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용이 있다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지음, 김유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여기 『여기 용이 있다』라는 낯선 책이 한 권 있다이름조차 어렵고 낯선 이 책의 작가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는 스페인 출신으로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라 한다.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조차 쉽게 보기 힘든 한국에서 또 다른 스페인 출신의 영화감독이라니 낯설다. 여러 편의 영화가 스페인은 물론 국제적으로 많은 인정을 받은 것 같으나 아직 국내에서 정식으로 소개된 작품은 없다. 영화감독과의 만남도 관객이 아닌 독자로 먼저 만나게 됐으니 낯선 만남이다. 만다라체상이라는 낯선 상도 수상했다 하니 낯선 책이지만 기대치는 계속 올라간다. 영화감독들의 책이라면 여러 번 만나봤지만 역시 이 책은 낯설다. 그동안 봐왔던 영화감독 인터뷰집 시리즈도 아니고 에세이집도 아니다. 도대체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 팀버튼의 우울한 동화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생각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집에 가까울 거라 기대하며 책을 펼쳐들었다.

 

길어야 4페이지 안팎인 113편의 짧은 이야기들로 묶여진 이 책은 작가가 잠깐씩 짬을 내어 어른들을 대상으로 쓴 이야기라 한다. 어떤 이야기는 짧은 일기를 보는 것 같고 어떤 이야기는 영화 시놉시스의 한 부분을 발췌한 것 같고 어떤 이야기는 인물 소개의 한 부분인 것 같다. 「이민자의 기도」, 「어느 권투 선수의 기도」와 같은 기도문이 있는가 하면 「중간 크기 시체를 처리하는 최고의 방법」에서는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등 개성 넘치는 글로 가득하다. 작가가 113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장소도 제각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실, 카페, 침실, 공원 등의 장소에서 노트북, 연습장, 영수증의 뒷면 등에 써 내려갔을 것 같다. 짧은 113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가 구상하여 만든 미로 속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짧은 글 속에서 자주 길을 잃고 갇혔고 작가가 미로 속에 숨겨놓은 퍼즐 조각을 차근차근 발견하며 보물을 찾아내는 기쁨을 맛보았다. 

 

 

낯선 작가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가 낯선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놓은 『여기 용이 있다』는 작가가 펼쳐놓은 풍부한 상상력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와 함께 생각하는 재미도 선사한다. '만일 독자가 책을 선택할 수 없고 책이 독자를 선택하게 한다면?'이란 가정하에 써 내려간 「책이 독자를 선택하면」은 한 페이지 반 분량의 짧은 글이지만 독자에게 무궁무진한 생각거리를 준다. 내가 선택하여 『여기 용이 있다』를 읽었지만 작가의 상상처럼 책이 독자를 선택한다면 이 책은 나를 독자로 선택해줄까? 이 책이 선택할 독자는 어떤 모습일까? 나를 독자로 선택하는 책이 나타난다면 그 책은 어떤 장르의 어떤 작가의 책일까? 등등등. 짧은 글의 묶음이지만 미로 속을 돌고 그 안에서 보물을 찾아내며 독서를 마치다 보면 어느새 독자 앞엔 용이 있을 것이다. 어떤 모습과 크기와 색깔인지는 독자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과연 이 용은 내가 독서로 만들어낸 용일까? 아니면 나를 찾아온 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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