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스피에르 : 덕치와 공포정치 레볼루션 시리즈 2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지음, 슬라보예 지젝 서문, 배기현 옮김 / 프레시안북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슬라보예 지젝은 여전히 난해하다. 그의 발언이 텍스트를 독해한 곳에서 나온다기 보다는 텍스트를 편집한 곳에서 나오는 듯 하다는 느낌은 우선은 내 공부가 일천하기 때문이겠지만. 한편의 극단에서 로베스피에르를 폄하하는 입장에 맞서 지젝은 또다른 극단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자임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서문은 대체로 오바스럽다는 인상을 준다.

예컨대 로베스피에르의 한계를 지적하는 안토니오 프레이저를 야유하면서, 지젝은 프레이저가 "미덕에 대한 불신이 동원의 근본 동력이 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비참한 윤리정치적 상황을" 확연히 적시해준다고 비판한다(61쪽). 글쎄...

아무튼 이 책에 수록된 로베스피에르의 연설문들은 그의 선의를 충분히 알게 해준다. 비록 그 선의의 결과가 파리를 붉게 물들일만큼 선혈을 흘리게 했더라도.

그런데 로베스피에르의 연설문들을 들여다보면 한가지 묘한 도식을 발견하게 된다. 피아의 분명한 구별. 그리고 적으로 상정된 대상을 반드시 절대악으로 치환하는 것. 당연히 그 결과는 절대악을 응징하고 패퇴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의는 완전한 승리로서 현현할 뿐 적당한 타협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평상시가 아니라 혁명과정이라는 것이 물론 중요하다. 혁명은 때론 총구의 화염과 인명의 살상조차 영웅적 서사시의 소재가 되니까. 적어도 미덕을 통한 정치가 가능한 평시가 아니라, 공포가 뒷받침되어야만 미덕을 내보일 수 있는 혁명의 시기에, 피아의 구별은 생존의 여부가 달린 경계의 획정이며 그 경계가 보다 확연히 드러날 때에만 진군을 위한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다. 드러난 경계는 피아 간 생존을 건 투쟁의 전선이고 그곳에서 미덕은 결판이 이루어진 후 승자에게만 돌아갈 전리품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절대악으로 상정된 적을 떨게 할 공포다. 그리고 그 공포는 경계 저편으로 시선을 돌릴지도 모를 경계선상의 회색분자들에게 어느쪽을 선택할 것인지를 추궁한다. 경계 위에서 양쪽에 발을 걸친자 역시 적이다.

문제는 이 혁명기의 공포상황이 가지는 효과를 평상시에도 도모하는 개인/집단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적인 위기를 공공연하게 설파한다. 그들에겐 어제도 위기였고, 오늘도 위기이며, 내일도 당연히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아니, 반드시 위기여야만 한다. 그 위기는 실상은 자신들의 위기이나 다른이들의 위기로 전환된다. 그로써 자신들의 위기는 해소되며 원래 위기가 아니었던 자들은 돌연히 자신들의 위기로 전환된 상황에 전율한다.

오히려 로베스피에르는 세간에 익히 알려진 것처럼 무조건적인 공포의 도구화를 노렸던 것은 아니었음을 확인 하게 된 것이 이 책을 읽고 얻는 안도감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혁명이 가진 감수성과 돌발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확연히 인식하고 있었고 또 염려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국파의 감정적 폭력행사에 대해 제어하고자 했고, 정반대로 "애국"의 일념을 감당하지 못한채 과도한 행위를 한 자에게 일정한 아량을 베풀고자 한 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는 그 아량의 "미덕"의 기준을 "조국과 진실에 대한 사랑"이라는 주관적이며 추상적인 이념에 맞추었다는 것. 과연 "조국과 진실에 대한 사랑"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었을까? 혁명의 시기에는 유난히 그 구별이 확실하게 가능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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