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 1
로버트 그레이브스 지음, 오준호 옮김 / 민음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
로버트 그레이브스
1,2,3권을 다 읽었다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소설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를 다 읽었다ㅡ 클라우디우스과 황제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의 이야기인 <나, 클라우디우스>와 칼리굴라의 죽음 이후 <클라우디우스 신이 되다>를 3권으로 편집한 것이다.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벨리사리우스 백작>이나 <황금양털> 같은 것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특히 벨리사리우스 백작은 비잔틴 제국의 장군 벨리사리우스에 대한 이야기라니 역사소설로써 몹시 흥미진진할 것 같다.
1권보다는 2권이 재미있었고 또 3권이 제일 재미있었는데 전체적으로 한 인간이 성장하고 고뇌하면서 그 결과가 축적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이 든 황제가 쓰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글은 현장성을 띠고, 그래서 황제는 소년이 되었다가 장년이 되었다가 노년이 된다. "현재성"이 생생하다. 예컨대 메살리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는 그녀에 대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물론 독자에게는 사전지식이 있지만!) 당시의 클라우디우스에게는 메살리나에 대한 견해나 의심이 없기 때문이다.
3편의 고백이 정말로 뼈아프다. 이제 그 현장성이라는 것이 황제가 회상록을 쓰는 본래 나이, 노년의 나이에까지 도달했다. 그러니까 이제 그는 '지금'의 이야기에 좀 더 가까워진 셈이다. 그는 뼛속부터 공화주의자였고, 역사학을 사랑한 역사학도였으며, 선한 클라우디우스들을 존경했고 악한 클라우디우스들을 미워했다. 궁전보다는 서재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가 솔직한 마음을 어쩔 때는 서툴게, 그러나 놀랄 만큼 사려깊은 방식으로 이야기할때 가슴이 뜨끔하다. 무엇보다 메살리나가 죽고 난 후에 늙은 통나무 왕이 되기로 한 클라우디우스가 안타깝다. 그가 공화정의 불씨로 만들고자 했던 아들 브리탄니쿠스도 덧없이 죽는다, 클라우디우스는 역설적으로 자기 아들을 죽음의 무덤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멋진 소설이다.
*근데 왜 황제 자신이 1인칭 화자가 되어 끌고 나가는 소설이 고어 비달의 <율리아누스>
와 이 작품밖에 없다고 역자 오준호가 말하는 걸까?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_-
*
선정이유
멍청한 클라우디우스, 말더듬이 클라우디우스, 클라-클라-클라우디우스라는 조롱을 받았던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가 조카 칼리굴라의 뒤를 이어 로마 황제가 된다. 실제로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책을 쓰기 전에는 클라우디우스는 단지 악녀 메살리나의 희롱에 놀아난 무능력한 왕, 말더듬이 황제로만 회자되곤 했다. 그러나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역사의 장막"을 들춘 이래, 클라우디우스가 현실에 밝은 실무가였고 진중한 역사학도였으며 로마에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등장하기 이전의 공화정을 되살리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공화주의자였다는 사실이 재평가되게 되었다.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소설 <나는 클라우디우스>는 황제 스스로의 입을 빌려 그가 황제가 되기 이전 피비린내나는 궁정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가 사랑한 사람들이 어떻게 덧없이 죽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뒤이어 <클라우디우스, 신이 되다>에서는 황제가 된 클라우디우스가 전쟁에 나서고 원로원과 씨름하고 메살리나의 음모를 알게 되어 결국 그녀를 죽이게 되기까지, 허무함을 느낀 그가 "늙은 통나무 왕"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이야기는 생생하고 현장감이 넘친다. 지루함이라곤 없이 마치 현재 벌어지는 일처럼 현장감있게 당대를 되살린다.
인상 깊은 구절
"신성이란 주관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의 문제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신으로 받든다면 그는 신인 것이다. 사람들이 칼리굴라를 경배하고 신으로 믿었던 당시에 그는 정말로 초자연적인 존재였다. 카시우스 카이레아조차 사람들이 앞다투어 경배하는 그에게서 어떤 경외감을 느꼈고 암살자들은 그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만약 칼리굴라가 자기가 암살되리라고 스스로 예언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약하고 불운했던 인간 아우구스투스와 대중이 경배하는 신 아우구스투스를 분명히 구분한다. 인간이 신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싶어하는 마음은 비난할 수 없다. 사람들이 그를 진심으로 숭배한다면, 그리고 그의 신성을 하늘이 거부한다는 징후가 없다면 그는 이미 신이 된 것이니 그렇게 받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철학자들이 일반 대중과 전통적 신들의 사이에 깊은 골짜기를 파놓지 않았따면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주신으로 지금처럼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는 그 골짜기를 채워주는 역할에 어울렸다. 사람들은 그가 올림포스 산의 신들보다도 더 고귀하고 은혜로운 통치자로 기억하며, 이 도시와 제국을 따뜻이 돌봐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중 <악명 높은 황제들>.
티베리우스와 칼리굴라, 그들의 뒤를 이은 황제 클라우디우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프랑스의 여성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가 되살린 황제 하드리아누스.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처럼 1인칭 화자의 입을 빌려 당대의 로마를 부드럽고 따스하게 보여준다
class="__se_object" src="http://static.se2.naver.com/static/db_attach/iframe_template_for_se1_obj.html" id="__se_object_db135081019384544677" s_type="db" s_subtype="book" s_isempty="true" jsonvalue="%7B%22id%22%3A%229788977660939%22%2C%22code%22%3A%226061859%22%2C%22mode%22%3A%22book%22%2C%22type%22%3A1%2C%22genreText%22%3A%22%22%2C%22genreCode%22%3A%22%22%2C%22title%22%3A%22%EC%97%B4%EB%91%90%EB%AA%85%EC%9D%98%20%EC%B9%B4%EC%9D%B4%EC%82%AC%EB%A5%B4%22%7D" frameborder="0" scrolling="no" noresize="true" style="font-family: '3287760_10'; font-size: 13px; line-height: 19px; display: block; width: 405px; height: 122p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