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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부르의 저주 - 귀족 탐정 다아시 경 1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6
랜달 개릿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수록된 총 다섯편의 중단편에서, 독자들은 위에 나열한 장르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사자심왕 리처드가 죽지 않았다는 가정 아래 만들어진, 19세기적인 옛스러움과 귀족적인 품격이 느껴지는 가상의 20세기 유럽 영불(英佛)제국의 모습, 살인사건을 추리해나가는 재미, 마술사의 마법이 나오는 장면에서 우리에게는 신비감을 주는 마법에도 과학과 같이 법칙이 있다는 놀라운 상상력(CSI에서 마술로 화약반응검사를 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면서도 마법의 신비감을 잃지 않게 해주는 오컬트적인 요소까지. 게다가 '셰르부르의 저주'에서는 영불제국과 폴란드의 정치적 문제가 등장하면서 스릴러의 분위기도 풍긴다!(물론 그런 세계관에 제국주의적인 사고가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리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요소들이 단순히 '더하기'가 된 것이 아니라, 소설 안에서 '곱하기'가 되었다고 표현해야 할 만큼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되면서 각 장르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다는 사실이다.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장르를 뛰어넘은 장르소설'을 만들었다는 것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장르의 충실한 것도 장르문학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겠지만, 나는 장르문학이 진정으로 가져야 할 것은 매너리즘에 쉽게 빠지지 않으면서도 장르 독자들을 매료시킬 그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아시 경 시리즈의 첫번째 책인 <셰르부르의 저주>는 그 '무언가'가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무언가'는 읽는 사람에 따라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그 '무언가'를 느꼈다. 홈즈를 닮은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른 세련된 매력을 풍기는 다아시 경이라는 캐릭터에서도, 홈즈가 살았던 19세기 대영제국의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한편으로는 6~70년대 미국의 모습이 펼쳐지는 작품의 배경에서도, 그리고 각 작품의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느꼈던 긴 여운에서도 그 '무언가'를 느꼈다. 특히 다아시 경 시리즈 최초의 작품인 '두 눈은 보았다'의 마지막 장면이 갖는 여운은 애거서 크리스티나 셜록 홈즈의 소설에 비할 만한 것이었다.

'(중략)...주관적 현실을 객관적인 것으로 바꾸면, 반드시 왜곡이 개재되게 마련입니다. 법정에서 그런 것들이 객관적인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이유에서입니다.' 그는 말을 멈췄다. '바꿔 말하자면,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에 있는 것입니다.'

수없이 쏟아지는 장르 소설들이 반짝 인기를 누리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지만, 시대상을 보여주면서도 그 시대를 뛰어 넘어 계속 독자들의 사랑을 '현재진행형'으로 받는 소설이 있다. 발표된 시기와 작품의 연대적 배경이 같은 이 다아시 경 시리즈는 그 시대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미 발표된지 30년이 훌쩍 넘은 '신고전 SF'지만, 작년에 미국에서 새로운 판본이 나와 다시금 '현재진행형'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8년이란 세월이 흘러 단편이 하나 추가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독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결국 정말 좋은 작품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선풍기 바람 앞에서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어나가는 즐거움, 그리고 이따금 책장에서 부담 없이 꺼내볼 수 있는 오랜 친구같은 소설을 찾는다면, 다아시 경은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나올 '마술사가 너무 많다'와 '나폴리 특급살인'도 무척 기대하고 있다. 셰르부르의 저주는 8년 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적이 있지만 뒤의 책들은 아직 한번도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초역이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크다.(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시리즈 최고의 작품은 '나폴리 특급살인에' 실릴 '중력의 문제'라고 한다. 이보다 더 좋다면 별 여섯개를 줘야 할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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