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친구 R이 내게 얼마나 자주, 어떤 상황에서 죽음을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잠에서 깨어 있는 하루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후 간간이 일어나는 야간 침입들이 있다고도 했다. 외부 세계가 뚜렷한 평행선을 그릴 때, 저녁으로 접어드는 시간, 낮이 짧아질 때, 혹은 긴 하루 동안의 하이킹이 끝나갈 때, 자주 죽음의 필연성이 불청객처럼 내 의식을 비집고 들어온다. p.45-46

 

줄리언 반스의 신간 소식이 들려왔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라는 소식에 아쉬운 마음이 들다가도 평범한 에세이가 아닌 죽음을 주제로 평소 극도로 꺼려하던 사생활 공개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쓴 글이라는 소개에 다시금 기대감이 높아진다. 제목과 표지의 글씨체가 가벼워보이며 독서의 장벽을 낮춰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다가도 살아가야 할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1946년생 작가가 죽음이라는 소재로 이토록 두꺼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에 괜스레 마음이 묵직해진다. 유년에 대한 회상부터 가족과 지인들의 이야기, 유명인들에 대한 회고까지 죽음을 주제로 한 줄리언 반스의 에세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원서 제목인 Nothing to be Frightened of』가 어쩌다가 한국에 와서 한국 독자들에게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읽히게 됐는지는 미스터리지만(표지도 원서가 백번 옳다) 죽음이라는 주제로 쓰여진 에세이라는 소개에 향하게 되는 기대감이나 예측을 줄리언 반스는 반전시킨다. 역시 줄리언 반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 남다른 프레임을 가지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토록 흥미를 돋울 수 있는 감각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누가 또 있을까?  

 내가 맨 처음 죽음의 필연성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모든 게 단순했다. 넌 살아 있었어. 그러다 죽었어. 그래서 하느님에게 작별을 고했지. 갓바이Godbye. 그러나 나이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p.187

죽음을 주제로 하고도 이토록 매력적인 에세이를 읽어가던 도중 느닷없이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던 다자키 쓰쿠루가 생각났다(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느닷없는 생각은 두꺼운 책을 읽어가는 내내 계속되었는데 몇 년 전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가 발표되고 사람들은 아마 밀란 쿤데라의 마지막 작품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디 그 말이 사실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줄리언 반스에게도 옮겨갔다. 에세이를 읽고 나자 줄리언 반스의 소설에 대한 갈증이 더 커졌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그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그의 신작을 계속해서 만났으면 좋겠다. 느닷없이 떠오른 많은 생각 덕에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들이 생겼지만 우선 아직 읽지 못한 그의 또 다른 에세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챙겨 읽으며 줄리언 반스의 소설에 대한 갈증을 더 키워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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