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에게서 온 편지 : 멘눌라라 퓨처클래식 1
시모네타 아녤로 혼비 지음, 윤병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쇠와 불로 만들어진 여자 멘눌라라가 죽음과 함께 그 불이 꺼졌다.

알팔리페가의 하녀이자 재산관리인인 멘눌라라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함에도 치밀하고 세심했다.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는 그녀에 대한 증언은 엇갈리고 있고 그녀가 죽고 아직 피가 식기도 전이지만 그녀의 죽음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수근거림은 갈수록 커져갔다. 마리아 로살리아 인제릴로라는 본명보다 '아몬드 줍는 여자'라는 뜻의 멘눌라라라고 불린 그녀는 주인이 바라는 대로 복종하는 헌신적인 여자인 동시에 재산관리인이라는 예외적인 임무를 수행하면서 파산 위기의 알팔리페 가문을 구해내고 집안사람들 모두에게 계속해서 귀족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준 뒤 정작 자신은 늙어서도 집사 일을 계속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억압적이면서도 거만하기 짝이 없는, 한마디로 형언하기 힘든 존재였다. 알팔리페가 자식들은 그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수익의 일부를 따로 챙겼다는 생각에 실체 없는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죽은 멘눌라라가 주인 노릇을 하는 걸 받아들이며 그녀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가끔 도가 지나칠 때도 있었지만 멘눌라라는 자신의 영역을 위해 목숨을 건 여자였다. 

사생활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던 그녀의 생전과는 달리 장례식엔 마을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다 모였다. 마피아의 대부까지 등장했다. 과연 진짜 멘눌라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왜 멘눌라라는 유언장이나 서류 하나면 될 일을 복잡하게 많은 편지를 알팔리페가의 사람들에게 보내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복잡하게 흘러가게 만드는 걸까? 그녀의 죽음 이후 벌어지는 일들은 생전 수수께끼 같았던 그녀의 정체만큼이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묘연해지기만 할 뿐인데 과연 조금씩 전모를 드러내는 서사의 모자이크는 어떤 모습으로 맞춰져 나갈까? 

 

멘눌라라는 모든 걸 다 내다보는 카산드라다.

멘눌라라의 죽음 이후 그녀의 트리제시모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어지는 그녀의 편지와 주변 사람들이 떠올리는 추억과 기억 속에서 드러나는 진짜 멘눌라라의 모습. 그리고 미래를 내다본 그녀가 만들어 가는 그녀의 죽음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쉽게 매료된다. 그녀의 실체가 궁금하고 과연 알팔리페가의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걸 손에 잡을 수 있을지 이야기의 끝을 향해서 거침없이 책을 읽어나가면 그녀의 실체가 드러나고 빠르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책장 몇 장을 남겨두고는 끝을 코앞에 두고도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울컥함에 독서를 머뭇거리게 만들며 독자를 당황시키기도 한다. 

다양했던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과 증언처럼 55년을 살다 간 멘눌라라의 진짜 모습은 다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하녀라는 신분적 한계를 벗어나 그녀가 자신의 노력과 선택으로 일궈낸 행보를 100% 다 이해하고 수긍하진 못했지만 확실한 건 충실하고 정직하게 알팔리페 가문의 하녀 신분으로 살아가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완벽한 인생의 주인이었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언니와 조카 그리고 알팔리페 가문의 사람들까지 지킬 줄 알았다. 과연 그녀는 마녀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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