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다시보기
박홍규 / 필맥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을 들은 기억이 없으나, 소크라테스는 항상 "세계 4대 성인" 중 한 위를 차지하는 사람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외워야 했던 도덕과 윤리교과서의 한 인물이었고, "악법도 법"이라는 유명한 말을 한 인물로 암기되었다. 산파술이니 지혜에 대한 사랑이니 하는 것은 거기에 딸린 덤이었고. 물론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 정도로 알고 있었을 뿐이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세계 4대 성인"이라는 것은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인물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남긴 도덕윤리라는 것이 과연 인간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탐구에서 나온 것인지도 의심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제자연 하는 자들이 현실세계에서 자행하고 있는 수많은 악덕에 신물이 나기도 했던 까닭이다. 각설하고...

그 와중에 플라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계기는 전적으로 칼 포퍼 때문이다. 2부작 번역서로 출간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1부 전편을 할애하며 칼 포퍼가 두드려 팼던 플라톤. "세계 4대 성인"의 한 명인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동시에 수많은 대화편을 통하여 지(知)와 덕(德, 최근에는 탁월함 등으로 번역되는 용어)을 가르쳤던 철학자이자 철인정치(哲人政治)를 주창한 플라톤이 왜 칼 포퍼에게는 '적'으로 규정되어 뭇매를 맞아야 했을까?

고전의 맛에 흠뻑 빠진 기쁨도 잠시, 플라톤의 대화편을 거의 전권을 독파하면서 느꼈던 최초의 감정은 말 그대로 감정적인 것이었다. 만일 소크라테스가 내 앞에 나타나 그의 독특한 '산파술'을 동원하여 나와 대화를 했다면, 아마도 단언컨대 30분 내에 주먹이 날아갔을 것이다. 그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떠나 부정하는 순간 대화가 단절될 수밖에 없는 전제를 선언하고 그에 따라 자기 논지를 강요하는 그의 대화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성깔'을 탄생시키기에 충분한 '산파술'이었다.

'국가, 정체'로 번역된 그의 Politeia는 칼 포퍼로 하여금 플라톤이 '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는 여지를 남긴다. 물론 다른 대화편에서도 마찬가지 논리가 전개되고 특히 말년의 작품인 '법률 Nomoi'에서 역시 플라톤의 '닫힌 사회'적 성격은 여실히 드러난다.

재밌는 것은 칼 포퍼는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플라톤의 사상을 구분하고 있다는 점. 여기서 약간의 혼란을 느끼게 되는데, 아무리 봐도 '변명'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법률'에 나타나는 플라톤의 사상이 과연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박홍규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판단을 한다. 예를 들어 박홍규는 칼 포퍼가 부정적으로 바라본 플라톤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나 칼 포퍼가 긍정적으로 바라본 소크라테스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책 148쪽).

박홍규의 논리에 일정부분 동의하는 한편,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은 결과 개인적으로 내린 판단은 아예 소크라테스의 독자적인 이상이라는 것이 존재했었는지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밝혀야겠다. 즉, 플라톤이 '법률'을 제외한 모든 대화편에 등장시키는 '소크라테스'는 플라톤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변명'이나 '향연', 또는 '파이돈'과 '크리톤'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소크라테스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어쩌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라는 권위를 빌어 자신의 입장과 사고를 '소크라테스'의 입으로 말하게 함으로써 자기 논리를 그리스사회에 효과적으로 알리고자하는 전략을 가진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한편 박홍규의 "플라톤 다시보기"는 전작인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의 개정 증보판 정도의 성격을 가지는 책이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박홍규는 대화편의 내용들을 열거하면서 플라톤이 독재의 이론가였고 실제 그러한 독재를 하고자 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최근 정암학당의 공동작업과 원로철학자 박종현의 노고를 통해 플라톤 대화편 거의 전부가 완역되었다. 플라톤에 대해서는 철학적 연구는 물론이려니와 정치, 법, 사회, 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활발한 선행연구들이 있고 그 양도 매우 풍성하다. 구글 학술검색에 검색어로 플라톤을 넣어보면 끝도 없는 저술들이 줄줄이 엮여 나온다.

그러한 연구들을 폭넓게 확인하는 것은 역량을 넘어가는 것이고, 다만 전공분야인 법학 및 정치철학쪽에서 본다면 박홍규의 플라톤 비판은 상당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박홍규의 전작인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나 이 "플라톤 다시보기"는 칼 포퍼의 논리구조 혹은 아렌트나 럿셀의 비판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 더 까칠하게 말하자면 들인 품에 비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물론 서양의 정치학자나 철학자들이 했던 비판과 달리 한국적 정서에서 바라볼 수 있는 비판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 효용이 있겠다. 예를 들어 플라톤을 찬양하던 한국의 일부 철학자들이 어떻게 군사독재에 협조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책 12~13쪽)같은 것이 그렇다.

반대로 바로 이 부분이 박홍규의 저서가 가진 한계일 수도 있다. 칼 포퍼 등에 의해 진작에 확인된 플라톤 이론의 반민주성은 그 옹호자들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박홍규는 이 전거와 자신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갔어야 한다. 즉, 예를 들어 박홍규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옹호하고자 했던, 다시 말해 플라톤에 의해 왜곡된 형태로 알려진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를 다시 부활시키자던가 뭐 그런 거. 그런데 그런 내용은 상당히 미흡하다.

과거 박홍규는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라는 책을 통해 한국 헌법학계의 거물들이 자기 논리를 조석변 하듯 뒤집으며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것에 대해 일침을 놓은 바가 있다. 그런데 그 책에서도 역시 박홍규는 뭔가 새로운 헌법이론을 제시하진 않았었다. "플라톤 다시보기" 역시 그런 형국이다. 큰 기대를 갖고 펼쳤다가 그저 몇 번 고개만 끄덕거렸더니 책이 끝나 버리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아직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플라톤 다시보기"를 권할 수 있을지 약간은 망설여진다. 이 책을 먼저 읽음으로써 선입견을 가지고 플라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지긋지긋한 산파술의 동굴을 빠져나간 후에 이 책을 읽으라고 하기에도 뭔가 찝찝하다. 그걸 언제 다 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