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10여 년 전 나는 목2동 315번지에 살았었다. 학군이 좋아 오래된 아파트에 주차난이 심해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거래되던 버블세븐 지역이라 매일 뉴스에서 언급되던 그 목동을 조금 벗어나면 빌라와 다세대주택이 즐비했던 목2동이 있었고 뉴스에 언급되던 그 목동과는 180도 달랐다. 그 목2동 315번지에 살면서 1년을 충무로에 위치한 회사를 다니며 출퇴근을 했었는데 그 충무로 역시 흔히 이야기하는 영화계의 충무로와는 180도 다른 인쇄소가 즐비한 충무로였다.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해야 하는 지옥철을 아침저녁으로 매일 경험해도 즐거웠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쳐야 한다는 중압감은 살림살이를 늘리지 못하게 했다. TV도 없었고 인터넷 설치도 안 했었고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두 번의 여름을 견뎠었다. 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 부지런히 책을 빌려 읽었고 친구들이 놀러 오면 광화문으로, 인사동으로, 명동으로, 홍대로 데려가 부지런히 서울투어를 시켜줬다. 어느 노래처럼 내 서울살이는 조금은 즐거웠고 결국엔 어려워서 2년 반만에 끝났었다.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황정은 작가의 「웃는 남자」를 읽는 동안 10여 년 전의 서울 생활을 저절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데 황정은 작가의 수상작을 다 읽고 다른 작가들의 수상 후보작을 읽어나가는 동안에도 목2동에서의 서울살이 시절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황정은이란 잔잔한 태풍을 이번에도 역시 그냥 못 벗어나고 있다.

작가 편식이 심한 고약한 취향 탓에 모르는 작가가 너무 많다. 읽어야 할 작가가 그만큼 많다.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집어도 내가 읽는 작가의 작품만 골라 읽었다. 어떻게든 고치고 싶어 독서모임에라도 나가야 하나 고민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데 독서모임에 대한 로망 중 하나가 어느 계절이 되면 그 즈음 발표되는 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문학상 작품집을 한 권 통째로 읽는 것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여섯 편의 작품 중 내가 읽는 작가는 두 사람 밖에 없었다. 언젠가 읽어봐야지 했던 네 명의 작가를 어쩌다 보니 이번 기회에 처음 읽게 되었다.

짧은 시간 집중하여 읽기 좋은 작품들이다. 6편의 단편이 고르게 좋았다. 한 편의 단편으로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이번 수상집을 통해 처음 작품을 접하게 된 작가들의 작품세계들이 놀랍게도 예측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작가들은 여전했다. 양쪽 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6명의 작가의 6편의 단편이 균형 있게 실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이 순간 행복한 사람들이 없다. 작품을 읽는 나조차도 그랬다. 작품이 실린 작가들은 행복할 수 있겠다. 수상 작가 황정은 작가는 예외로 두자면 그 누구도 행복한 사람이 없고 희망 한 줄기 보이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위로가 된다. 11회 김유정 문학상은 현대인의 공허함과 쓸쓸함을 영양분 삼아 묶어낸 책이 틀림없다. 그 영양분이 올해의 늦여름 동안 내 영혼도 조금 성장시켰으리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