, 참 진취적이면서도 돈이 없는 출판사였을 것 같다. 지금은 없어진 것 같지만...

이 책의 원제는 <낭만주의>인데 왜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이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원서 표지에 사용된 사진에 그런 문구가 있다. (아마도 부제인듯.) 이번에 다시 나온 책의 제목은 뜬금없이 <우리는 사랑일까>이다. 내용은 좀 까먹었지만, 앨리스라는 한 여성을 중심으로 낭만주의에 대해 고찰한 책이었던 듯. 이것도 철학적 에세이 소설.

     

   

(1995, 원제 : Kiss & Tell)

위의 세 책을 일컬어 알랭 드 보통의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이라고 한다. 난 철학적 에세이 소설이라는 말을 쓰는데, 애매하긴 하지만 소설로 분류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갑자기 베스트 셀러로 등극한 이후 출간되는 바람에 흐름을 타고 잘 팔렸다. 나는 이 책을 선물받았는데, 책 내용이 그리 로맨틱 하지는 않지만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선물 받는 것은 약간 로맨틱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1997, 원제 :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

제목을 직역하면 '프루스트는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었나'가 될텐데,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은 교묘하게 잘 지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프루스트에 관한 책을 읽고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의 소설을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난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도 저 나른한 눈빛의 프루스트를 표지로 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영문판 저 표지는 보통의 책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다.

 

      

(2000, 원제 :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

이 책과 위의 두 책을 순식간에 출간한 '생각의 나무'라는 출판사는 교묘한 책 이름짓기의 대가같다. 어떻게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제목을 지었을까? 이 책은 원제(철학의 위안)처럼 철학이 주는 위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여섯 명의 철학자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에 대한 치유책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철학자는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다.

 

 

    

(2002, 원제 : Art of Travel)

그의 책 중에 유일하게 영문판과 표지가 같은 책이다. 그의 책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며,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지루할 것 같지 않은 책이다. <여행의 기술> 이라는 제목을 보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생각난다. 한 선배는 '사랑의 기술'보다 '사랑의 기예(藝)'정도로 해석하는 게 옳다고 말했지만, 나는 기술이라고 말하기 뭐한 그것에 '기술'이라는 말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이 책을 통해서 깨달았다. 삶을 사는 기술, 여행을 하는 기술...어찌보면 이상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사는 것도 재주고, 연애고 사랑이고 해본 사람들이 좀 아는 걸 보면 기술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 책을 통해 문학, 철학, 미술을 종횡무진하는 알랭 드 보통식 글쓰기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빨려드는 이유는 구성 때문이기도 하다. 여행의 다양한 면에 대해서 고찰한 후에 결국 돌아오게 되는 자신의 방에 대해서 말하는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정말 여행을 하고 방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아마도 읽고나면 이 책에 언급된 책들이 읽고 싶어질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특히 <내 방 여행>이라는 책이 그랬다.

 

 

 

 (번역은 좀...-.-;)

 

    

(2004, 원제 : Status Anxiety)

내가 그의 책이 다 좋다고 말했나? 나는 알랭 드 보통과 그의 책을 좋아하지만, 그 책이 다 좋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책이란 게 어차피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지언정 굳이 나누자면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으며, 꽤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쯤은 하고 있다. 그렇다고해도 내가 좋다고 남도 다 좋은 건 아니겠지...

올해 들어 그의 책을 5권 정도 읽었는데, 이 책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그러니까 얼마 전 나는 이 책을 읽었고, 약간의 지루함을 느꼈다. 이 책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지위불안'(Status Anxiety)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한 책이다. 물론 알랭 드 보통스럽다. 그는 현대인들의 불안을 초래하는 몇 가지 요소로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을 들고 있다.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른 부 혹은 정신적인 것에 대한 가치의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불안이다. 내가 이미 그것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200페이지에 달하는 글로 읽기에는 너무 뻔한이야기긴 했다. 다행이도 해법의 마지막 장의 보헤미안에 대한 설명은 흥미로웠다. 역시나 마지막이 재미있으면 후회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어쨌든지간에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어떤 것이든 콕 찍어서 일단 보게 되면 마약처럼 빠져들 게 되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아님 말구...)

 

추가 : 영국 아마존에서는 알랭 드 보통의 새 책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를 예약 판매 중이네요. ^^ 음...약간 기대가 되는군요...


