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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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엄청난 기획이 아닐 수 없다. 미쓰다 신조, 쉐시쓰, 예터우쯔, 샤오샹선, 찬호께이. 아시아 장르문학을 대표하는 대가들이 모여 아시아인들에게 친숙한 젓가락을 주제로 릴레이 괴담 경연을 선보인다. 일본, 대만, 홍콩 3개국의 작가들이 들려주는 괴담 릴레이라는 기획만으로 이미 재미는 넘치는데 젓가락이라는 소재와 괴담이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와 흥미는 700여 페이지의 두께에 대한 부담도 잊게 만들어 준다. 괴담이라는 장르도, 대만, 홍콩 문학도 독서 스펙트럼이 좁은 나에겐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지만 소설을 읽기도 전부터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요소들이 무척이나 많은 책임은 분명하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젓가락님' 의식에 대한 이야기와 밤마다 이어지는 악몽들에 관한 이야기 미쓰다 신조의 「젓가락님」, 젓가락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쉐시쓰의 「산호 뼈」, 생방송 중 벌어진 연인의 죽음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의심과 추적을 따라가는 예터우쯔의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 젓가락의 저주에 관한 샤오샹선의 「악어 꿈」, 괴담과 관련된 저주의 비밀을 밝혀가는 찬호께이의 「해시노어」. 개별적인 5편의 단편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서늘한 감성과 숨 가쁜 미스터리와 추리가 어우러지고 3개국의 5명의 작가가 어우러져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완성된다. 누군가에겐 구원이 되지만 누군가에겐 저주가 되는 장치를 통해, 개별적인 이야기가 다시 만나고 서로 이어지는 기법을 통해, 작품을 읽다 보면 공포와는 다른 결로 소름이 돋고 머리가 쭈뼛 서게 되는데 『쾌 : 젓가락 괴담 경연』은 천재적인 기획과 천재적인 작가들이 만들어낸 천재적인 결과물이라는 데 모든 독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찬호께이 작가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에 「해시노어」를 제일 먼저 읽을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처음부터 차근히 읽어가기 시작했는데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것을 당부하고 싶다.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예전에 저주에 관해 말했지만, 도대체 저주가 뭘까요? 사람의 사람에 대한 원한일까요, 아니면 초자연적인 신령이 금기에 저촉한 자에게 내리는 처벌일까요?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주의 본질에는 가닿지 못해요……. 저주는 '개인적'인 게 아니라 시스템적인 것입니다. 시스템에 속하지 않으면 저주에 걸리지 않아요. 우리 아시아인은 젓가락을 밥에 꽂으면 재수가 없다고 말하지만, 서양 사람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회 자체가 거대한 거주의 장치인 겁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타이완 전통에는 여자와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금기가 아주 많아요. 금기를 어기면 배척을 당하지요. 하지만 그게 여성만의 문제일까요? 다른 문화 시스템에서는 같은 행동을 해도 여성이 비난을 당하지 않아요. 금기는 사회에 속한 것이지 성별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타이완의 전통사회 자체가 여성을 겨냥한 저주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저주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솔직히 저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이 시스템에서 떠나는 수밖에요. 그런 사회 시스템을 떠날 방법이 없는 사람은요? 타이야 족에게는 '마조(鳥);라는 저주 전설이 있어요. 마조를 키운다고 의심받으면 온 가족이 전부 살해를 당해요. 증거는 필요 없고, 그냥 '사회규범에 부합하지 않는다'하고 하면 돼요. 그때 나도 그랬어요. 전통사회는 자주적인 여성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이 사회에서는 여성이 자의식을 갖고 주도적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이질적인 거예요. 그래서 저주가 발동하는 것이죠." p.479-480 샤오샹선 「악어 꿈」


그야말로 이국적이면서 이색적인 다섯 개의 이야기지만 그만큼 친숙한 분위기가 몰입을 도와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문화, 괴담이 떠오르는가 하면 타국의 작가가 꼬집는 사회현상에 관한 문제들을 보며 우리 사회를 마주 보게 되기도 한다. 이토록 멋진 기획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시리즈로 나와준다면 좋겠다는 욕심을 가지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소설이 끝나고 다섯 작가의 작가의 말이 이어진 것도 좋았는데 릴레이 괴담을 펼치며 다섯 작가들이 가졌던 압박과 부담과 달리 독자는 다섯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내내 흥미로웠고 즐거웠다. 옴니버스영화나 시리즈로 제작된다면 어떤 배우들과 어떤 감독들이 좋을까, 다른 소재로 릴레이 소설이 이어진다면 뭐가 좋을까, 여성 작가들로만 젓가락 괴담 강연 2가 나온다면 어떤 작가들이 좋을까, 우리나라 작가도 합류한다면 어떤 작가가 어느 이야기 사이에 배치되면 좋을까 등등 이야기의 확장에 대한 기대와 상상의 재미도 상당하다. 그러니까 절대 일회성으로 그치지 말고 어떤 형태로든 시리즈가 되고 이야기가 확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강렬한 갈망이 나에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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