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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 The Cla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교실은 흡사 작은 전쟁터와 같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 사이엔 보이지 않는 불신의 벽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어 편견과 오해의 감정이 알아챌 새도 없이 쌓여간다. 때때로 이런 감정들은 탁구공처럼 성급히 튀어올라 사방으로 부딪히기도 하는 반면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쉽사리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도 한다.
로랑 캉테 감독의 프랑스 영화 <클래스>는 파리 외곽의 그저 그렇고 그런 어느 중학교 학급의 모습을 빌려와 인간 vs 인간으로서의 이해와 소통이 진정으로 필요한 공간인 교실 풍경을 도발적이면서 현실감있게 담아낸 수작이다. <클래스>의 원작자이면서 실제 교사 출신인 프랑수와 베고도가 열혈 프랑스어 교사 마랭 역을,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된 실제 중학생들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발칙한’ 아이들을 직접 연기하면서 (한편의 다큐를 보는 듯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있는 그대로의 교실 풍경을 생생히 재현하고 있다.
<간략한 줄거리>
9월 신학기를 맞은 학교 모습은 말 그대로 분주하다. 새로 부임한 선생들이나 한 학년 진급한 학생들은 저마다의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념이 없다. 벌써 이 학교에서만 4년째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 마랭은 첫날부터 자신이 맡은 학급 학생들과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랭은 산만하고 다루기 힘든 아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 일쑤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담임에게 영 불만이다. 그래서일까? 거침없는 질문의 농도는 점차 심해지고, 자유로운 토론의 논리적 비약은 유치한 말꼬리 잡기로 이어진다. 게다가 마랭의 수업 지도를 이유없이 거부하는 아이들까지 나타나고... 이런 아이들의 행동에 참지 못하고 때때로 다혈질의 성격을 폭발시키는 마랭. 교사로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선생과 반항심만 커져가는 학생들 사이의 티격태격 소동들은 그만큼 오해와 불신을 켜켜이 쌓아간다. 급기야 의도치 않은 마랭의 발언이 뜻밖의 사건을 불러 일으키는데...
<영화에 대한 여러 단상>
영화 <클래스>에서 가장 눈여겨 본 점은 지독할 정도로 철저히 학교의 모습만 담아낸 카메라이다. 담임인 마랭이나 그의 학생들의 학교 밖 사생활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상당히 교묘하다.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종종 의문을 던지게 되지만 이유는 알 도리가 없다.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은 영악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분명 저마다의 사소한 것들이라도 이유는 존재할테지만, 단편적인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정보만을 통해 유추해볼 뿐 개개인의 소상한 깊은 내막까지 알긴 힘들다. 마치 관객은 마랭이 아이들을 보는 시각과 거의 같은 높이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행동에 상당히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도 영화의 메시지를 생각하면 소홀히 다룰 수 없는 것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조용히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 보인다. 관객들은 마랭만큼이라도 아이들을 이해할 마음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존재하는가? 굳이 작은 사회인 교실뿐만 아니라 보다 큰 현실 사회의 여러 이해관계에서 부닥치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라고 말이다.
학교가 갖는 폐쇄성도 연관해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그 안의 주요 구성원들은 자신들만의 자유와 권익(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테두리를 둘러치고 벽을 쌓아놓고 있다-학교는 학교만의, 선생들은 선생들만의,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카르텔을 만들어 버린다. 외부의 간섭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뭉친다. 이런 결과 놀라운 점은 예를 들어 아이들간의 다툼에서 비롯된 일이라 할지라도 선생에게로 번지면 어느 틈엔가 학생과 선생의 다툼으로 변질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애시당초 불신의 벽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메시지와 큰 상관은 없지만 추락해 버린 우리 교육 현실을 빗대어 볼 대목도 있다. 영화 속 교사들이 학생의 성적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단순히 성적으로만 최고 점수를 줄 것인가 아니면 태도(인성)를 먼저 두느냐, 그도 아니면 이 둘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것인가를 놓고 토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현실은 영화 <클래스>보다도 한참 어둡다. 주입식 교육을 통해 성적으로만 줄세우기를 하면서 공교육이 무너져 버린 일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단순히 지식만을 습득하는 장소만이 아닌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통해 바르고 정직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과정의 하나로서 교육이 진정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반성과 함께 초심부터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클래스> 속 교실은 작은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9개월간의 이야기는 강렬한만큼 눈부시고 시리다. 런타임 128분에 이르는 영화는 어떤 해결점도 없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른다.
인상적인 마지막 두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끝머리. 긴 방학에 앞서 먼저 지난 9개월 동안 배운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관심있던 분야를 소개하지만, 모두가 빠져나간 교실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흑인 소녀가 남긴 대답은 뜻밖이다. 영화 첫 부분 잠깐 등장한 이후로 존재감없던 이 소녀의 대답은 마랭은 물론이고 관객까지 일순 당혹스럽게 만든다. 이 소녀의 대답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저마다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 것 같다.
곧이어 뒤이은 장면. 어질러진 텅 빈 교실과 대비되는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운동장에서의 축구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 대립없이 교사와 학생이 함께 어울려 웃고 떠들며 축구하는 장면은 서로의 벽을 허물고 소통과 이해 그리고 화합의 과정을 한순간에 이루어낸 듯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주된 공간이자 선생과 학생이 가장 오래 마주하는 교실을 벗어난 곳에서 희망을 엿보게 된 것은 반대의 의미를 가진 갖가지 상념 역시 자아낼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내포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