Synopsis
What makes a house beautiful? Is it serious to spend your time thinking about home decoration? Why do people disagree about taste? And can buildings make us happy? In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 Alain de Botton tackles a relationship central to our lives. Our buildings - and the objects we fill them with - affect us more profoundly than we might think. To take architecture seriously is to accept that we are, for better and for worse, different people in different places. De Botton suggests that it is architecture's task to render vivid to us who we might ideally be. Turning the spotlight from the humble terraced house to some of the world's most renowned buildings, de Botton considers how our private homes and public edifices - from those of Christopher Wren to those of Le Corbusier and Norman Foster - influence how we feel, as well as how we could learn to build in ways that would increase our chances of happiness.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 amounts to a beguiling tour through the philosophy and psychology of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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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20세기의 이론서 21권

지난 월요일 교보에 잠시 들렀다가 발견한 의외의 책은 <테오리아 - 20세기를 대표하는 21권의 책>(개마고원, 2006)이었다. '이론(theory)'이란 말의 그리스 어원인 '테오리아'를 국역본의 제목으로 삼았는데, 독어본의 원제는 '세기의 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세기가 지난 세기이므로 '20세기의 책'이라 해야겠고, 그 책들이 모두 분류상 '이론서'들이다. 그러니까 테오리아의 어원적 의미대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들을 대표하는 책 21권에 대한 평설집이라고 해야겠다. '20세기의 이론서 21권'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이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독일에서 개최된 ‘세기의 책-20세기의 이론들’이라는 기획 강의를 바탕으로 했다. 크게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사유전통과 학문분야가 20세기에 거두었거나 적어도 거두려고 애쓴 성과는 무엇인가?”와, “그 학문들은 어떻게 그것들의 시대에 관여했고, 구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위대한 이론은 무엇인가?”의 두 가지 문제 제기를 통해 산출된 결과물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이론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21세기에도 지속적인 시사성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판단되어 선정한 프로이트에서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21명의 사상가들과 그들의 책, 이론들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각의 독특한 접근방법과 깊이를 가지고 밀도 있게 소개했다."

국내에서도 쏟아지고 있는 고전해제서들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문제는 그 해제/평설의 수준이겠다. "난해한 이론서들에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해당 이론서들을 직접 읽어보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는 수준 말이다. 그리고 물론 그것이 적절하고 정확하게 우리말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조건하에서.

21권의 이론서를 다루고 있는 만큼 600쪽 이상의 분량을 자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일단은 관심이 가는 책을 다루는 장들만 골라서 읽으면 되는 것이니까. 그런 시간조차 낼 수 없다면, 20세기를 '이론적으로' 관조하는 일에는 마음을 접고 눈길을 떼는 게 옳다. 그리고는 21세기만을 한눈팔지 않고 질주하는 게. 굿바이!

남은 자들끼리 누리는 호사가적 관심거리는 과연 21권을 고른 주최측의 안목(편견 혹은 혜안)을 음미해보는 것이겠다. 대략 '상식적인' 리스트인지라 모험적이라고 할 만한 책을 그닥 눈에 띄지 않지만 몇 권 정도는 '독일'쪽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한데, 이 21권 가운데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아르바이트' 중에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세어보도록 한다.

1.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 레나테 슐레지어

 

 

 

 

프로이트의 대표적인 저작 <꿈의 해석>은 주지하다시피 여러 종의 국역본이 나와 있다. 비록 번역서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기에는 좀 찜찜하다는 의견이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생각의나무, 2006)에서 제기된 바 있지만.

2. 후설의 <논리 연구> - 미하엘 아스트로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의 저작들이 제법 소개되었고 연구서/논문들도 적지 않게 나와 있지만, 특이하게도 그의 초기 대표작인 <논리연구>는 번역돼 있지 않다. 분량의 방대함이 이유인지 내용의 난해함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고전'의 네임밸류에 걸맞는 번역본이 조만간 나오기를 기대해본다(여담으로 덧붙이자면, 후설의 책은 왜 <논리적 탐구>가 아니라 <논리연구>인가, 혹은 비트겐슈타인의 책은 왜 <철학연구>가 아니라 <철학적 탐구>일까?).

3.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 헤르베르트 야우만

 

 

 

 

지난 1995년에 범우사판으로 나와 있는 <서구의 몰락>이 유일한 완역본이 아닌가 한다. 대학원 시절에 필요 때문에 1권만 사서 부분적으로 읽은 기억이 있다. 나름대로 '세기의 책'에 꼽힐 만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이지만, 프랑스에서 21권을 꼽았다면 들어갈 수 있었을까? 

4.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 한스 위르겐 헤링어

 

 

 

 

올해 책세상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새로운 전집이 나오고 있고, <논리철학논고>는 그 전집의 첫권이었다. 두툼한 <철학적 탐구>보다 얇은 <논고>가 선정된 건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 아닐까? <탐구>를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약간은 덜어주니까 말이다. <논고>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해설서로는 박영식 교수의 <비트겐슈타인 연구>(현암사, 1998)가 있다.

5. 베버의 <경제와 사회> - 볼프강 슐룩흐터

국역본은 <경제와 사회 1>(문학과지성사, 2003)으로 출간되었다. 소장도서가 아니어서 당장에 확인할 수는 없지만 완역본은 아니고 더 출간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국역본의 이미지가 뜨지 않아 대신에 영역본의 것을 옮겨놓는다.

6.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 위르겐 미텔슈트라스

 

 

 

 

두말할 것도 없는 책. 5권의 파이날(결선)을 꼽더라도 당연히 들어가야 할 책이다. 국역본으로는 이기상(까치글방, 1998), 소광희(경문사, 1995) 두 분의 번역본과 해설서를 각각 참조할 수 있다.  

