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 세계 바벨의 도서관 6
찰스 하워드 힌턴 지음, 이한음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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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부터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는 시간 동안 고대 그리스의 과학적 사유가 발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근대적 의미의 자연과학(Natural Science/Naturwissenshaft)이 성립한 것은 17세기의 과학 혁명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혁명의 중심에는 갈릴레이와 뉴턴 같은 유명한 과학자들이 있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두 가지 새로운 과학에 관한 논의와 수학적 증명』은 순수한 사고실험을 거쳐 탄생한 기하학적 원자론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과 결별하고자 했으며, 아이작 뉴턴은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뛰어넘는 직관적 사고로써 데카르트의 기계론을 뛰어넘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집필했다.

갈릴레이와 뉴턴의 수학적 작업이 각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와 데카르트주의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던 것은 당시의 세계관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현세의 복잡한 현상들을 경험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체에 대한 범우주적 근거의 선험적 전제(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에테르, 데카르트에게는 코푸스켈)를 토대로 세계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자연관에서 갈릴레이와 뉴턴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끊임없이 ‘신비주의’의 의심을 받았던 것은 단지 그들의 (어쩌면 피타고라스적인)수비학적 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험적 검증이 불가능한 ‘신비’의 영역에 가까운 수학적 ‘증명’과 ‘원리’는 지금까지도 신비주의자들의 몫이며,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찰스 하워드 힌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 신비주의적 ‘혁명’을 설명하려면, 마흐(Ernst Mach)의 말을 빌리는 것이 수월할 듯하다: “비상식적인 불가해성이 상식적인 불가해성이 되었던 것”이다. 

뉴턴에서 아인슈타인까지 이어지는 근대과학의 혁명기 동안에도 신비주의자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과 공간과 신을 연금술과 수비학의 전통에 따라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해내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한 전통의 흐름 속에 찰스 하워드 힌턴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찰스 하워드 힌턴이 『평면 세계』에 실린 「평면세계」와 「네 번째 차원이란 무엇인가」에서 꼼꼼하게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시공간의 개념을 순수한 수학적 사고실험을 통해 확장하는 것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4차원의 신’을 이론적으로 증명해내는 것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2차원과 3차원의 비교를 통해 3차원과 4차원 간의 관계를 설명하려 한다. 필경 차원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제곱의 원리를 통해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 즉 2차원의 세계가 제3의 방향을 추가할 때 3차원으로 확장되듯이 3차원 또한 새로운 방향을 부여하여 4차원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더 나아가 2차원의 세계·사물·사람(들의 세계이해)을 수학적으로 가정하여 이를 통해 4차원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마치 2차원에서 3차원적 신을 상정하듯, 우리의 3차원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4차원적 신이 존재하고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주의적 세계관과 공간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과학사의 흐름을 파악해야만 한다. 막스 야머의 『공간개념』(이 책은 찰스 하워드 힌턴에 대해 언급한 국내의 몇 안 되는, 어쩌면 유일한 책일 것이다)에서는 뉴턴의 절대공간 개념이 해체되고 리만기하학의 대두와 더불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세계를 지배한 시기 이전의 사람들이 ‘공간’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막스 야머가 고대 그리스의 공간개념 뿐 아니라 유대 기독교의 공간 개념 또한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물리학계에 자리잡기 이전 시대의 사람이었던 찰스 하워드 힌턴에게 공간이란 절대적인 것이었다. 힌턴이 4차원을 상상하기 위해 2차원과 3차원의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만 봐도 전통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에 입각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적이고 절대적인 공간개념의 기원은 유대교-기독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또한 「페르시아의 왕」에서 볼 수 있는 (차라리 수학적이라고 해야 할) 견고한 윤리의식도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향취를 품은 것이다.  

하지만 비교秘敎적인 힌턴의 세계를 단순히 전통적인 수비학 문서 중의 하나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의 세계에는 비약적 추론이 없으며, 종교적인 옛 체계를 그대로 따르는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힌턴은 정신적인 세계를 묘사하기에 앞서 치밀하게 자신이 이해한 세계를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증명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힌턴의 글은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획득한다. 단순히 비교秘敎에 심취한 수학자의 정신 나간 에세이로 치부될 수도 있었지만, 그 엄밀함 덕분에 힌턴의 글은 보르헤스가 만든 ‘바벨의 도서관’에서 영원히 자신의 세계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책 뒤에 실린 해설에서도 나오듯, ‘차원’이라는 매력적인 테마는 시어도어 스터전,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프레더릭 폴, 클리포드 시맥,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에 이르는, SF의 탄생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히 다뤄지고 있다. 최근에 번역된 『SF 명예의 전당』에 실린 루이스 패짓의 「보로고브들은 밈지였네」,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에 실린 그렉 베어의 「탄젠트」와 같은 작품도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우리의 굳어진 인식체계를 확장하지 않고서는 다른 차원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신비주의자들이 늘 주장하는 바와 같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으며, 수많은 모순과 균열이 존재한다. 그러한 모순과 균열을 뛰어넘어 ‘너머’의 세계를 직시하기 위해서는 찰스 하워드 힌턴처럼 꾸준한 훈련, 세계이해를 확장하기 위한 수학적 사고의 엄밀함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SF의 역사는 결코 대중적인 펄프 픽션, 흥미로운 3류 읽을거리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힌턴은 비록 격변하는 과학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잊혀져갔지만, ‘작가들의 작가’ 보르헤스는 힌턴을 잊지 않고 29권의 ‘바벨의 도서관’ 한 귀퉁이를 힌턴의 책으로 채워넣었다. 그의 엄격한 윤리의식과 기하학적 추론의 엄밀함은 비록 이론적으로 낡을지언정, 정신적으로는 절대 낡지 않는 초시대적 공감의 대상이다.   


