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오늘 밤에는 그녀의 눈물이 그에게 평온을 가져다줄 것이다.
줌파 라히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끼친 이른바 '작가들의 작가'로 유명한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 출간 소식은 문학 애호가들의 마음을 부산스럽게 만든다. 부커상, 노벨상 후보 등의 예사롭지 않은 수식어를 비롯하여 무수한 수상 경력 등 문학계에 끼친 영향력과 업적은 막강하지만 한국에서 너무 늦게 소개된 탓에 작가의 사후 작품들이 부지런히 출간되고 있는데 덕분에 나는 종종 그를 '사후에 유명해진 작가'로 헷갈려 하기도 한다. 작품 출간 소식이 반가운 건 말할 것도 없고 늦게나마 윌리엄 트레버의 문학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는 기쁨은 출판사에 대한 무한한 감사로 이어진다.
그들은 악수를 나누지 않았고 함께 보낸 저녁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헤어질 때 두 사람에게는 약간의 놀라움이 남았다. 마땅히 일어났어야 할 상황과 비교하면 그들이 서로를 이용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존엄이었다. 그 기분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각자가 타야 할 열차가 도착해 다시 멀어져갈 때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기분은 그들이 깜빡이는 어둠 속을 이동할 때에도 계속되었고, 함께 나눈 즐거움만큼이나 은밀했다. p. 102 「저녁 외출」
다시 침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곳에선 잠들지 않아도 꿈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12편의 단편이 수록된 『밀회』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간결하다. 담백하다. 섬세하고 세심하다. 단단하고 담담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잔잔한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미묘한 심리묘사와 자연스럽게 엇갈리고 비틀어지는 관계를 포착하는 시선이 날카롭기도 하고 세심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작품의 진가가 무엇인지, 작가의 진가가 무엇인지를 윌리엄 트레버는 12편의 단편을 통해 보여주고 증명한다. 그러면서 독자들의 몫을, 여지를 남겨둔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나는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라는 백수린 작가의 추천사는 나에게 그러한 의미로 닿아왔다.
훨씬 오래전부터 그녀는 이때를 준비했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준비했고,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잔해에서 파편을 그려모으려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틀렸다. 그는 잘 설명했다.
그녀는 사랑한다는 그의 말을 다시 들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바꿔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서류 가방으로 그가 손을 뻗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살짝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p.286 「밀회」
실패한 것은 누알라가 아니라 이 세상이었다.
김하현 번역가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밀회』의 번역 작업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하는데 『밀회』의 서평을 작성하는 현재의 나의 상황 역시 난감하고 쉽지가 않다. 작품의 아름다움을, 책의 아름다움을 넘치게 만끽하고 내 몫을 충분히 누렸지만 독서의 만족과 별개로 서평 작성은 쉽지가 않다. 김하현 번역가의 말을 빌리자면 윌리엄 트레버는 가만히 따라가는 자세로 따라 읽으면 된다. 12편의 단편들을 통해 피어나는 무수한 감정들을 느끼며 나도 큰 위안을 얻었다. 서평은 엉망이지만 그의 작품을 더 읽고 싶다. 윌리엄 트레버의 문학 발자취를 더 부지런히, 성실하게 따라가고 싶어진다.
*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