7.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 - 헬무트 레텐

독일의 정치학자 칼 슈미트의 저작들은 비교적 많이 소개돼 있는 편이고 거기엔 물론 <정치적인 것의 개념>(법문사, 1992)도 포함된다. 하지만 당장 서점에서 구해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짐작에 21권의 책들 가운데 가장 얇은 책이지 않을까 싶다. <논리철학논고>보다는 얇은 듯하니까. 이미지는 역시나 영역본의 것을 옮겨놓는다.

8. 겔렌의 <인간> - 카를-지크베르트 레베르크

 

 

 

 

아르놀트 겔렌은 '철학적 인간학'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보다 잘 알려진 철학적 인간학자로는 막스 셸러가 있지만(국내에도 더 많이 소개돼 있다), 독일에서는 겔렌의 <인간>이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모양이다. 겔렌이 책으론 <인간학적 탐구>(이문출판사, 1998)이 유일하게 번역돼 있는 책이지만, <인간>은 그보다 좀더 두툼한 책이다.

 

9.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 페터 뷔르거

 

 

 

 

사르트르에 대해서는 굳이 군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고(<존재와 무>도 새 번역본이 나올 수 있을까?), 다만 해설을 쓴 '페터 뷔르거'란 이름이 반갑다. <해설자들 가운데 내가 아는 두엇 중의 한명이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론으로 유명한 문예이론가 뷔르거의 책은 <전위예술의 새로운 이해>(심설당, 1986)를 필두로 하여 현재 네 권 가량이 번역/소개돼 있다.

10.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 게르하르트 쉬베펜호이저

 

 

 

 

이 또한 두말하면 잔소리인 책이겠다. 또한 <계몽의 변증법>이 확실한 고전인 것은 완독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어쨌든 국역본의 역자가 전면 개정판을 내야했을 만큼 '난해한' 책이기도 해서 적절한 안내서의 도움을 받는 게 좋겠다(영역본의 경우도 몇년 전 전면개역판이 나왔다). 아도르노를 술술 읽는 사람들이 나는 부럽고 미심쩍다.

11. 보부아르의 <제2의 성> - 크리스타 뷔르거

 

 

 

 

사르트르 커플의 책들이 나란히 선정된 것도 눈길을 끈다. 이젠 여성학의 '고전'이라고 해야할 책(크리스타 뷔르거는 혹 페터 뷔르거의 부인일까?). 보부아르와 관한 특이사항이 그녀가 국내에서는 철학자로서는 거의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점. 주로 출간되는 건 '사랑밖엔 난 몰라' 수준의 보부아르이다(그런 그녀가 여성학의 대모이다!).

12. 바흐친의 '변증법적 사유와 수사학' - 레나테 라흐만

 

 

 

 

특이한 일이지만 21권의 책이라고 해놓고 유일하게 구체적인 대표작이 명시돼 있지 않은 사상가가 바흐친이다. 일단은 국역본 <말의 미학>(길, 2006)을 대표작으로 꼽아둔다. 그리고 걸출한 연구서 <바흐친의 산문학>(책세상, 2006)은 나의 추천서이다. 해설자인 레나테 라흐만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러시아문학 연구자이자 바흐친 학자이다. 역시나 아는 이름이어서 반갑다.

13. 레비스트로스의 <친족의 기본 구조> - 발터 에어하르트

 

 

 

 

물론 <친족의 기본구조>는 국역본이 나와 있지 않다. 레비스트로스의 박사학위논문인데, <구조주의 인류학>이나 <신화학>보다 중요한 업적으로 간주하는 데에는 이 책이 구조주의 인류학뿐만 아니라 구조주의의 프로그램 자체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지 않나 싶다. 회고 대담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에서 뒷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고, 책의 보다 구체적인 내용 해설은 김형효 교수의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을 참조할 수 있다.

14. 루카치의 <이성의 파괴> - 라이너 로젠베르크

 

 

 

 

흔히 루카치의 범작으로 평가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세기의 책'으로 꼽혀 있어서 놀랐다. 미완의 번역본까지 치면 세 종류의 국역본이 나와 있기도 한 책. 데카당스(반합리주의) 철학 비판서 정도로 나는 알고 있다. 보통 루카치의 주저로는 <역사와 계급의식>을 꼽는 게 일반적인데, 해설을 읽어보고 소장여부를 판단해봐야겠다.

15.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 - 기젤라 페벨

 

 

 

 

두말하면 잔소리인 책. 하지만, 국역본은 분량상 아직 1/3밖에 나오지 않은 책. 그 사이에 영역본은 개역본이 나왔다. <논리연구>가 한국현상학회의 아킬레스건이라면 <진리와 방법>은 한국해석학회의 '굴욕'이라 할 만하다. 고전 번역에 단합해야 하실 분들이 담합하고 계신 건 아니신지?

16.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 프란츠 폰 쿠체라

 

 

 

 

<과학혁명의 구조>는 국내에 2종의 번역이 있다. 까치글방본과 이화여대출판부본이 그것인데, 교수신문의 번역비평에 따르면 일장일단이 있지만 원저 자체의 난해함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한다고. 학부 2학년 때 읽으면서 고전했던 기억이 새롭다(반면에 해설서들은 얼마나 단순명쾌한 것인지!).  

