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큰 개 파이
백미영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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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찌 된 영문인지 주변 사람들 중에도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탓에 동물과 밀접한 교감을 나눈 경험이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삶을 살아왔다. 덕분에 랜선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보는 동물들이나 동물원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만나는 동물들은 예뻐하고 좋아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동물들을 마주하게 되면 몸이 얼어붙고 마는데 아마도 개선의 여지없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삶을 살아갈 것 같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이 키우던 강아지 파이의 공동 견주가 된 백미영 작가가 강아지와 교감을 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과 한국에서 대형견의 연주로 살아가는 이야기와 부부와 파이가 낯선 터키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1, 2부로 나뉘어 펼쳐진다. 얼마 전 성진환, 오지은 부부의 『괜찮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라면』의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대형견이 드문 한국 사회에서 대형 견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엿본 바 있는데 『개큰 개 파이』는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듯이 조금 더 본격적이다. 


개와 함께 여행하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떠난 여행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방문했던 대부분의 곳에서, 개의 존재로 인해 어떤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물론 긴 차량 이동과 더위, 외부 환경에 예민해진 개를 어르고 달래느라 고생했던 것처럼 무리한 일정에서 오는 어려움은 존재했다. 하지만 여행 전 우려했던 사람들의 못마땅한 시선이나 말로 인한 상처, 예상할 수 없는 제재로 주눅이 드는 일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개와 함께 한 덕분에 누릴 수 있는 경험들을 새롭게 발견했을 뿐이다.

새벽의 도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선은 가족 모두 다치지 않고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한편, 우리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배려를 남편과 오래도록 이야기 나눴다. 따뜻하고 감사했다. 결국 이번 여행길은 우리가 한 아름 짊어지고 갔던 걱정들을 훌훌 던져버리고 가벼운 빈손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여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터키에서의 첫 가족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되어갔다. p.303 


초보 견주이자 동시에 대형 견주인 백미영 작가의 시선을 통해 평소 대형견에 대해 가졌던 편견과 지식 부족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고 반성하게 된다. 한국에선 대형견으로 이목을 받고 눈치를 받기도 했던 파이의 일상이 터키로 옮겨지면서 평범함을 누리는 강아지가 되는 변화를 보고 나면 폭력적이었던 건 단순히 덩치가 컸던 대형견들이 아닌 우리 사회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림체가 예뻐서, 알듯 말듯해 보이는 파이의 행동이 엉뚱하고 귀여워서, 하루아침에 대형견의 견주가 된 작가의 일상과 한국과 터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상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만 우리 사회가, 내가 당연하게 인식하고 가졌던 대형견들에 대한 편견들을 마주하며 마음이 무거워지고 너무나 미안해지고 만다.



인스타툰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 책 출간으로 이어졌지만 나는 거꾸로 책을 통해 처음 파이를 알게 됐고 작가의 인스타까지 넘어가 파이의 랜선 집사가 된 케이스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업데이트되는 인스타툰 덕분에 독서가 끝나도 파이의 이야기를 계속 만날 수 있어 기쁨과 동시에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을, 『개큰 개 파이』 후속 시리즈 출간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내적 친밀감을 가진 강아지가 생겼고 대형견의 랜선 집사가 되어있다. 나에겐 엄청난 사건이자 변화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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