   
  왕이 계곡을 떠나자마자, 계곡에 있던 존재들은 왕이 처음 발견했던 그들과 똑같은 무감각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육체적 또는 정신적 노동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무감각 상태에 빠졌다. 쾌락의 잉여분을 그들에게 주던 외부 존재의 고통 분담분이 사라졌음을 그들이 가장 먼저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축적된 쾌락이 서서히 소진됩에 따라, 계곡 전체를 차가운 죽음이 휩쓸었다. 한 명 한 명의 운명을 묻는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전체를 휩쓴 똑같은 재앙에 모두가 휘말렸으니까. 모든 손은 손재주를 잊었다. 거리에서 부산하게 이루어지던 활동들은 잠잠해졌다. 시골에서는 천천히 움직이던 형태들이 서서히 휴지 상태에 들어갔다. 모든 곳이 그렇게 하염없는 침묵에 잠겼다. 모든 주민이 어떤 큰 잔치에 간 것처럼. 하지만 돌아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씩 하지만 끊임없이 잠식해 드는 붕괴와 몰락을 막을 세심한 눈도 준비된 손도 없었다. 도로는 풀로 뒤덮이고, 건물에는 흙먼지가 밀려들었다. 시간에 서서히 먹히다가 이윽고 모든 것이 묻혀 버렸다. 집, 들판, 도시가 사라졌고, 마침내 거기에 무엇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지워지고 말았다.  
   

 
『타임머신』, 『우주전쟁』, 『투명인간』, 『모로 박사의 섬』과 같은 작품에서 빛나는 웰스의 과학적 비전이 실제적 실현가능성과는 상관없이 우리 세계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으로 반짝이는 것처럼, 힌턴의 작품 또한 우주적 우화로써 정교하고 세밀하게 세계를 직조하고 그 세계를 엄밀하게 묘사한다. 힌턴의 작업은 SF-소설이라기보다는 SF-에세이에 가깝다. 그의 글은 소설과 에세이 같은 규정의 틀 자체를 벗어난, 우주를 담으려 노력하는 글쓰기이다.(다른 바벨의 도서관 책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스스로 창조한 세계를 Fiction보다 Nonfiction에 가까운 태도로 다루며, 그 세계의 윤리 또한 차라리 수학이라고 할 만큼 단단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 지금 보면 힌턴이 꼼꼼하게 검증한 기하학과 윤리의식이 낡아보일지 모르나, 그 밑바탕에 차곡차곡 깔려있는 수학적 의미를 곱씹을 수록 그의 작업은 단지 낡은 SF가 아니라 비의적 사상이자 하드SF적으로 틈없는 완벽하고 신성한 우주이다. 그가 수많은 유명 작가들을 제치고 보르헤스의 눈에 들었던 것은 외롭게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우직함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창조한 세계 자체가 바벨의 도서관이다. 사실 힌턴의 세계에 혼돈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세계를 혼란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신비를 잃어버린 채, 완벽함을 믿지 않는 시대로 건너와버렸기 때문이다. 신비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버리고 ‘바벨의 도서관’을 읽는 것이다. 보르헤스 자신이 말하듯, 바벨의 도서관은 ‘혼돈으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우주, 영원, 무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암호이자 단 한 권의 총체적인 책이다.  

   

 

ps. 바다출판사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2009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출판사라는 출판사 이름 대신 ‘바벨의도서관’이라는 브랜드명을 달고, ‘보르헤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2권을 출간했다. 그리고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량 회수조치된 후 절판된 채로 1년 반이 흘렀다. 이후에 트위터를 통해 당시의 사정을 알 수 있었는데, 책의 품질이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아 29권짜리 시리즈를 제대로 출간하기 위해 이미 발행한 2권을 회수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웬만한 출판사라면 일단 책을 내고 나서 나중에 슬그머니 재판을 찍을 때 수정했을 텐데, 그 결단과 장인정신이 놀라웠다. 게다가 시리즈를 다시 출간하면서 오히려 가격은 더 내려갔다.(9500원→8000원) 

디자인과 마감이 이전 판본보다 훨씬 더 훌륭해졌을 뿐 아니라, 가격도 요즘 책 답지 않게 저렴한 점이 돋보인다. 여담이지만 이 시리즈를 보면서 최남선의 ‘십전총서’와 육전소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http://webzine.kookmin.ac.kr/site/ff1/article_3/page_3.htm 근대 출판의 역사에는 이처럼 선구자적인 역할을 맡아 도서를 통한 지식 보급에 매진한 사람들이 있었다. 더 이상 저렴하다고 보기 힘든 세계문학전집들, 디자인은 세련되게 바뀌었지만 그만큼 호주머니도 슬림해지게 만드는 책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곤 했는데, 다른 출판사에서도 ‘바벨의 도서관’처럼 ‘값 싸고 질 좋은’ 세계문학전집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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