17. 푸코의 <말과 사물> - 우르줄라 링크-헤르

 

 

 

 

바케트빵처럼 팔려나갔다는 푸코의 이 주저 <말과 사물>(민음사, 1986)이 국내에선 절판중이다. 새 번역본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지만 '언제'라는 건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의 빵집들이 고급 바케트를 내놓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하고(제빵공은 있나?). 이미지로 대신 올려놓은 것은 개리 거팅의 <미셸 푸꼬의 과학적 이성의 고고학>(백의, 1999)이다. <광기의 역사>부터 <지식의 고고학>까지의 자세한 해설을 담고 있는 책이다.

18.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 베르너 슈테크마이어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도 절판된 민음사판까지 포함하면 2종의 번역이 나와 있다. 초기 데리다의 간판격이 책이지만 역시나 읽은 사람 몇 되지 않는다(나도 완독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국역본들 외에 영어, 불어, 러시아어본까지 갖고 있어서 언젠가는 마스터해줄 책으로 꼽고는 있다. 조만간 해설서들도 나올 듯하고. 현재까지는 마이클 페인의 <읽기 이론/ 이론 읽기>(한신문화사, 1999)의 해설이 요긴하다.

19. 부르디외의 <실천이론 연구> - 에곤 프레이크

 

 

 

 

부르디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물론 <구별짓기>이지만, '이론서'로 꼽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나 보다. 한데, <실천이론 연구>가 정확히 어느 책을 가리키는지 모르겠다. <실천이성>도 국역본이 나와 있지만 짐작엔 'The Logic of Practice'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역본의 제목이 그렇고, 불어본의 제목은 <실천의 의미> 정도이다. 러시아어본도 출간돼 있는 책.

20. 하버마스의 <소통행위이론> - 콘라트 오트

 

 

 

 

올해 가장 번듯한 번역본이 나온 책. 역시나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21. 루만의 <사회의 사회> - 위르겐 포르만


 

 

 

하버마스와 함께 독일 사회학을 양분하고 있는 니클라스 루만의 책들은 국내에 좀 얄팍한 책들만 세권쯤 출간돼 있다. 거기에 입문서 한두 권. 그의 방대한 저작 <사회체계>가 구내에 번역/소개되기를 기대한다. <사회의 사회>가 그 사회체계론의 일부인지 독립된 저작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서 결론적으로 21권의 책들 가운데 5-6권 정도가 아직 번역되지 않은 듯하다. 양호한 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저작들의 지명도를 생각하면 3-4권은 더 번역돼 있어야 했다. 21권의 책들 가운데 독어권의 책이 13권이니까 과반수가 넘는다. 불어 6권, 영어 1권, 러시아어 1권 순이다. 한편, 우리가 자랑할 만한 '세기의 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06.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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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72)

강의준비에도 쪼들리고 있는 걸 보면 이래저래 바쁜 계절이다(4월이 어디 가겠는가?). 벚꽃놀이가 '시즌'에 들어갔지만, 꽃구경은 언감생심이다. 어린이대공원의 벚꽃놀이가 이렇다 한다. 나는 책구경으로 허전함을 때우려 한다. 최근에 처음으로 세상 구경을 나온 책들이다.

 

 

 

 

첫번째 책은 칠레 출신의 인지생물학자이자 철학자 움베르토 마투라나(움베르또 마뚜라나; 1928- )의 대담집 <있음에서 함으로>(갈무리, 2006)이다. 책은 독일어 원저가 2002년에 나오고, 대본이 된 영역본이 2004년에 나왔다고 하니까, 따끈한 책이다. 마투라나는 흔히 동료인 프란시스코 바렐라와 찍지어서 불리는 이름인데, autopoiesis, 즉 '자기생산' 혹은 '자가생산'의 개념을 창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들뢰즈의 <시네마>인가에서 'autopoietic'을 '자율시적'이라고 옮겼는데, 오역이다).

국내에는 이미 <인식의 나무>(자작아카데미, 1995)란 책이 오래전에 소개됐었는데(나도 그 책을 통해서 이름을 처음 접했다), 마투라나는 자기조직 체계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함께 최근에 인문학에서는 부쩍 자주 눈에 띄는 이름이 되었다. 비록 저자는 인지생물학을 인식론에 한정하여 이해하지만, 보다 확장된 시야에서 바라볼 수도 있는 것. 

가령, 오래된 책이지만 에리히 얀치의 <자기조직하는 우주>(범양사, 1989) 같은 천체물리학 책이나(물리학 책으론 로저 하이필드 등의 <시간의 화살>(범양사, 1994)도 유익하고 재미있는 참고문헌이다), 폴 크루그먼의 <자기조직의 경제>(부키, 2002) 같은 경제학서, 그리고 슈미트의 <구성주의 문학체계이론>(책세상, 2004) 등은 모두 우주와 경제와 문학작품을 자기조직적 체계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는 책들이다. 김성재의 <체계이론과 커뮤니케이션>(커뮤니케이션북스, 2005)은 커뮤니케이션 현상에 대한 체계이론적 접근 입문서이고, 사회학이론의 대가 니콜라스 루만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체계를 이해한다(그의 대저 <사회체계론>이 아직 번역되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또, 체계이론은 보통 기호학과 많은 부분 문제의식을 공유하는데('자기생산'의 기호학을 주제로 한 책들이 다른 언어권에는 나와 있다), 문화를 하나의 체계로 보는 러시아 문화기호학자 유리 로트만의 작업도 이러한 맥락하에 놓인다.

