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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양들의 축연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네자와 호노부의 <덧없는 양들의 축연>(2008년작)
[바벨의 모임]이라는 비밀스런 대학 독서 모임에 소속된 소위 부유층의 영애와 그 피고용인 간의 범죄 행각을 다룬 미스터리물이다. 연작의 형태를 띠고는 있지만 각 단편의 주인공은 모두 다르며, 각각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성 화자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 역시 언급할 대목이다-마지막 편은 비록 3인칭이 가미된 일기 형식이긴 해도 말이다.
수록된 단편은 다음과 같다.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북관의 죄인
산장비문
타마노 이스즈의 명예
덧없는 양들의 만찬
먼저 책 뒤편의 홍보문구인 ‘유례없는 마지막 한 줄의 반전’이란 문구가 상당히 자극적으로 다가오는데, 정통 추리소설의 ‘앗!’하게 만드는 충격적인 반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 맛은 떫은 감을 베어물기 전부터 예상되는 낭패감과 같다. 이 단편들은 반전에 주의하기 보다는 역자 후기에 언급된 요소 중 ‘왜 그랬는가’에 보다 초점을 맞춰 읽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마지막에 드러나는 이렇다할 악의, 증오와는 상관없는 범인들의 무덤덤한 살인 행각 속에서 황폐화된 인간성의 부자연스런 괴이감을 맛보게 된다.
단편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스멀스멀 스며드는 그로테스크한 공포로 몸서리치게 만들지도, 그렇다고 독특하고 기괴한 이야기 구조로 끊임없는 흥미를 자아내지도 않는다. 이야기는 대체로 쉽게 읽히는 소프트한 기담이며, 부유층이 주된 이야기 대상이다 보니 그들의 고상하지만 허영에 찬 모습, 현실보단 환상을 쫓는 나약함, 부나비처럼 부질없는 욕망 등을 통해 인간 군상들의 어두운 일면을 서늘하게 그려나간다.
단편 저마다 특색이 있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맨 마지막 편인 <덧없는 양들의 만찬>이다. 대표적인 희생물인 양을 통한 제의(만찬)로 말미암아 무너져내린 독서모임 이름인 바벨이 뜻하는 상징성(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공허한 오만과 탐욕, 허무 등으로 쌓아올린 환상)이 작품의 퇴폐적 인상을 대변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