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락모락 - 우리들은 자라서
차홍 지음, 키미앤일이 그림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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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생에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 세웠던 버킷리스트만큼 거창한 게 있을까. 나의 경우 어떤 자격증을 취득하고 어떤 나라를 여행하고 서점과 극장 VIP를 놓치지 않겠다던 야무진 결심 사이에 삭발하기가 절대 빠지지 않았던 몇 년이 있었다. 세상에 대한 반항도 아니고 두상에 대한 자신감은 더더욱 아니었던 삭발하기라는 버킷리스트는 결국 한 번도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가 어느새 인생에서 후회하는 몇 가지의 리스트로 자리를 옮기고 말았는데 어쩐지 삭발을 하기엔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왜 버킷리스트에 삭발하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명확히 설명을 못했던 것처럼 왜 지금 삭발을 할 수 없냐는 질문 역시 명확한 답변을 줄 수 없다.



 

2. 

20대 초반의 내 모습을 기억하던 조카를 실로 오랜만에 만났을 때 조카는 나에 대해 헤어스타일도 자주 바뀌고 염색도 특이하게 했던 이모라고 회상을 했는데 일 년에 몇 번 만나는 아는 동생에게 최근 언니 머리는 고정이냐고 길이며 스타일이 한결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에 비하면 미용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 컬러 선택의 폭은 무척이나 넓어졌고 여전히 관심이 많지만 내 얼굴형에 맞는 길이를 너무 잘 알게 되었고 탈모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헤어스타일 변화는 꿈도 못 꾸게 된 덕분에 내 머리는 고정이 되어버렸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3. 

블라인드 서평단의 남다른 재미는 작품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작품을 읽으며 작가가 누구일지 예측해보는 것인데 『모락모락』의 경우 작가에 대한 상상이 쉽지 않다. 하이케 팔러의 『100 인생 그림책』처럼 100세까지 인생의 순간들을 담아낸 점이 닮았지만 그 인생을 머리카락의 시점으로 바라봤다는 점이 흥미롭다. 머리 감는 게 무서운 5살, 여드름을 가리기 위해 앞머리를 자르는 17살, 헤어 디자이너의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라는 말에 안심하는 22살,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는 스타일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스타일을 찾는 29살, 새치 고민이 생겨난 39살... 유행이 돌고 돌아 자신의 고등학생 시절 머리를 한 손녀를 보며 어린 시절 자신을 다시 만나는 75살... 사랑스러운 100가지 풍경에 책을 읽어가는 내내 마음이 뭉클해진다. 『모락모락』에는 100가지의 뭉클함이 있다.

 

4. 

'모락모락'이라는 단어에 제일 먼저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연기나 냄새가 모락모락이 먼저 떠오르는 나로서는 이 책의 제목 『모락모락』이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곱고 순조롭게 잘 자라는 모양'보다는 '樂'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작가는 어떻게 머리카락의 시점으로 인생을 들여다볼 생각을 했을까? 작가는 어쩜 이토록 다정하고 뭉클한 이야기를 끝없이 펼쳐낼까? 작가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1. 그림책 작가일 수도 있고 2. 소설가일 수도 있고 3.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일 수도 있고 좀처럼 감을 못 잡겠다. 무수한 가능성 중에 4. 일러스트를 담당한 키미앤일이 일러스트레이터가 글도 같이 썼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더해본다. 빨리 작가의 정체를 알고 싶다.

 

5. 

짧은 이야기를 빠르게 읽어나가면서 머리카락과 관련된 나의 추억을 수없이 떠올렸다. 그 속엔 나만 있는 게 아니라서 가족, 친구들에 대한 추억도 함께 따라왔는데 괜스레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중엔 오래전 연락이 끊긴 사람들도 있는데 문득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추억에 소환된 모두가 안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마 모두가 새롭게 예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


출간 하루 전 문학동네 인스타그램에서 작가의 목소리와 함께 힌트를 제공했는데 헤어디자이너 차홍님으로 확정인 분위기에 해당 게시물 댓글창은 그야말로 폭발 중이다. 

상상도 못했지만 블라인드북 취지와 너무나도 찰떡인 작가와 작품의 조합에 감탄 또 감탄 중이다.

천재들이 모여 합심하면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는구나. 

그동안 많은 블라인드북 서평단에 참여하여 작가를 추론했지만 『모락모락』 블라인드북 서평단 활동은 그야말로 역대급이었다. 

차홍님 목소리도 정말 좋으신데 차홍님 음성으로 오디오북이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작가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 좋았던 작품이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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