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먹이 - 팍팍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간소한 먹거리 생활 쏠쏠 시리즈 2
들개이빨 지음 / 콜라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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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언니들의 조직생활, 최지은. 화려한 여성작가 라인업으로 남다른 기대감과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출판사 콜라주에서 반가운 신간 소식이 들려왔다. 당연히 작가가 누구인지가 제일 궁금했고 '들개이빨'이라는 네 글자를 확인하곤 나의 출판사 보는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에 우쭐해져 그만 어깨가 귀에 걸리고 말았다.

 

순간, 장래희망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삼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뜻 스쳐 지나가는 장난 같은 생각이었지만 곱씹을수록 이거다 싶었습니다. 줄임말도 귀여워요.

 

 꿔보. p.16-17 「시작」

 

『먹는 존재』의 들개이빨 작가의 첫 에세이 『나의 먹이』가 콜라주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일단 제목부터가 너무 들개이빨 작가다워서 안심이 됐고 『먹는 존재』에서 음식들보다 주인공 유양의 찰진 말빨에 더 반해버렸던 독자였던지라 『나의 먹이』에서 다루는 먹이들보다 작가가 건네줄 글맛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시작부터 그동안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던 내 안의 꿔보DNA를 끄집어 내고 과격하고 거침없는 유머 코드로 완벽히 사로잡지만 페이지는 별로 안 넘어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도대체 익는 건지 마는 건지 죽어라 딱딱하게 굴어서 사람 속을 태우다가 하루아침에 최고의 상태를 반짝 보여주고 서둘러 썩어버리는 그 지랄맞은 숙성 타이밍 또한 아보카도의 치명적 매력을 더합니다. 열 알 중에서 다섯 알은 딱 알맞게 익은 걸 먹고 다섯 알은 썩은 걸 먹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돌아버립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보카도의 안색만 살피고 자꾸 만지작거리게 됩니다. 이것은 집착받기 위해 태어난 열매입니다. 견과류를 향한 사랑의 불꽃이 아보카도로 확 옮겨 붙었습니다. 얘도 기름이라 그런지 화력이 좋더군요. 저는 광인처럼 아보카도를 사 모았습니다. 집에는 늘 일곱 알가량의 아보카도가 굴러다녔고, 서너 알쯤 남을 때부터는 왠지 모르게 불안해져 얼른 몇 알을 더 사 와서 적정 수량을 유지해야 겨우 안심이 됐습니다. p.106-107 「아보카도」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자신의 멋짐을 크게 떠드는 이 세상에서 장래희망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일명 꿔보. 채식, 금욕식의 식탁에서 아이돌을 담당할 식재료는 콩으로 메주콩은 만년 센터 초메이저 멤버, 서리태는 다재다능하고 엄청 잘 생겼는데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냉혈 귀족 이미지 멤버, 병아리콩은 중독 출신 국민 아이돌로 한국에서 대활약 중, 렌틸콩은 정체불명의 종교에 심취한 마른 근육 삭발 멤버, 완두콩은 환갑이 넘었지만 워낙 애기 같은 이미지의 막내 포지션. 

 

11가지의 먹이들과 그에 관한 에세이를 읽다 보면 들개이빨 작가의 엉뚱함과 비범함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보통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필터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시선의 각도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엄청난 재능임은 확실하다. 매력을 넘어선 마력의 찰진 입담은 '들개이빨'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세상에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11가지 먹이들밖에 다루지 않았는지, 책은 왜 이리 작고 술술 넘어가는 건지……. 좋은 게 넘치는 만큼 아쉬움도 커지는 책이다. 그리고 아쉬움은 당연하게 작가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게 된다.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가 최고의 덕담이지만 들개이빨 작가님 적게 일하시면 나 같은 독자는 숨넘어가서 못 산다. 그러니 그냥 이번 생애는 부지런히 작업하시고 많이 버세요. 저도 부지런히 따라 읽을게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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