'자기조직적' 관점의 세계 이해라는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혼자서도 잘해요!"가 되겠다. 어떤 외부의 힘의 유입/개입 없이도 자체적으로 카오스(혼돈)에서 코스모스(질서)를 형성해나간다는 것. 이러한 관점의 함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세계가 외부(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율적 체계들의 집합체라는 것(바깥은 없다, 내지는 없어도 된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 아닌가? 외부/바깥이 없는 무한으로서의 우주. 동양사상에서는 무위(無爲)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해서, 제목에서는 '있음에서 함으로'로 돼 있지만(물론 프리고진의 '있음에서 됨으로'를 바로 연상시킨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 아닌가? 비록 마투라나는 프리고진을 인용하고 있지 않지만), 그때 '함(doing)'은 '무위'의 함이라고 나는 지레짐작한다. 그것은 무얼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최적성의 경로를 따라서 무엇이 저절로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정치적 함의가 (루만의 경우도 그렇지만) 한편으론 보수주의적이라는 걸 따로 덧붙일 필요는 없겠다.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 왓에버 윌비 윌비(Whatever will be, will be)의 교육 버전. "애들은 (지들이) 알아서 큰다!"(이런 경우는 '진보적'이라고 해야 하나?)     

 

 

 

 

두번째 책은 다방면으로 활동했던 인류학자이자 철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1904-1980)의 주저 <마음의 생태학>(책세상, 2006)이다. 원제는 'Steps to an Ecology of Mind'인데, 이미 <마음의 생태학>(민음사, 1990)으로 국역본이 나와있는 책이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2000년판을 옮긴 것이며, 메리 캐서린 베이트슨(1936- )의 서문(1999)이 붙어 있다. 메리는 베이트슨과 저명한 여성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아래는 베이트슨 부녀의 사진.

<마음의 생태학> 외에 베이트슨의 책으론 루스 베네딕트의 <문화의 패턴>(까치, 1997), 마가렛 미드의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이대출판부, 1998)과 함께 초기 인류학의 '명저'로 꼽힌다는 <네이븐>(아카넷, 2002), 그리고 <정신과 자연>(까치, 1998), <마음과 물질의 대화>(고려원, 1993) 등이 더 소개돼 있다. 

상식적으로 알아둘 것은 정신분열증에 관한 베이트슨의 이론이다. 흔히 이중구속(double bind)론이라고 불리는 것 말이다.  백과사전에서 관련내용을 옮겨오면 이렇다: "예컨대 어머니가 아이에 대해서 무언가를 하도록 말하고, 동시에 그것을 부정하는 듯한 몸짓을 한다. 그러면 아이는 이중으로 구속된 상태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을 이중구속의 상태라고 한다. 베이트슨은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서는 아버지가 없을 때에 이 상태가 생기기 쉽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 이론의 모델은 발리섬 주민의 개인 간 상호작용에 관한 고찰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개인 중에서도 주로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아버지의 권위가 약해지거나 아버지가 없는 현대의 가족상황을 예견한 이론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영국의 반정신의학이나 가족요법의 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보다 단순하게 말하면, 두 가지 명령에 구속된 상태를 말하는바, 강의시간에 우스개 소리로 자주 하는 얘기는 이런 거다. 다이어트중인 딸한테 아빠가 딸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엄마는 먹으면 혼날 줄 알아라는 표정으로 눈을 흘긴다. 만약에 엄마와 아빠를 모두 사랑하는 딸이 두 사람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자 한다면, 이중구속 상태에 빠지게 된다(보통은 이런 난처한 상황한 처한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린다). 정신분열증이란 이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이거 먹는 건 내가 아니야 라고 부인하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나와 그걸 금지하는 나의 자기분열. 믿거나 말거나.   

 

언젠가 체계이론에 관심을 갖게 되어 베이트슨의 책들을 사들이긴 했었는데(근작에 속하는 <네이븐>을 제외하고), <마음의 생태학> 영어본과 러시아어본이 거기에 포함된다. 국역본이 나온 김에 독서계획을 세워볼까 하지만, 책장에서 눈에 띄지 않는 걸 보니 모두 박스보관 도서인 듯하다.      

