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들리에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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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작가의 소설집 『샹들리에』의 출간에 맞춰 창비 출판사에서는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소설 샘플북을 랜덤으로 보내주는 '단편하게 책읽는당' 서평단을 모집했다. 올 초 작가와 책의 제목을 밝히지 않은 채 가제본을 보내어 작가와 작품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온전히 나만의 시각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던 '눈가리고 책읽는당' 서평단 활동을 즐겁고 의미 있게 추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새롭고 신선한 '단편하게 책읽는당' 서평단이 욕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김려령 작가다! 다행히 기분 좋은 서평단 당첨 소식이 들려왔지만 서평 마감일까지 샘플북은 오질 않아 애를 태웠고 우여곡절 끝에 뒤늦게 나에게 온 귀한 샘플북은 「미진이」였다.

 
"너는 너를 무엇으로 증명해 봤니?"
 
김려령 작가의 모든 작품을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동안 읽었던 김려령 작가의 작품들의 큰 특징은 어른들도 알 것만 같은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들의 상황과 심리를 너무나도 예리하게 잘 짚어낸다는 점이다. 긴 흐름의 장편들이 차분하게 읽히며 그동안 쌓아왔던 김려령 작가에 대한 신뢰감은 당연하게도 작가의 첫 단편소설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비록 한 편의 단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미진이」라는 짧은 단편소설 속에서도 김려령 작가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증명해 보인다. 
 
(…) 당신도 공범자야. 알잖아. 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없어. 특별한 곳에 쟤 자리 없어. 심지어 지가 무시하는 거리의 저 사람들, 그 속에조차 쟤 자리는 없어. 쟤는 알아야 해. 그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그런데 그런 모습조차 무시해. 건방이 도를 넘었어.(…)
 
자신이 형편없는 애일까 봐 매일 조마조마한 아이
남들보다 잘난 게 없는 아이
내 친구라고 나서는 아이가 없는 아이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평범하고 보통의 존재인 미진이의 거대한 착각이 엄마로 인해 무너지고 만다. 아무것도 아닌 사춘기 소녀에게 느닷없이 불어닥친 방황과 성장통이 짧지만 묵직하다. 갑자기 딸에게 등을 돌려버린 엄마, 해결사가 되어주지 못하는 아빠, 그리하여 하루아침에 자신의 세계가 붕괴된 미진이. 모든 등장인물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는 점에서 김려령 작가의 섬세함이 엿보이다가도 사춘기 소녀 특유의 철없는 내면의 묘사에서는 마치 남성 작가가 사춘기 소녀를 그려낸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왜 이 소녀의 이름은 미진이 일까?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절대 주인공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을 소설을 만났다. 미진이는 미진했다. 나 역시 미진한 미진이다. 술술 읽히지만 나도 모르게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다. 다른 단편 속 주인공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있는지 궁금하다. 어쩌다 보니 이번 단편 소설까지 김려령 작가의 청소년 주인공들만 읽었었는데 김려령 작가가 그려낸 성인들의 모습도 궁금하다. 무엇보다 '샹들리에'가 수록되지 않은 이 작품의 제목이 왜 『샹들리에』인지 궁금증 해소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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