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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 남인숙의 여자마음
남인숙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4월
평점 :

신뢰할만한 사람의 강력한 추천이 아니고서는 늘 책을 끼고 사는 평소였다면 절대 손이 가지 않을 책이다. 읽고 싶은, 읽어야 할 책이 얼마나 많은데 관심분야도 아니고 마음이 전혀 동하지 않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던 것은 너무나 분주했던 요즘엔 책을 끼고 사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백만 가지쯤의 핑계는 독서를 후순위로 미뤄두기에 충분했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정말 일 년에 책 한 권 안 읽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생기자 무슨 책이든 읽어야 한다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장르도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읽어야만 한다는 의무감은 평소라면 눈길도 주지 않을 책에도 눈길이 가게 했다. 작가와 출판사 측에는 미안하지만 거창한 독서 동기의 실체는 겨우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책을 손에 쥐고 차례부터 훑어봐도 솔깃은 하지만 새로울 것 없어 보였다. 나는 이 책의 주요 독자층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도 시큰둥했는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지만 시큰둥하게 책장을 넘기던 나는 금방 이 책의 주요 독자층답게 책을 꽉 쥐며 빠져들게 되었다. 기대가 적었던 탔에 기대 이상으로 책이 좋았던 이유도 있겠지만 이 책의 매력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남인숙 작가는 공감능력과 필체로 대한민국의 20대 이상의 여성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건드렸다. 긍정적인 마인드라면 뭐든 잘 될 거라는 대책 없는 희망고문도 없고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독설 없이도 현대의 여성들의 마음을 이토록 잘 헤아려주는 이 작가의 글을 이제야 처음 접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아쉬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선사해주었다.
삶에 방은 두 개 이상이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가진 다른 영역이 서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나 역시 말 붙이기도 조심스러운 사춘기 딸과 영 내 맘 같지 않은 남편에게 실망이 많이 느껴질 때면 바깥사람들과 만나 일하며 생기를 회복한다. 반대로 냉정한 일터에서 난타당하고 온 날은 '그래도 내 편'인 가족의 따뜻함에 힘을 얻는다.
오직 한 개의 방에서 질식하지 않으려면 방의 주인은 더욱 현명하고 부지런해져야 한다. 항상 환기에 신경 써야 하고, 방이 더러워지거나 망가지지 않게 노력을 쉬지 않아야 한다. 때로는 그 방 안에 예쁜 칸막이라도 하나 들여 잠시나마 방 두 개의 효과를 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 모든 작업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는 차라리 선택의 여지가 있어서 더 어려운 여자들에게 두 개의 방을 가지라고 권하는 것이다. p.32
독서의 초반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책을 단숨에 읽어내고 나 자 이 한 권의 책이 나에게 두 개의 방 역할을 해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의무감으로 시작된 독서였지만 이 책을 읽어내고 이 책에 빠져가는 과정들 속에서 책을 읽는 행위는 독서도 되었고 휴식도 되어주었다. 이토록 내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글들을 술술 풀어낸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하다가도 크나큰 위안을 받으며 위로가 됐고 휴식이 됐다. 책의 후반 육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며 책을 꽉 쥐었던 손이 느슨해지기도 했고 왜 이 책이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라는 제목으로 나오게 됐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내가 작가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이 책을 다시 읽어본다면 더 공감하고 위안이 되어주는 부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된다. 그러한 이유로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궁금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