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공주들 - 동화책에는 없는 진짜 공주들 이야기
린다 로드리게스 맥로비 지음, 노지양 옮김, 클로이 그림 / 이봄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궁전에서 살던 아름다운 공주들은 그녀를 질투하는 계모의 괴롭힘에도 착하게 살다가 죽을 고비를 맞이해도 용맹한 왕자의 키스에 깨어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백성들을 돌보며 아주아주 행복하게 살았다. 디즈니 왕국에서 태어난 공주들은 조금 다르다. 공주들에게 다양한 피부색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말괄량이 기질이 다분하고 용감한 성격을 보여주며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동화책에서 봐왔던 순종적이기만 했던 공주들과는 다르지만 이들 역시 사랑하는 왕자를 만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백성들을 돌보며 아주아주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 

하지만 역사 속 실제 공주들의 삶과 모습은 우리의 상상과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 말이다. 린다 로드리게스 맥로비는 『무서운 공주들』을 통해 동화책과 만화영화에서 보지 못 했던 진짜 공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은 실제 존재했던 인물인지 전설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공주들도 있고 역사학자들마다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 공주의 왕관은 썼지만 그 신분으로 우아하게 살지 못했고 수월하게 지내지도 못 했던 30명의 '무서운'공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놀라지 말길. 이 책에서는 앤 불린과 마리앙투아네트는 부록으로 취급하고 있고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 드 보아르네는 나폴레옹의 동생 폴린 보나파르트 편에서 조연으로 등장할 정도다. 

왕실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굉장히 근사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 공짜란 없는 법이다. p.304

전사, 왕위 찬탈자, 전략가, 생존자, 파티 중독자, 난잡한 여인들, 미친 여인들. 총 7개의 파트로 나뉘어 소개되는 30명의 공주들은 주어진 일을 고분고분 따르는 온순하고 단아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해적이 되어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떠나기도 하고 남다른 용맹함으로 전쟁터를 종횡무진하며 놀라운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비범하고 포악한 모습을 보이며 왕위 계승 전쟁에 뛰어들며 원하는 게 있을 땐 죄책감 따위는 키우지 않고 거리낌 없이 해치우기도 했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 하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위험한 선택도 서슴지 않았으며 주변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적을 만들기도 했다. 가십을 쫓는 여왕벌로 궁 위에 군림하는 공주가 있는가 하면 문란하고 추잡한 행동으로 웃음거리가 되거나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거나 망상으로 정신질환을 앓으며 왕실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공주도 아주 많았다. 

왕자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공주가 막무가내에 고약한 행실을 보여도 진정한 왕자라면 짜릿한 키스 한 번으로 동화 속 공주로 변신시킬 줄 알아야 하건만 남자를 사랑하는 왕자가 있는가 하면 까다롭고 잔소리가 심한 왕자가 있었고 폭력적인 왕자, 허영심이 많고 속물적인 왕자, 뚱뚱한 술고래, 끔찍한 도박꾼 등 무수한 유형의 공주들 만큼이나 무수한 유형의 왕자들이 동화 속과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해 왕자와 공주가 첫눈에 반해 결혼을 하든 정치적 전략의 일환으로 정략결혼이 이루어 지든 끝은 거의 비극적이었고 이혼이 빈번했다.

"내가 더이상 아름답지 않다면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어."

-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태어날 때부터 왕족이나 귀족 가문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공주들이 있는가 하면 바에서 여급으로 일하다 결혼으로 공비가 된 글로리아 폰 트룬 운트 탁시스와 성노예에서 왕의 총애를 받고 황후의 자리까지 올라 전에 없던 권력을 누리는 마성의 여인 록셀리나가 있었고 의무로 인해 자유를 구속당하는 것을 힘겨워해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 옷으로 갈아입은 크리스티나가 있는가 하면 스스로를 공주라고 자처하고 왕족사칭자라는 직업으로 치밀하게 연기한 카라부와 프란치스카가 있었다. 캐럴라인은 씻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지만 폴린보나파르트는 가난한 친척 집에 들러서도 목욕탕 천장에 구멍을 뚫은 다음 하인들이 부어주는 우유로 우유 목욕을 했고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는 올리브 오일 목욕, 실크에 송아지 살을 올린 수면 마스크팩 등으로 미모와 몸매 관리에 유난스러웠다. 또한 사라 위네뮤카는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는 문명화된 위태로운 인디언 공주였다. 

30명의 공주들이 개척해낸 각자의 개성 넘치고 흥미로운 가십거리도 재미가 있지만 공주라는 높은 신분적 위치 속에서도 광범위한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 속에서 당시 여자들의 현실을 짐작하거나 유럽 왕실의 문화를 엿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여성이 보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화가치가 처녀성인 시절이 있었고 황제가 왕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일부일처제인 시절도 있었다. 또한 왕가들은 한 가족 안에 모든 주권을 계속 집중시키기 위해, 신의 행위를 모방하기 위해 근친상간의 금기가 예외가 되었고 결혼을 통해 미국인 집안은 사회적 지위를 얻고 유럽인 집안은 텅 빈 금고를 채우는 '달러 공주'가 등장하기도 했다. 

 

 

 

대개의 공주들이 아름다운 외모도 아니었고 우아하거나 신중하지 못 했다. 정신병을 앓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빚을 지고 있기도 했다. 분명 우리가 알고 있던 전형적인 공주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이 책의 대부분의 공주들은 여성성으로 간주되는 아름다운 외모나 현명함을 무기로 삼지 않았다. 여자 거인이라 불린 쿠툴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레슬링 기술이 그녀만의 무기였다. 캐서린 라치비우는 신랄한 말재주와 글 솜씨로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했으며 스테파니 폰 호엔로헤는 적조차 헌신적인 친구로 만드는 데 비상한 능력을 가졌으며 그녀의 인맥은 나치에게 너무나도 귀한 존재였다. 

대부분의 공주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열망이 강했으며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도 순응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신념을 가지고 헤쳐나갈 줄 알았다. 복잡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펼쳐진 각자의 사연은 논란거리가 되기 충분하고 좋은 말이 나오기 힘들지만 공주라는 신분이 주는 무기인가 자존심 강하고 대한 성격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이 저지른 실수도 결국은 사랑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두꺼운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즐거운 독서를 해나갈 수 있었다. 30명의 공주 이외에도 각자의 주제에 맞게 여러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이 소개되었고 화려한 일러스트는 눈길을 사로잡았다(전해져오는 인물화나 실제 사진이 실렸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긴 한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이 책을 읽을 땐 그녀들을 화려한 궁전에 사는 공주가 아닌, 무거운 왕관을 벗겨주고 한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첫 독서와는 조금 다르게 읽힐 것 같다. 

 

"나의 동화는 다 끝났다. 동화 속 요정이 급여를 주진 않을 테니까."

-글로리아 폰 트룬 운트 탁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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