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 미니앨범 Malo Sings Baeho - [K-Standards Vol. 2]
말로 (Malo)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배호를 좋아하는 이들은 왜 배호를 찾게 될까?

 

나의 어릴 적, 미처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이던가, 아니면 초등학교 1학년 즈음이던가...

외삼촌이 만들어 주신 트랜지스터 전축으로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LP판이 몇 장 있었다.

그 몇장 중에는 김정구의 눈물젖은 두만강도 있었고, 오토바이에 멋지게 앉아있던 이장희도

있었다.  어린시절 가장 좋아했던 "내 곁에 있어주"의 이수미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앨범 쟈켓은 선글래스를 멋지게 끼고 있는 멋진 미남자의 얼굴사진이

있는 쟈켓이었다.

 

사춘기에는 남들처럼 팝송을 듣기 시작했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락과 메틀을 들었고, 대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다.

복학 할 무렵 아르바이트로 모은돈 거금 33만원으로 소니 CD플레이어를 구입하여 처음으로

CD를 구입하게 되었고 그 당시부터 대량 유통되기 시작한 재즈를 접하게 되었다.

21세기 초반에는 Misia와 사쟌올스타즈에 빠져 뒤늦게 J Pop을 열심히 들었고  

한동안 샹송과 파두 등 유럽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

나의 음악적 관심사는 드디어 신대륙으로 세계 여행을 떠났다.

남미 대룩의 라틴뮤직으로 관심의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그리고 삐아졸라를 알게 되었고 비에나부스타 소셜클럽을 알게 되었다.

 

나름 두루두루 음악을 들었다 자부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배호를 듣게 되었다.

그것도 우연히 다운받게 된 mp3를 컴퓨터를 통해서 말이다.

그의 저음, 배호의 최고의 마력이다.

허스키하게 갈라지는 저음의 비결은 피나는 노력에 있었다고 한다.

녹음전에 목소리를 만들기 위하여 일부러 줄담배를 몇갑씩 피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저 트로트라고 하기엔 또 다른 음악세계가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는 곡은 "돌아가는 삼각지" 이지만 배호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배호의 "안녕"을 최고의 곡으로 꼽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제 중년에 접어들어 배호의 음악을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듣고 있자니 너무 좋은거다.

게다가 우연히도 예전에 샀었던 장사익의 음반에 "돌아가는 삼각지"가 있는 행운까지...

너무 행복해 하는 내 모습에 내 스스로 나도 꼰데가 되어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뽕짝만 좋아하시던 아버지 세대를 보면서 '저런 음악이 뭐가 좋다고...'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젠 나도 배호와 박일남의 그 낮은 목소리를 좋아하기 시작한거다.

다른 뽕짝 가수와는 다르다고 나름 음악적으로 나만의 이유를 만들어서 내가 늙어서 그렇다는

주변 사람들의 놀림에 항변한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배호라는 가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어서 기뻤다.

 

엊그제 배호의 마지막 녹음과 다름없는, 그가 작고하던 71년도에 기획하여 72년 9월에 발매된

'TELEFUNKEN 시스템으로 녹음하여 동양 최초로 NEUMANN사의 커팅 머신으로 작업한 대도레코오드' 사의 LP로 배호의 주옥같은 레퍼토리를 들었다.

내 생애 최초로 배호를 LP로 만났다.

아마도 우리집에 있던 배호의 LP도 거의 삼십 몇년만에 무대에 올라간 것이다.

마치 일제강점기의 기간에 버금갈 만큼 긴 세월을 레코드 속지 안에서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배호를 들었던 감격은 벅찼지만 실로 그 음질은 많이 실망했다.

LP의 음질이 CD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도 어느정도 음질이 괜찮은 음반들은 감성이라는 부분으로 CD를 눌러버리는 장기가 있는데 '동양 최초로' 좋은 녹음으로 만들어진 배호의 LP는 음역이 너무 좁은데다가 그의 목소리를 느끼기엔 많은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제대로 만들어진 마스터테잎이 있다면 그의 사후에 좋은 음질의 CD로 만들어 졌을 것이다 라는 나의 생각은 알라딘을 찾게 만들었다.

그러나 배호의 음반은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음질이 좋아보이는 CD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말로라는 한국의 뮤지션이 배호를 리메이크 했다고 베스트 추천음반으로 올라왔다.

말로는 처음 들어보지만 함께 작업한 심성락 선생의 음반을 소장하고 있기에 구매하기로 했다.

하루만에 말로의 CD는 도착했고 함께 주문한 많은 음반들 중에 그것을 가장 먼저 플레이 한다.

가장 좋아하는 2번 트랙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플레이 시킨지 1분 만에 CD를 플레이어에서

eject 시켜 버렸다.

대략 보사노바풍으로 리메이크 했는데 말로의 음반에서는 배호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앨범 제목 그대로 "말로가 노래한 배호" 라면 배호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배호는 없고 말로만 있었다.

굳이 있다면 작곡가 배상태도 없고,작사가 인성 전우 같은 분들만 있는거다.

 

참을 수 없는 배호의 가벼움이다.

리메이크는 다시 작업하는 이의 개성과 주관에 따라 원작과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

원작보다 슬프게도 기쁘게도 만들수 있는 것이지만 적어도 듣는이로 하여금 또다른 감동을 주거나, 아니면 적어도 색다른 맛이라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긴 색다르긴 하다...어쩌면 배호를 저렇게 해석할 수 있는가 하는 색다름.

혀를 끌끌 차게 만든다.

혀를 차는 부분의 백미는 "돌아가는 삼각지" 에 있는 것 같다.

정말로 너무도 가벼움, 그저 그 하나로 더 이상 들어보고 싶지도 않았던 앨범.

돈이 아까운 것은 아니지만 또 한장의 버려지는 CD를 그저 장식품으로만 CD장에 놓아 두어야

한다는 씁쓸함은 어쩔수가 없다.

말로의 앨범에서 받은 상처를 장사익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들으며 달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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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meurdream 2020-08-07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아픈 평이네요. 중고로 내놓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배호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 귀엔 아주 좋습니다

telmeurdream 2020-08-07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한 거의 모든 뮤지션의 음반을 제가 가지고 있는것 같은데 요새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는게 말로음반인데 제가 이 미니앨범만 놓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