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수집노트 - a bodyboarder’s notebook
이우일 지음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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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치 만화가의 유쾌한 늦바람!

스릴 만점 부기 서핑 에세이

 

이보다 더 완벽한 카피가 있을까. 이우일 작가의 에세이 『파도수집노트』의 카피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마음의 울림을 주는 단어들의 환상적인 조합이다. 누군가에겐 '몸치'라는 단어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서핑'이라는 단어와  만나 흥미로울 수 있고 누군가에겐 '서핑' 그 차체만으로 반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몸치는 맞는데 서핑에 대해선 아는 것도 일절 없고 관심도 그다지 없는 나를 사로잡은 단어는 '늦바람'이었다. 반평생 변변하게 하는 운동도 없이 실내 생활자로 살아온 운동신경이 둔한 작가가 파도를 타는 서핑에 늦바람이 단단히 들어 삼십 년 동안 묵혀둔 장롱면허를 꺼내 운전을 시작하게 만들고 전국은 물론이고 해외까지 종횡무진 누비며 파도를 타는 이야기는 내 안에 자고 있는 늦바람 DNA를 제대로 자극해주기 충분한 소재였다.

 

"넌 왜 그를 사랑하니?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네가 아깝다!"

 

어쩌면 사랑에 빠지는 감정과 다를 게 없는 듯하다. 매혹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고,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는 것. 그것으로 인해 정신과 육체가 고통스럽고 금전적으로나 인생에 있어서 큰 손해를 보는 것도 같지만, 그럼에도 그만둘 수 없는 것. 파도타기란 그런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한다.

서울에 살면서 틈틈이 파도를 찾아 바닷가를 떠도는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그건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p.87-90



 

서핑, 부기보드는 나를 자극하는 단어가 아님에도 이우일 작가의 『파도수집노트』를 읽어가는 내내 부지런히 자극이 된다. 제주, 강원, 서해, 남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풍경과 파도타기를 통해 접근하는 철학적 고찰과 질문들이 작가의 에세이와 일러스트를 통해 몰랐던 세계를 알려주고 작가의 시선, 태도는 좋은 자극제가 되어준다. 나에게 『파도수집노트』는 세상엔 다양한 행복이 있다는 걸 알아가는 여정과도 같았는데 '열정', '도전'이 아닌 '늦바람', '재미'가 끝없이 이어지는 점은 『파도수집노트』의 커다란 강점이 되어 색다른 재미로 읽힌다.

 

파도를 탄다는 건 자연과의 조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양과 색이 끊임없이 바뀌는 하늘, 그 하늘에 아름다운 선을 그으며 날고 있는 물새들을 물 위에서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는 것. 마침내 도착한 파도에 오르면 다른 하찮은 욕심들은 모두 사라진다는 것. 물을 가를 땐 자신이 바다에 살고 있는 작은 생명체처럼 느껴진다는 것. 파도를 읽고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 파도타기는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p.165

 

『파도수집노트』는 이우일 작가의 에세이와 일러스트가 주는 다채로운 재미도 컸지만 사철누드제본의 판형을 넘기며 읽어가는 재미도 이색적이었다. 작가의 아내 선현경 그림책 작가의 프롤로그로 시작해 작가의 딸의 에필로그로 끝을 맺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는데 배우자의, 아빠의 늦바람을 응원해주는 든든한 가족의 축하로 시작과 끝을 하는 책이라니 이보다 완벽한 늦바람 에세이가 있을까. 활동적인 운동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나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서핑을 경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우일 작가를 통해 파도를 찾는 서퍼들의 모험과 바다와 파도가 주는 새로운 재미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만의 길을 만드는 삶. 남들이 만들어놓은 가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찾아가는 삶.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고 작가는 썼지만 이미 충분히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이우일 작가의 '파도타기'가 나에겐 어느 시기에 어떤 장르 혹은 종목으로 올까. 그때가 오면 『파도수집노트』를 다시 꺼내 읽어보고 싶다. 아마 그땐 이우일 작가가 나에게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잘 살아가고 있다고 응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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