 

 

 

 

세번째 책은 역사학자 피터 버크의 <지식>(현실문화연구, 2006)이다. 영국 캠브리지대학의 문화사 교수로 재직중이라는 버크 교수의 처음 출간된 책은 <역사학과 사회이론>(문학과지성사, 1997)이며 이후로 잠잠하다가 작년부터 부쩍 출간도서가 많아지고 있다. <이미지의 문화사>(심산, 2005), <문화사란 무엇인가>(길, 2005) 등이 그의 책들이다. 모두가 한번쯤 읽어볼 만한 주제와 분량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식>의 원제는 'A Social History of Knowledge: from Gutenberg to Diderot'(2000)이니까 '지식의 사회사'쯤 될 텐데, <지식의 역사> 같은 식의 제목을 붙이지 않은 것은 좀 이외이다. 슈바니츠의 베스트셀러 <교양>(들녘, 2004) 같은 책과 '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반영된 것인지? 여하튼 내용은 지식의 탄생과 유통, 소비에 관한 모든 역사이다. 

소개를 옮겨오자면, 책은 "근대 유럽을 중심으로 지식의 탄생, 흐름, 분류, 판매, 소비, 상품화 등을 망라하는 '학문의 역사'를 담았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형성된, 이른바 '지식의 공화국(Republic of Knowledge)'에 대한 40여년에 걸친 지은이의 연구 결과물이다. '지식의 공화국'이란 표현은 주로 학자들 간의 상상된 지식공동체를 뜻하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를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여 장인이나 농부, 산파의 현장경험도 '지식'의 개념으로 다루고 있다."

 



 

 

거기에 지식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덧붙여지는바, 실상 '지식인'의 탄생과 종말을 다룬 책들은 적지않게 나와 있으므로 관심있는 독자들은 일독해보시길. 아쉬운 건, 러시아식의 독특한 지식인 유형인 '인텔리겐치아'에 대한 책들이 요즘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록 인텔리겐치아의 시대는 끝났다 하더라도 '인텔리겐치아의 역사' 정도는 소개되어도 좋지 않을까?  

 

 

 

 

네번째로는 자유주의에 관한 책들을 몇 권 고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티븐 룩스의 <자유주의자와 식인종>(개마고원, 2006). 다른 정보가 없으니 소개를 인용하면, ""자유주의자에게는 자유주의를, 식인종에게는 식인주의를" 이 책 제목의 모티브가 된 이 말은 영국의 철학자 마틴 홀리스가 만든 경구이다. 그런데 정말 모든 사상의 '자유'를 용인한다는 자유주의를 따른다면 식인주의도 용인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저명한 사회철학자이자 정치이론가인 스티븐 룩스가 1992년부터 2001년까지 기고하거나 강연한 원고를 모은 것이다. 13편에 달하는 글에서 지은이는 자유주의가 내포하는 상대주의와 다원주의가 갖는 한계를 탐구하고 있다."

"즉, 다양한 역사·문화적 배경에서 생성된 가치들이 서로 충돌할 빚을 수밖에 없는 현대 지구촌 사회에서 절대적 가치를 거부하며 모든 가치를 원칙적으로 인정해 버리고 마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는 갈등을 해소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기 한계까지도 인정할 줄 아는 자유주의적 이성'을 제시한다. 이성에 대한 믿음으로 자기 이성을 계몽하고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최적점을 찾아가는 자세를 갖는 것이 '자유주의자'와 '식인종'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자기 한계까지도 인정할 줄 아는 자유주의적 이성'은 얼핏 리처드 로티를 연상시킨다. '자유주의적 아이러니스트가 되라!'가 저자의 금언인가?

그리고, 자유주의 이론에 관한 천착을 계속 하고 있는 이근식 교수의 신작 <애덤 스미스의 고전적 자유주의>(기파랑, 2006)도 출간됐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을 저술한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을 상세히" 살피고 있는데, "1999년 출간된 지은이의 전작 <자유주의 사회경제사상>(한길사, 1999)에서 애덤 스미스를 다루었던 부분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저자의 변은 이렇다: "지금부터 꼭 40년 전 대학 진학시 경제학과를 지망한 것은,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워도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없었다. 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알게 된 것은 40대 중반에, 경제학을 전공한 지 20년도 넘어서, 애덤 스미스의 책들, 특히 <도덕감정론>을 읽고 나서였다. <도덕감정론>은 내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스미스는 인간은 양심과 타인에 대한 동정심도 있으나 자기 사랑이 더 강하며, 누구나 더 잘 살려고 노력하는 강렬한 본능이 있으며, 시장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므로 저절로 발생하여 성장하는 자연스러운 제도임을 가르쳐 주었다."

한데, 이 <도덕감정론>(비봉출판사, 1996)은 이미 품절된 지 오래된 책이다. 자유주의 애호가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의 주저를 서점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유감이다. 한편, 저자의 다른 책으론 <자유와 상생>(기파랑, 2005)이 얼마전에 나온 책이고, 편저자로 참여하고 있는 <자유주의의 원류>(철학과현실사, 2003), <자유주의란 무엇인가>(삼성경제연구소, 2001) 등도 자유주의 '원론'을 챙겨볼 수 있는 책들이다.

한편,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의 정치철학을 살핀 입문서도 출간됐다. 조나산 울프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철학과현실사, 2006)이 그것이다. 노직의 대표작인 '아나키, 국가, 유토피아'(1974; 국역본은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문학과지성사, 1997)에 대한 해설서로 유용한 책이겠다. 노직의 책은 내가 학부를 다닐 때만 해도 롤즈의 <정의론>과 함께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필독서였다. '자유주의'에 대한 막연한 호감이나 반감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노직과 한번 대결해 봄직하다(이런, 노직의 책들도 모두 박스에 들어가 있다!). 한편, 알라딘에는 저자가 '노지크'로 돼 있지만, <인생의 끈>(소학사, 1993)의 저자도 로버트 노직이다. 저자의 명성에 비해 좀 한가해보이는 책이었는데, 아무래도 흥미로운 건 그의 인생론이 아니라 정치철학이다. 

 

 

 

 

끝으로 전혀 예상치 않았던 책, 롤랑 바르트의 'S/Z'(동문선, 2006)이다. 작년에는 <목소리의 결정>이 나오고 해서, 이로써 롤랑 바르트 전집이 거의 완결돼 가는 게 아닌가 싶다. 발자크의 단편 <사라진느>에 대한 정밀하면서도 유희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이 '문학이론서'는 바르트의 이론적 여정이 구조주의에서 포스트구조주의로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전범적인 책이다. 한데, 그런 만큼 번역이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국역본의 출간은 반가우면서도 미심쩍기까지 하다(러시아어로 번역돼 있긴 하지만). 한편으론 <모드의 체계> 같은 '구조주의' 저작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법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바르트의 책으론 단연 <텍스트의 즐거움>과 <사랑의 단상>을 꼽을 수 있다. 거기에 그의 사진론 <카메라 루시다>(열화당)를 보탤 수 있고(이 책이 절판된 건 유감스럽다). 나머지 책들에 대해서는 바르트 애호가나 전문 독자의 리뷰를 읽었으면 싶다. 이럴 때면 좀 아쉬운 사람들이 있다...

06. 04. 14-15.

 

 

 

 

P.S. 덧붙이고 싶은 책은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 노르웨이의 노벨상 수상 작가 크누트 함순(1859-1952)의 <굶주림>(범우사, 2006)이다. 나는 이전에 우종길의 번역으로 된 <굶주림>(창, 1994)으로 읽었었다. 나치 부역 혐의로 말년의 삶은 좀 치욕적이었지만, '20세기 최고의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크누트 함순의 처녀작. "1890년에 출간되었으며, 고통스럽게 불안해하는, 소외된 현대의 인간을 문학작품 속에 등장시킨 최초의 소설로 평가받는다. 이중적이고 복잡한, 그래서 때때로 관련성이 없는 반응양식을 보이는 인간의 심리를 통찰한 작품이다."



소개를 더 옮기면, "이 작품에는 1886년 겨울 작가가 오슬로에서 직접 겪은 극심한 가난이 반영되어 있다. 그가 묘사하는 굶주림의 상황과 심리현상은 매우 충격적이다. 소설 속에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굶주림의 사회적 원인도 서술대상이 아니다. 오직 '불가사의한 굶주림'만이 눈앞에 나타나 있을 뿐. 이 굶주림은 주인공을 '극도로 날카로운 지각능력과 죽음에 가까운 혼미상태가 교차하는' 고도의 정신분열증적 상태로 몰아간다."

"작가 크누트 함순(Knut Hamsun)은 20세기의 주요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프란츠 카프카, 베르톨트 브레히트, 헨리 밀러 등 전 세계의 유명 작가들이 그를 숭배했다.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이작 싱어는 영어로 번역된 <굶주림>의 미국판 서문에서 크누트 함순을 '현대 문학의 아버지'라고 평한 바 있다."

거기에 동시대 작가 폴 오스터(왼쪽 사진)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문학론 <굶기의 예술>(문학동네, 1999)는 무엇보다도 함순의 <굶주림>과 카프카의 단편 <단식광대>에 바쳐진 것이기 때문에. 더불어, 러시아 작가 다닐 하름스(1905-1942, 오른쪽 사진)의 부조리한 작품들에도 함순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져 있다(함순은 하름스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의 한 사람이다). <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청어람미디어, 2004)에 실린 단편 <노파>를 <굶주림>과 같이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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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이번주 신간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동아시아, 2006)이다. 지난번 <자유론>(아카넷, 2006)이 출간되었을 때 '이사야 벌린과 우파적 교양'이란 제목으로 관련 페이퍼를 적으면서 언론리뷰들을 옮겨놓은 적이 있었는데, 이사야 벌린의 1주기를 맞이하여 출간됐다는 이 책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할 리뷰가 올라와 있지 않다.

 

 

 

 

한겨레의 최재봉 기자가 쓴 소개 정도가 예외적인데,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은 영국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1909~1997)의 1주기에 맞추어 열린 추모 학술회의의 발표문과 토론 내용을 엮은 책이다. ‘고슴도치와 여우’ ‘다원주의’ ‘민족주의와 이스라엘’ 세 가지 주제로 나뉘어 영국과 미국 등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해 심도 높은 논의를 벌였다."

 

 

 

 

그 세 가지 주제를 편집한 이들이 각각 마크 릴라, 로널드 드워킨, 로버트 실버스이다. 실버스는 생소하지만(<숨겨진 과학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는 실버스가 동일인인지 동명이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마크 릴라와 드워킨의 경우는 이미 다른 저서들이 소개돼 있다(특히나 로널드 드워킨은 존 롤스 이후의 가장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로 이름이 높다). 이들 외에도 찰스 테일러, 마이클 왈쩌 같은 걸출한 철학자들이 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리뷰의 내용을 마저 옮기면, "고슴도치와 여우’란 벌린의 논문에서 따온 개념으로, 거칠게 구분하자면 고슴도치와 여우는 각각 일원론과 다원주의에 해당한다. 소극적 자유의 개념을 강조한 벌린은 물론 다원론적 여우의 손을 들었다. 벌린의 생전에도 그러했지만 학술회의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다원주의를 지향한 벌린이 그 자신 유대인으로서 유대 민족주의인 시온주의와 이스라엘에 대해 애착을 보였다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해 그의 지인이기도 했던 아비샤이 마갈릿 예루살렘 헤브루대 교수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 남아야 하고, 이스라엘 내 무슬림 성지들은 무슬림 당국의 치외법권 아래 두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유엔은 무력을 통해서라도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벌린의 마지막 편지를 공개했다."

이사야 벌린의 최초의 저작이 <칼 마르크스>(1939, 1978 4판)이며,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한 에세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 <고슴도치와 여우>(1953)는 그의 두번째 책이다(얇은 책이다). 고슴도치와 여우가 각각 일원론과 다원론을 상징한다고 돼 있는데, 벌린이 비유하고 있는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이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는 높이 평가하지만 그가 선호하는 작가는 톨스토이이며,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아마도 투르게네프일 것이다. 그리고 이 투르게네프와 마르크스는 생몰연대(1818-1883)가 동일하다. 그런 우연의 일치 때문만은 아니지만(사실 벌린이 <칼 마르크스>를 쓰게 된 계기도 아주 우연적이다), 나는 이사야 벌린을 이해하고자 할 때 핵심적인 키워드 두 가지는 '마르크스'와 '투르게네프'가 아닌가 싶다.

사실 러시아 태생(리가 출신이다)의 유태인이기도 하지만 벌린은 러시아 문학과 사상에 정통한 철학자이다. 그리고 그걸 확인시켜주는 저작이 <러시아 사상가들>(1978)이다(책 표지에 실린 이들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게르첸과  벨린스키, 그리고 투르게네프이다). 벌린의 지적 유산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나는 이들 작가/사상가들에 대한 그의 평가와 그가 받은 영향들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더불어 바라는 바는 이 책 또한 번역/소개되는 것이다.  

얼마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브라이언 매기가 편집한 <현대철학의 쟁점들은 무엇인가: 거장들과의 대화>(심설당, 1985/1989)를 들춰볼 기회가 있었는데, 전체 15장(15명의 철학자들과의 대화)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제1장 '철학이란 무엇인가'가 바로 이사야 벌린 경과의 대화이다('아이사야 벌린 경'이라고 표기돼 있다). 철학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란 질문에 대해 "합리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신념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가정들에 대해 비판적인 검색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철학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벌린은 몇 가지 사례를 예로 든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바로 일상적인 견해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진지한 노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모두 이와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사례를 위대한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입센의 희곡의 주인공과 투르게네프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혹은 포스터의 <가장 긴 여행>들에 나오는 주인공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어서 보다 '철학적인' 대담이 오고가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벌린이 입센, 투르게네프, 포스터 등의 작품들을 거명하는 태도이다. 명망있는 철학자이지만 그는 위대한 문학에 대한 존경 또한 감추지 않았던 것이다.

 

 

 

 

하니, 벌린을 읽기 위해서는 적어도 투르게네프 정도는 읽어주는 게 좋겠다. 포스터의 책은 <기나긴 여행>으로 올해 번역돼 나왔지만, 투르게네프의 소설들은 진작에 번역/소개돼 있잖은가. 그러한 기본적 태도가 빠지게 될 경우 <전야> 혹은 <전날밤>이라 소개돼 있는 작품 'On the Eve'를 <크리스마스 이브에>라고 엉뚱하게 옮기게 된다(영역본 제목의 'Eve'는 크리스마스와 전혀 무관하다. 투르게네프의 소설 <전야>(1860)는 결과적으론 러시아 농노해방(1861)의 '전야'를 보여주게 된 작품이다). 문학에 대한 무지는 철학도의 자랑이 아니라 근심이어야 한다.    

 

벌린의 관한 자료와 이미지들을 뒤적거리다 보니까 존 그레이의 <이사야 벌린>(1996) 같은 책도 눈에 띈다. 200쪽이 안되는 분량이기에 입문서로서 유용할 듯싶은데, 영어권에서도 고작 세번째로 출간된 관련 단행본이라고 한다. 이왕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을 챙기기 시작한 바에야 이 정도는 금방이라도 소개해줄 필요가 있겠다...

06.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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